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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12-29 (월)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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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071      
[교육] 대학 (브리)
대학 大學 university

대개 문리과대학·대학원·전문대학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러 학문 분야에서 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권위를 갖고 있는 고등교육기관.

현대적 의미의 대학은 스투디움 게네랄레(studium generale)로 알려진 중세학교에서 시작되었다. 이 학교들은 유럽의 모든 학생들에게 개방된 학문장소로 널리 인식되었다. 최초의 스투디움은 성직자와 수도사를 대성당 및 수도원의 학교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교육시키고자 하는 데서 생겨났다. 스투디움과 그 시조였던 다른 학교들 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외국에서 온 학자가 있느냐 없느냐였다 (→ 색인 : 중세).

초기 대학들은 본질(本質) 또는 보편법칙을 연구하는 기관으로서 학생과 교사 법인이었으며 교황과 황제로부터 허가를 받았다. 11세기말 볼로냐에 최초의 대학이 설립되었으며 12세기말경에는 이곳에 학자들을 위한 4개의 '대학'이 생겨났다.

이들 대학은 롬바르디아, 토스카나, 로마, 교황지상주의 국가(프랑스, 독일, 영국 및 다른 나라들의 연합) 등 4개의 출신지별 학생단체에 상응하는 것으로 처음에는 구성원 개개인의 이해관계로 모인 사적 단체에 불과했다.

일정 형태를 갖춘 대학조직이 있기 이전의 초기 단계에서도 파리나 볼로냐에 있던 학자들은 개인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았다. 예를 들면 파리에서는 성직자로 분류되어 성직자재판소에서 재판권을 부여받았다. 1158년 붉은 수염왕 프리드리히 1세는 볼로냐의 학자들에게 부당한 체포로부터의 보호권, 동료들 앞에서 심판받을 권리 같은 특권들을 부여했다.

이런 특권은 교사와 학생 개인에게만 한정되어 있었고 스투디움은 그런 면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초기의 단체들은 무신론이나 이교(異敎)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다. 학생과 교사들은 그들의 학장을 함께 선출했다. 그러나 독자적 운영을 하는 대신 재정은 자체조달을 해야 했다. 따라서 교사들은 생계를 위해서 수업료를 받아야 했고 학생들의 기대수준을 충족시켜주어야 했다.

13세기에 학자들의 몇몇 '대학'은 명확한 행정 기능을 갖춘 법인체로 발전하여 우니베르시타스 스투디이(universitas studii)로 알려지게 되었다. 14세기 후반에 와서 대학이라는 용어는 시민이나 교회당국에 의해 인정되는 교사와 학자들의 공동체를 지칭하게 되었다.

이러한 초기 대학들은 일정한 건물이나 법인재산도 거의 갖고 있지 않았고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학생들을 잃기 일쑤였다. 그들은 다른 도시로 이주해서 새로운 학문 장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역사는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한 많은 학생들이 옮겨갔던 1209년에 시작되었다.

18세기말까지 대학은 교회나 국가에서 일하도록 젊은이들을 교육시키는 일을 위주로 했다. 교육과정은 일정하게 짜여져 있었다. 일반적으로 학생들은 문법·논리학·수사학을 먼저 공부했다. 문법은 주로 라틴 문법이었고 논리학은 삼단논법에 관한 것이었으며 수사학은 전통적 주제로 구성되었다. 그러고 나서 주로 법학·의학·신학 중에서 전공과목을 선택했다.

최종시험은 무척 엄했으며 대부분의 학생들이 낙제했다. 세금·군역 및 시민재판을 면제받았던 초기 대학생들은 생활이 자유분방했다. 지나친 음주, 고의적인 상해, 도시 사람들과의 말다툼 등으로 유명해질 정도였다. 이렇게 난폭한 학생들을 규제하기 위해 기숙사가 지어졌으며 학생들은 엄격한 규율 밑에서 대학 안에서만 지내야 했다.

대학원생과 학부생을 위한 기관으로서 최초의 근대 대학교는 17세기말 독일의 할레에 설립되었는데(1694), 그때까지 하버드(1636)와 예일(1701)은 아직 단과대학이었다. 초기의 하버드대학에 다니던 학생들은 평균 16세였으며 수준은 현대 중등학교와 비슷했다.

18세기 내내 미국의 고등교육기관은 거의 전부 종파들이 후원하는 대학에 국한되어 있었다. 예컨대 성공회의 윌리엄앤드메리대학(1693), 장로교의 프린스턴대학(1746), 지금은 컬럼비아대학교인 뉴욕 성공회의 킹스대학(1754) 등이 있었다.

대학 내에 상당한 자율이 부여되었으나 법적 권한은 비상임위원에게 있었다. 종교계 대학이 설립되지 않은 주(州)에는 처음부터 주립대학교 체제를 갖춘 학교가 세워졌다. 그래서 조지아·노스캐롤라이나·버몬트·테네시 대학교들은 1800년 이전에 설립되었다.

19세기초 미국의 대학교들은 독일식 모델을 많이 모방했다. 따라서 학문의 자유라는 프로이센의 이상과 대중을 위한 교육기회의 제공이라는 고유 전통을 결합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예를 들면 1859년 미시간대학교의 안내책자에는 "소속 각 대학들은 …… 대체적으로 독일의 김나지움(고전중등학교)에서 시행하는 교과목에 상응해야 한다", "모든 학생들이 만족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것을 공부함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면 대학이라 이를 수 없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대부분의 대학에서 필수 교과과정은 점차 자유선택제로 바뀌었다. 그리고 지식의 양적 팽창과 복잡해진 사회의 요구로 교과과정이 많이 증대되었고 바뀌었다. 1960년대에는 학생들이 교육권 외에 정치권도 가진 성인으로 대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대학운영에도 참여하겠다는 주장을 해 거의 모든 대학들이 혼란에 빠졌다.

대학 안팎에서 민족주의·제국주의·식민주의 및 남녀불평등에 대한 시위가 일어났다. 그들은 대학이 사회정의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각 대학에서는 교육과정을 자유롭게 하고 교수행정위원회에 많은 학생들을 참여시켰으며 학생들 스스로가 고안해낸 실험연구를 실행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었다.

그 결과 사회 및 전문학과에 봉사과정과 현장실습을 포함시켜 지역사회의 요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키고 학생들 자신이 선택한 전문직업에 자신의 각오를 테스트해볼 수 있게 했다.

▷상세한 정보를 보시려면 세계의 주요대학 도표를 참조하십시오.

한국의 대학

'대학'이라는 말의 근원을 서구사회에서 찾을 때, 한국의 '대학'은 서구의 '대학'과 그 의미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서구사회에서 대학(교)은 고등교육기관들 중 하나로 명백한 특성과 역사적 성격을 갖고 자생적으로 발전한 반면 한국의 경우 대학은 근대교육의 도입과 함께 서구적인 형태를 빌려 시작되었고 일반적으로 고등교육 전체를 통칭하는 말로 사용되며 전통적인 고등교육과는 맥을 달리하고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전통적인 고등교육기관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에 설립된 태학이라 불렸던 유교대학에 근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태학은 관학(官學)으로서 중국교육제도의 영향을 받아 유교경전을 주로 가르쳤을 것으로 추측된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당나라의 국자감을 모방하여 682년 국학을 세우고 교육했는데 국학의 교육은 점차 관료화되었다. 고려시대에는 992년 국자감을 설치했는데 국학·성균감·성균관 등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국자감은 국가적인 종합대학의 성격을 갖고 등장하여 국자학, 태학, 사문학, 율학·서학·산학 등의 다양한 교육과정을 포함했다.

실질적으로는 국자학이 고등교육기관의 성격을 띠며 과거제와 밀접한 관련 속에 발달했다. 조선시대에는 성균관에서 고등교육을 담당했다. 전통적인 고등교육은 중국교육제도에 기초한 소수 엘리트 중심의 유교교육으로 관리양성과 직결되어 있었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근대에 이르러 1894년 갑오개혁에 의해 성균관은 구교육제도의 일면에 신교육제도를 결합한 제도로 개정되었으나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다. 일제시대의 고등교육정책은 억압정책으로 일관되었다. 총독부는 국채보상운동에서 모금된 기금으로 계획되었던 민립대학을 비롯, 모든 대학의 설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1915년 '전문학교규칙'에 의하여 4개의 관립학교와 경신학교(연희전문)가 전문학교로 인가를 받았고, 이를 필두로 세브란스·보성전문·이화여전·숙명여전·불교중앙학립 등이 전문학교로 문을 열었다. 1924년에 일제강점기 동안의 유일한 대학으로 경성제국대학이 설치되었다.

미군정하에서 4년제 대학이 제도화되었으며 1946년 8월 국립종합대학교 설립안에 의해 서울대학교가 설립되었다. 이어서 일제시대의 전문학교들이 사립종합대학교로 변모했다. 1945년 8·15해방 당시 총 19개 교에 불과했던 고등교육기관이 1948년에는 종합대학교 4개, 단과대학 23개 등 모두 42개에 이르는 급속한 양적 팽창을 이루었다.

해방 이후 개방적인 교육정책으로 사립학교의 설립이 활발하여 양적 팽창을 가속시켰고 사학문제는 이후 한국 고등교육 발달의 특징이 되었다. 현행 고등교육제도의 기초는 1951년 3월 20일 법개정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때 정립된 고등교육제도는 외형적 구조에 있어서 미국식 모형을 닮은 것이었고 운영방식에 있어서는 일본식 모형의 전통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실제에 있어서 하나의 혼합모형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1950년대의 방임정책에 이어 1961년 이후 전면적 통제정책으로 일관된 고등교육정책은 1980년대 후반부터 민주화 추세의 영향을 받아 자율과 통제의 균형을 모색하고 있다.

1985~87년 대통령 직속하에 설치된 교육개혁심의회는 고등교육개혁에 대한 일련의 새 구상을 제시했다. 현행 교육법상 대학은 국가와 인류사회 발전에 필요한 학술의 심오한 이론과 그 광범위하고 정밀한 응용방법을 교수·연구하며 지도적 인격을 도야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종별로는 4년제 대학(교)·전문대학·교육대학·방송통신대학·각종학교·대학원 등이 있다. 4년제 대학(교)은 원칙적으로 단과대학과 종합대학교로 구분되며 후자는 3개 이상의 단과대학(그중 하나는 자연계임을 필수로 함)을 가지고 반드시 대학원을 갖추고 있다.

전문대학은 이전의 초급대학·전문학교·실업고등전문학교 등을 개편하여 1979년 공식 발족한 단기고등교육기관이다. 4년제 교육대학이 있고, 1972년에 서울대학교 부설로 발족해 1982년 독립한 한국방송통신대학이 있으며, 대학 수준의 다양한 각종학교와 개방대학이 있다.

대학원은 1946년부터 시작되었으며 1959년부터 특수대학원이 제도화되어 일반대학원과 전문대학원으로 2원화되고 있다. 급속한 양적 성장으로 대학이 대중화되면서 한국의 대학은 다양한 교육적 요구에 부응하며 동시에 고등교육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

▷상세한 정보를 보시려면 한국의 대학(교) 현황 도표를 참조하십시오.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한국브리태니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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