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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7-11-24 (토) 08:40
분 류 사전2
ㆍ조회: 1831      
[지역] 중앙아시아 (한메)
중앙아시아 中央- Central Asia

아시아의 중앙부.

넓은 뜻으로는 동ㆍ서투르키스탄 외에 카자흐초원ㆍ준가얼분지ㆍ티베트ㆍ몽골ㆍ아프가니스탄 북부ㆍ이란 동부ㆍ남러시아 초원을 포함하여, 내륙아시아를 말한다. 반면 좁은 뜻으로는 동ㆍ서투르키스탄의 오아시스 정주지대만을 가리킨다.

또한 옛 소련에서는 중앙아시아를 2가지 방법으로 표현하였다. 스레드냐야아지야(Srednyaya Aziya;Middle Asia라는 뜻)는 서투르키스탄의 우즈베키스탄ㆍ키르기스스탄ㆍ타지키스탄ㆍ투르크메니스탄 4개국이 차지하는 지역을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스레드냐야 아지야 이 카자흐스탄(Srednyaya Aziya i Kazakhstan;중앙아시아와 카자흐스탄이라는 뜻)이라고 연칭하여 옛 소련령 내의 중앙아시아 전역을 가리켰다.

그리고 첸트랄리나야아지야(Tsentral'naya Aziya;Central Asia라는 뜻)는 옛 소련령 외의 중앙아시아, 즉 동투르키스탄ㆍ준가얼분지ㆍ티베트ㆍ몽골을 가리켰다. 즉, 옛 소련에서는 넓은 뜻의 중앙아시아(내륙아시아)의 호칭을 옛 소련 영내지역과 영외지역으로 구별하여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동ㆍ서투르키스탄과 그 북쪽으로 이어진 카자흐스탄 및 준가얼분지 일대를 포함하여 중앙아시아라고 한다.

[자연]

중앙아시아는 연강우량이 매우 적어서 심한 건조지대에 속하며, 타클라마칸ㆍ키질쿰ㆍ카라쿰 같은 광대한 사막이 있다. 또한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파미르를 중심으로 4000∼7000m 정도의 산들이 이어진 쿤룬[崑崙]ㆍ톈산[天山]ㆍ알타이ㆍ힌두쿠시 같은 높고 험한 산맥이 있다.

만년설이 덮인 이 산들의 해빙수는 시르다리야ㆍ아무다리야ㆍ제라프샨ㆍ무르가브ㆍ발흐ㆍ추ㆍ탈라스ㆍ야르칸드ㆍ일리 등의 여러 하천을 이루고 이들은 계곡을 거쳐 사막 가운데로 흘러, 어떤 강은 아랄해ㆍ발하슈호ㆍ이시크쿨 등의 호수를 형성하나 어떤 것은 사막의 모래 속으로 모습을 감춘 <꼬리 없는 강>도 있다.

알타이산맥 남서기슭에서부터 톈산산맥 북쪽 기슭을 거쳐 아랄해ㆍ카스피해 북쪽 해안에 이르는 지역은 준가얼분지ㆍ카자흐초원 등의 광대한 초원지대이다. 그리고 물이 매우 적은 사막 가운데에는 예로부터 하천ㆍ샘ㆍ카레즈(karēz;qanēt)의 물을 이용한 오아시스가 이루어져 있다.

극심한 건조지대인 중앙아시아에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곳은 <사막 가운데의 섬>으로 비유되는 남부의 오아시스와 북부의 광대한 초원지대, 톈산ㆍ힌두쿠시 같은 산지에 부분적으로 분포하는 산간 목초지로 한정된다. 남부의 오아시스지대 주민이 농경정주민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북부의 초원지대와 산간 목초지의 주민은 유목민이었다. 즉 중앙아시아에는 그 지리적 조건에 대응하여 북부의 유목민과 남부의 정주민이라는 생활양식이 전혀 다른 2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살고 있어 중앙아시아는 <초원과 오아시스의 세계>라고도 할 수 있다.

[역사]

중앙아시아의 역사

북부 초원 지대와 산간 목초지를 거주지로 한 유목민과, 남부 오아시스 지대에 거주한 농경 정주민의 상호 관계를 한 기축으로 하고, 주변에 자리잡은 중국ㆍ서아시아ㆍ유럽ㆍ인도 문화권과의 빈번한 정치적ㆍ문화적 교류를 또 다른 기축으로 하여 전개되었다. 그러므로 이 지역의 역사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유목민과 정주민의 상호 관계인 남북 관계와, 주변 지역과의 정치 문화적 교섭 관계인 동서 관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먼저 남북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정치적인 지배ㆍ피지배 관계이다. 역사적으로는 BC 2세기의 흉노(匈奴), 5세기의 유연(柔然)ㆍ고차(高車)ㆍ에프탈, 6∼7세기의 돌궐(突厥)에 의한 오아시스지대 지배를 예로 들 수 있다. 이 경우 군사력이 우세한 유목민은 열세의 군사력을 가진 오아시스 정주민의 지배자가 되어, 자신들에게 필요한 각종 생활 물자를 조달받고 오아시스 지대를 통과하는 대상(隊商)들로부터 통행세를 징수하는 등 경제적으로 정주민에 의존하였다.

이에 반하여 정주민은 유목민의 강력한 군사적 지배 아래에서 중국ㆍ서아시아 등의 침략으로부터 오아시스 지대와 동서 교통로(실크로드)의 안전을 보장받고 자신들의 상업 활동을 널리 확대할 수 있었다. 유목민과 정주민의 지배ㆍ피지배 관계와 결합된 이 공존 관계로 중앙아시아는 한때 큰 발전기를 맞았다.

소그드 상인과 같은 전(前)이슬람시대의 오아시스 상인들은 돌궐ㆍ위구루 등 유목 국가 내부에 깊이 파고들어 그들의 군사력을 업고 중국과 몽골 사이 무역을 독점하는 등 국제적 규모의 상업 활동을 펼쳤고, 이 과정에서 종교ㆍ문자 등과 같은 오아시스지대 문화가 전파되어 유목 지대는 빠르게 문명화되었다.

유목민의 군사력과 정주민의 경제력이 직절히 결합된 결과 이 지역에는 9∼10세기의 사만 왕조, 14∼15세기의 티무르 왕조와 같은 강력한 국가가 출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기마 전술에 의한 기동력에 주로 의존한 유목민의 군사력이 화기를 주체로 한 근대 선진 국가의 군사력에 맞설 수 없게 되면서, 중앙아시아는 16세기 이후의 정체기를 거쳐 19세기에 와서는 결국 청(淸)나라ㆍ러시아 등에 합병당하는 역사를 맞게 되었다.

다음으로 동서 관계의 범주에 드는 역사적 사실로는 아케메네스 왕조ㆍ사산 왕조ㆍ옴미아나드 왕조ㆍ아바스 왕조 등 서아시아 여러 나라의 서투르키스탄 지배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과 같은 유럽 세력의 도래를 들 수 있다. 한편으로는 <서역 경영>이라 일컬어지는 중국 한(漢)나라ㆍ당(唐)나라의 동투르키스탄 진출도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동ㆍ서 외국세력의 단속적(斷續的)인 진출로 이 지역은 동서문화가 서로 교차하는 중요한 무대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상의 사실들로 중앙아시아의 역사는 편의상 4개 시대로 구분될 수 있다. ① 고고학적 사설로만 시대 정황이 파악되는 선사시대(BC5000년 무렵∼BC7세기 무렵) ② 오아시스정주지대에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아리아계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불교ㆍ조로아스터교ㆍ마니교ㆍ네리토리우스교 등의 종교가 혼재하였던 전(前)이슬람시대(아리아지대;BC6세기 무렵∼9세기 무렵) ③ 오아시스지대에 터키족 유목민이 진출하여 이 지역을 터키이슬람세계로 편입시킨 터키이슬람시대(10세기 무렵∼19세기 전반) ④ 청나라ㆍ러시아 등의 합병이 있은 뒤 이 지역에 사회주의가 파급된 근대ㆍ현대(19세기 후반 이후) 4개이다.

[사회]

중앙아시아의 초원과 산간 목초지의 주민, 즉 유목민의 재산은 말ㆍ양ㆍ염소ㆍ소ㆍ낙타 등 본능적으로 무리를 이루는 유제류(有蹄類)동물이었다. 유목민은 이들 동룰과 함께 여름거주지(夏營地)와 겨울거주지(冬營地) 사이를 계절에 따라 정기적으로 이동하였다. 이동을 쉽게 하기 위해서 그들은 양모를 압축하여 만든 조립식 펠트제 텐트에서 생활하였다.

식생활은 주로 드라이요구르트ㆍ버터ㆍ치즈 같은 유제품으로 충당하였으며, 그들의 주요 재산인 동물의 고기는 축제나 손님접대, 겨울철 보존식 등 특별한 기회나 용도로 제한되어 있었다. 또한 그들의 모자ㆍ구두ㆍ의복 등 일상용품도 동물의 모피나 털을 이용하여 만들었다. 즉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의식주는 모두 기본적으로 그들의 소유물인 동물에 의존하였으므로, 그들의 사회는 남쪽의 오아시스정주사회로부터 독립한 독자적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유목민의 가장 작은 사회적 단위는 한 텐트에서 동거하는 가족이며, 이들 가족은 선조가 같다고 생각되는 다른 가족과 함께 하나의 유목집단을 형성하였다. 이 유목집단을 구성한 가족의 수는 일정한 것이 아니라 몇몇 가족인 경우도 있는가 하면 50가족이나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유목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단위는 씨족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씨족이 다른 몇 개의 씨족과 연합하여 큰 유목집단을 형성했을 때는 그것을 부족이라 부른다. 또 그 부족이 다른 여러 부족과 연합하여 더 큰 정치적ㆍ사회적 집단을 형성했을 경우 그것을 부족연합체 또는 국가라고 한다. 즉 유목국가란 씨족ㆍ부족을 그 구성요소로 삼는 피라미드 모양의 정치적 통일체이고, 이것이 그 외부에 존재한 다른 부족이나 부족연합체를 합병했을 때 그 지배영역은 매우 광대해진다.

이와 같이 유목 제국(遊牧帝國)이라 할 수 있는 강대한 국가는 중앙아시아 역사상에서 눈부신 활동을 보인 흉노ㆍ돌궐ㆍ위구르ㆍ몽골 제국 등이다. 이들 유목국가 또는 유목제국의 군주는 각각 국가나 제국 형성에 핵심이 되었던 특정한 씨족성원 가운데서 선출되며 선우(單于) 또는 칸이라는 칭호를 사용했으며, 군주는 충분한 통솔력을 갖추지 못했을 경우에는 유목귀족들에 의해 즉시 교체되었다는 점으로 보아 결코 절대군주는 아니었다.

즉 군주의 선출이나 외국 원정같은 국가적 중요 사항은 그 국가의 구성원인 여러 부족의 지배자들, 즉 베그(beg) 또는 노얀(noyan)이라 하는 유목귀족들로 구성된 국회(khuriltai)의 논의를 거쳐서 결정하였다. 유목국가의 군대는 칸을 경호하는 친위대를 제외하고 그 국가의 구성요소인 씨족ㆍ부족의 단위로 편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각 씨족 내지 부족의 우두머리는 각각 자기 씨족이나 부족을 이끌고 전쟁에 참가하였다. 그들은 그 씨족원ㆍ부족민의 많고 적음에 따라 십인대(十人隊)ㆍ백인대ㆍ천인대ㆍ만인대라는 십진법적 군사조직으로 편제되었고, 전체적으로는 좌익ㆍ우익 또는 중군(中軍)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즉 중앙아시아 유목민 사회는 평화시의 사회 조직과 전시의 군사 조직이 일치하고 있었으며, 이것이 유목 국가의 군사력의 근원이었다. 이와는 달리 남부의 오아시스 지대 주민들은 정주농경민이었으므로 사회 조직이 북부의 유목민 사회와는 두드러진 대조를 보였다.

중앙아시아의 오아시스는 매우 작은 농촌이 교통로상의 역참(驛站)인 오아시스를 제외하면 모두 시가지를 둘러싼 성벽을 가진 성곽도시였다. 성벽 안에는 도시지배자의 권위를 상정하는 내성(內城)ㆍ궁전 외에 좁은 가로로 구분된 수많은 거주구가 있어서 오아시스도시 주민의 일상생활의 터전이 되었다. 각거주구에는 주민의 정신생활의 중심인 신전ㆍ사원이 있었고, 성안 각처에 주민의 상업ㆍ산업 활동의 중심인 바자르(市場)나 주민들의 휴식공간인 공동욕탕 등이 있었다.

농촌지역은 성 밖에 위치하며 그 곳에서 생산된 농작물이 성안의 바자르에서 매매되었다. 11세기 동투르키스탄 서부의 오아시스도시 주민을 당시 문헌에서 다음과 같이 분류해 놓았다. ① 베그(지배계급) ② 예언자 마호메트의 자손들 ③ 이슬람학자 ④ 의사 ⑤ 무술사(巫術師) ⑥ 점몽술사(占夢術師) ⑦ 점성술사 ⑧ 시인 ⑨ 농민 ⑩ 상인 11 유목민 12 직인(職人) 13 빈자(貧者) 등이다. 이 가운데 베그계층은 토기ㆍ점포ㆍ제분소ㆍ수리권(水利權) 등을 소유하였고, 그것을 농민ㆍ상인ㆍ직인들에게 대여하여 많은 이익을 올렸다.

또한 그들은 각 도시의 여러 관직(하킴ㆍ이시크아가 등)도 독점하고 관직에 따르는 징세권 등을 이용하여 많은 부를 축적하였다. 15세기 이후에는 나크슈반디교단(이슬람신비주의교단)의 샤이흐(長老)처럼 종교관계 성직자가 베그와 마찬가지로 막대한 토지와 재산을 소유한 예도 있었다. 오아시스정주지대에서는 오아시스정주민을 지배자로 하는 강력한 통일국가가 형성되는 일이 매우 드물었고, 사막 가운데의 섬으로 비유되는 그 자연적인 조건도 작용하여 각각 고립하는 경향이 심하였다.

그러나 때로는 하나의 오아시스도시를 중심으로 몇 개의 주변 오아시스도시가 연합하여 오아시스도시연합체를 형성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이 연합체에는 다른 연합체를 지배하에 둠으로써 보다 큰 정치적 통일체를 형성할 만한 힘이 없었으므로, 결국 북방의 유목국가 같은 외국세력에 합병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문화]

초원지대의 유목민은 유목생활에 걸맞는 천막ㆍ바지ㆍ유제품 등 완전한 생활문화를 형성하는 한편, 정신생활면에서는 샤머니즘 신봉자였다. 그것은 그들 사이에 마니교ㆍ불교ㆍ이슬람교 등이 침투한 뒤에도 근본적으로는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유목민 사이에 문자의 사용은 7세기 말∼9세기 중엽의 돌궐문자, 13세기 이후의 몽골문자 등 약간의 예는 있었으나 이들은 기본적으로는 문자를 사용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 사이에는 뛰어난 구전문학(口傳文學)이 발달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마나스》 《알파무슈》 등 장대한 영웅서사시는 오늘날에도 키르기스스탄ㆍ카자흐스탄 등의 터키계 유목민 사이에 구전으로 전해져 애송되고 있다.

한편 남부의 오아시스정주민은 전이슬람시대에 실크로드를 거쳐서 들어온 불교ㆍ조로아스터교ㆍ마니교ㆍ네스토리우스교 같은 외래 종교를 신봉하였고, 이들 종교의 경전이 호탄사카(Khotan-Saka)어ㆍ토카라어(Tocharian) 등 현지의 인도유럽어족계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또한 각 오아시스도시의 사원ㆍ신전ㆍ궁전 등에는 외래문화의 영향을 받은 벽화와 조상(彫像)이 장식되어 있어 전이슬람시대에 이 지역에서는 국제적 문화가 육성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이슬람화가 늦었던 서(西)위구르왕국의 문화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이슬람시대가 되면서 불교를 비롯한 이교적(異敎的) 요소는 이 지역에서 서서히 사라져 이슬람교만을 믿는 일률적인 터키이슬람세계로 변질되어 갔다. 각 도시에는 종래의 여러 가지 종교적 건조물 대신에 모스크(回敎聖院)ㆍ마드라사(madrasa;교육시설) 등 이슬람적 건조물이 건립되었고, 종래의 복잡한 언어 대신 이슬람을 상징하는 아라비아문자를 이용한 터키어가 쓰이기 시작하였다. 이슬람으로의 개종(改宗)은 결혼ㆍ상속 등 주민의 일상생활양식도 모두 이슬람적인 것으로 변화시켰다. 20세기에 들어서자 이 지역에 사회주의가 파급되어 1000년 이상 뿌리깊게 정착한 이슬람적 가치관을 일소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한편 고대중앙아시아의 음악은 옛 소련의 고고학발굴에서 판명된, 이 지역에 널리 분포하였던 악기로 알 수 있다. BC4세기∼BC3세기의 것으로 고대오리엔트 또는 고대그리스의 악기(하프형ㆍ리라형 현악기)를 볼 수 있으며 기원 전후에 흉노가 세력을 자랑하던 시대의 것 가운데에는 유목민의 악기(류트형 현악기)가 많이 발견되었다. 불교문화가 번영했던 시대의 출토품에는 비파ㆍ공후류와 작은 요고(腰鼓)를 볼 수 있어서 각 시대의 음악을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중국에서 호악(胡樂)이라고 전해지는 것이 중앙아시아의 음악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당나라 때에 완성된 십부기(十部伎) 중에서 오부기(五部伎;龜玆ㆍ康國ㆍ疏勒ㆍ安國ㆍ高昌의 각 음악)까지가 중앙아시아 도시국가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어서 각각 독자적 음악양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8∼10세기에 걸쳐 중앙아시아의 대부분이 이슬람화하여 10세기의 파라비, 11세기의 이븐 시나 같은 음악이론가는 중앙아시아 출신이지만 아랍 음악 이론가로 알려져 있다.

15세기 티무르왕조의 중심지었던 사마르칸트에서는 《음악론》을 남긴 자미가 유명하다. 사마르칸트 궁정음악의 편린은 현재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에 <샤슈마콤(shashmakom;6개의 마캄)>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 중앙아시아의 여러 독립국 중에서 이슬람화가 늦은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는 샤머니즘음악도 남아 있으며, 도시적 문화가 번영했던 우즈베키스탄ㆍ타지키스탄, 중간적인 투르크메니스탄 등은 각각 독자적인 음악 문화의 재흥에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악기로는 찰현악기(擦絃樂器)에 카지흐스탄의 코비즈, 키르기스스탄의 키야크, 투르크메니스탄ㆍ우즈베키스탄ㆍ타지키스탄의 기자크가 있고 발현악기(撥絃樂器)에 카자흐스탄의 돈브라, 키르기스스탄의 콤즈, 투르크메니스탄ㆍ우즈베키스탄ㆍ타지키스탄의 도타르 등이 있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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