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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4-02 (금)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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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토기 (민족)
토기(土器)

개설

넓은 뜻에서의 토기는 진흙으로 빚어 구워서 만든 모든 도구를 포함하지만, 일반적으로 토기란 그러한 도구들 중에서 용기류만을 일컫는다. 재료 및 제작방법 등이 토기와 비슷한 용기류에는 석기(庠器), 도기(陶器), 자기(磁器) 등이 있다.

석기는 진흙 태토(胎土)를 원료로 하는 점에서는 토기와 같으나, 토기보다 더 높은 고열로 구워 때로는 기체(器體) 표면에 자연유(自然釉)가 나타나는 점이 다르다. 도기와 자기는 인위적인 유약을 발라 구워서 기벽(器壁) 전체가 유리질화해 물의 흡수를 완전히 차단한 것이다.

특히, 자기는 고려시대의 청자(靑磁)와 조선시대의 분청자(粉靑磁) 및 백자(白磁)와 같이 원료부터 토기와 달리, 단순히 진흙이 아닌 물로 거른 정선된 태토를 쓰며, 초벌 구이에 이어 유약을 칠한 후 두벌구이를 한다.

토기나 석기는 진흙으로 형태를 만들어 말린 다음 불에 구우면 200℃에서 진흙 속의 수분이 빠져나가고, 600℃에서 결정수(結晶水)가 없어진다.

다시 그 이상 높은 열을 가하면 진흙 속의 탄소(炭素)가 산화해 탄산염(炭酸鹽)이나 유산염(硫酸鹽)이 분해되어서 단순히 건조시킨 진흙과 질이 달라진다. 대체로 토기라 함은 진흙 속의 광물이 용해되지 않고 진흙의 질적 변화를 가져오는 600∼800℃에서 구워진 것을 말한다.

삼국시대의 신라나 가야 지역에서 발견된 토기들에는 1,000℃ 이상의 고온으로 구워진 석기질의 경질토기(硬質土器)가 있다. 이는 진흙 속의 광물질이 녹아서 기벽에 유리질의 막을 형성하기까지 한다.

이것을 토기라고 부르는 것은 토기와 석기를 구분하는 기준이 확립되기 전부터 그렇게 불려왔을 뿐만 아니라 표면에 형성된 유리질의 자연유약도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고온(高溫)으로 인한 자연현상이라는 점에서, 고려 및 조선시대의 인위적인 유약을 사용한 도기나 자기와는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토기의 특징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들 수 있다. 첫째, 토기는 석기(石器)ㆍ금속기류와 달리 생활 주변에서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다. 둘째, 가소성(可塑性)이 있어 성형(成形)ㆍ조정(調整)ㆍ시문(施文) 등의 작업이 용이하다.

셋째, 굽는 방법에 따라 많은 변화를 줄 수 있으므로 돌ㆍ금속 등 다른 재료에 비해 질ㆍ형태ㆍ색상을 다양하게 할 수 있다. 넷째, 토기는 깨지기 쉽지만 새로 만들기도 쉽기 때문에 유적의 발굴 유물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다른 유물에 비해서 연대적 변화를 잘 보여주며, 소속 집단의 문화의식이 예민하게 반영된다.

그러므로 토기의 제작기술ㆍ기종(器種)ㆍ형태ㆍ문양 등의 연구는 고고학적 연대의 편년이나 지역적인 문화의 차이를 추구하기 위한 단위로서 표지적(標識的)인 역할을 한다.

[토기의 발생]

인류가 최초로 사용한 생활용기는 식료채집경제(食料採集經濟)생활을 하던 구석기시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나무ㆍ돌ㆍ가죽ㆍ동물뼈나 단단한 열매껍질 따위의 자연물을 그대로 이용하거나 그것을 약간 가공해서 만든 것이다.

그러나 정착을 하고 농경ㆍ목축 등의 식료생산경제(食料生産經濟)의 생활을 하게 된 신석기시대가 되면서 마제석기와 토기를 발명해 점차 발달하게 되었다.

토기를 발명하게 된 정확한 동기는 아직 분명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대체로 자연물로 된 기구를 흙으로 모방해 사용하다가, 다시 그것이 불로 구워지면 더 단단해진다는 것을 우연히 경험한데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광주리에 진흙을 발라 쓰던 용기가 우연히 구워져서 단단해진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토기가 발명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용기로서의 토기로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것은 이란ㆍ이라크ㆍ터어키 등 서아시아지역의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볼 수 있다. 이라크의 자르모(Jarmo) 유적은 신석기시대의 것으로, 토기가 없던 시기에서 토기사용시기로 이어지는 문화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 유적에서는 이동될 수 있는 일반적인 토기의 출현에 앞서 ‘땅바닥에 붙어 있는 용기’가 발견되었다. 이는 땅을 파고 구덩이 안쪽 전체 둘레를 진흙으로 바른 다음 불을 질러 구운 것이다. 여기에서 운반할 수 있는 토기로 발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토기의 발생에 대해서는 일원설(一元說)과 다원설(多元說)이 있다. 후자가 우세하다. 일원설은 서남아시아에서 토기가 발생해 전세계로 파급되었다는 주장이다. 다원설은 서남아시아지역 외에 아메리카나 일본 등지에서도 독자적으로 토기가 발생하였다는 주장이다.

민속적인 예를 통해서 토기는 물레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여성이, 물레를 사용한 경우에는 남성에 의해 제작되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하직기[土師器]가 여성, 스에기[須惠器]가 남성에 의해 제작되었다고 한다.

고고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선사시대의 토기제작은 주로 여성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본다. 한편으로 대형 토기의 제작, 토기 생산량의 증가, 점토나 땔감의 채취, 운반 등을 고려할 때 토기 제작에 있어서 남성의 역할 분담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철기시대에 여전히 물레를 사용하지 않고 단순히 손으로 빚은 소형의 토기가 많이 출토되고 있다. 그러나 점차 물레의 사용 등 토기제작에 일정한 기술이 요구되어 전문적인 제작집단이 출현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토기의 속성]

토기가 가지고 있는 특성에는 재료(材料)ㆍ성형(成形)ㆍ문양(文樣)ㆍ소성(燒成)ㆍ용도(用途)ㆍ형태(形態) 등이 있다.

(1) 재료

토기의 원료는 점토로서 성분은 주로 규소ㆍ알루미늄ㆍ철ㆍ마그네슘 등으로 구성된다. 진흙의 질에 따라 성분에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화성암의 주성분인 규소와 알루미늄은 반드시 들어 있다.

토기의 태토가 되는 점토는 형성된 장소에 따라 1차적 점토와 2차적 점토로 분류된다. 1차적 점토는 화강암ㆍ석영암이 포함된 암석이 풍화해 제자리에 퇴적된 것이고, 2차적 점토는 1차적 점토가 비ㆍ바람 또는 흐르는 물에 따라 다른 장소에 새로이 퇴적된 것이다.

1차적 점토는 대체로 구성 입자가 굵고 가소성이 부족하며, 불에 구우면 백색을 나타내는 성질을 가진다. 2차적 점토는 철분ㆍ유기물 등 다른 성분이 포함되기는 하나 입자가 곱고 가소성이 풍부해 불에 구우면 철분이나 유기물로 인해 적색ㆍ황갈색ㆍ적갈색 등을 띠게 된다.

토기제작의 초기에는 지역에 따라 1차적 점토 또는 2차적 점토를 그대로 사용했으나, 차츰 경험이 쌓이고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굵은 입자나 잡물을 제거해 좀 더 고운 점토를 쓰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잡물이나 모래를 알맞게 섞어서 이용하기도 하였다.

입자가 고운 점토를 얻는 기본방법은 세계 어느 지역이나 거의 같다. 그것은 천연 진흙을 물에 풀어 오래 휘저어서 가라앉은 굵은 입자와 물 위에 뜬 불순물을 제거한 나머지를 건조시켜 분말상의 고운 점토를 얻는 방법이다.

우리 나라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 중 모래알과 운모조각이 섞인 것을 강변에 퇴적된 2차적 점토로 구운 것이다. 또 청동기ㆍ철기시대의 붉은간토기[紅陶]ㆍ검은간토기[黑陶], 그리고 회백색연질토기(灰白色軟質土器, 이른바 와질토기) 중에는 물에 거른 분말상의 점토를 태토로 이용한 것이 많다.

(2) 성형

성형은 점토를 물로 반죽해 용도에 따라 그릇형태를 만드는 것이다. 성형방법에는 회전축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와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회전축을 쓰지 않는 경우는 다시 수날법(手捏法)ㆍ적륜법(積輪法)ㆍ권상법(卷上法)ㆍ분할성형법(分割成形法) 등으로 나뉜다.

수날법은 반죽한 흙을 손으로 직접 주물러 형체를 만드는 방법으로 가장 초보적인 조형기술이지만, 제작자의 의도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기법이다. 그러나 항아리처럼 대형의 용기를 만들기는 어렵다.

적륜법(ring building method)은 반죽한 흙으로 여러 개의 도너츠 같은 고리[環]를 만들어 의도하는 기형으로 쌓아 올리는 방법이다. 고리의 접속부분은 안팎을 손으로 문질러 기벽의 두께를 조절하고 표면을 다듬는다.

권상법(coiling method)은 반죽한 흙 띠를 길게 만들어 그것을 스프링처럼 감아 올리는 방법이다. 접속부분은 역시 손으로 문질러 조정한다. 우리 나라 토기 중 빗살무늬토기나 타날문토기의 큰 항아리는 권상법으로 된 것이 많다.

민무늬토기 중 작은 것은 대부분 수날법을 썼고 큰 것은 적륜법이나 권상법을 썼다. 분할성형법은 적륜법의 변형으로 한 번의 제작공정으로 토기 전체를 성형하기 곤란한 대형 토기를 몇 등분으로 나누어 만드는데 이용된다.

기벽을 다듬는 작업에는 물손질ㆍ긁기ㆍ점토막입히기(slip)ㆍ빗질ㆍ깎기 등이 있다. 물손질은 손에 물을 묻혀 쓰다듬는 방법이고, 긁기는 나뭇가지ㆍ조개껍데기ㆍ돌조각 등으로 긁거나 문지르는 방법이다.

점토막입히기는 토기의 표면에 굵은 입자가 노출될 경우 고운 진흙으로 다시 한번 발라줌으로써 표면을 곱게 하고, 또한 물의 흡수를 막아 주는 방법이다.

빗질은 굵고 가는 빗으로 기벽면을 긁어 고르게 하는 방법으로 표면에 빗질 자국이 남게 된다. 깎기는 수날법ㆍ적륜법ㆍ권상법 등으로 만들어져서 고르지 못한 표면을 대칼 따위의 연장으로 깎는 방법으로 깎인 자국이 남는다.

한편, 토기의 제작에는 회전축을 가진 발달된 기구를 사용하게 된다. 이 경우에는 돌림판[回轉臺]과 물레[陶車] 등이 사용된다.

돌림판은 회전축의 구조가 발달되지 못한 것이어서 받침의 무게가 가볍고 탄력이 없기 때문에 회전을 위해서는 잦은 손동작이 필요하다.

이와 달리, 물레는 회전축이 발달되고 받침의 무게를 어느 정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탄력이 있어 빠른 속도의 회전을 지속시켜준다. 우리 나라에는 철기시대에 들어서면서 돌림판이 사용되다가 삼국시대에 접어들면서 속도가 빠른 물레를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3) 문양

토기의 표면에 나타난 문양에는 토기형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경우와 장식적인 목적으로 만드는 경우 등 두 가지가 있다.

우리 나라 철기시대의 타날문토기에서 보이는 격자문이나 승석문은 전자의 경우에 속한다. 토기의 형태를 만들 때 격자문의 목판(木板)이나 새끼줄을 감은 방망이로 표면을 두드리면 그러한 무늬가 나타나게 된다.

후자는 토기가 출현한 초기부터 있어왔던 것으로 시대와 지역에 따라 나타내는 기법과 양식을 달리한다. 이는 단순한 실용성을 넘어서 잉여노동의 한 발산으로 나타난 미적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미적 활동은 개인적 사고와 사회환경 등에서 작용되므로 여건이 같지 않으면 표현양식이나 기법이 달라질 수 있다.

이와 같은 문양에 대해서는 여러 각도에서 분류ㆍ분석하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부문(浮文)ㆍ침문(沈文)ㆍ채색문(彩色文) 등으로 구분한다.

부문은 기벽면에서 튀어나오는 문양으로서 점토를 덧붙여 나타내는 것이다. 신석기시대의 덧띠무늬토기[隆起文土器], 청동기시대의 구연에 돌대를 붙인 아가리띠토기[粘土帶土器], 삼국시대에 많이 나타나는 점토조각을 붙여 만든 토기들이 여기에 속한다.

침문에는 기벽을 파서 새기는 각문(刻文)과 조각된 도장 따위를 눌러 찍는 압인문(押印文) 등이 있다. 신석기시대 빗살문토기의 어골문(魚骨文)ㆍ사선문(斜線文) 등과 신라토기의 파상문(波狀文)ㆍ사선문ㆍ삼각문(三角文) 등은 각문이고, 통일신라시대의 골호에서 보이는 인화문(印花文)은 압인문이다.

채색문은 토기 표면에 안료를 칠해 문양을 나타내는 것이다. 구워진 토기에 채색하는 방법과 굽기 전에 칠해 굽는 과정에서 화학변화로 색채를 나타내는 방법 등 두 가지가 있다.

토기에 수지(樹脂)나 주(朱)를 칠하는 것은 전자에 속하고, 쇳가루와 같은 광물질의 분말이나 안료를 건조시킨 토기의 표면에 칠해 색채를 나타낸 것은 후자에 속한다.

우리 나라에는 붉은간토기처럼 전체를 칠한 토기는 많이 볼 수 있으나, 문양을 구성시킨 토기는 북부지역에서 적은 양이 알려져 있다.

(4) 소성

토기를 굽는 방법으로 가마에 지붕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구분된다. 지붕이 없는 것은 노천요(露天窯)라고도 하며, 평지나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건조한 토기를 놓고 땔나무를 덮어 쌓아서 굽는 방법이다. 노천요의 변형으로 장작을 쌓은 둘레에 흙담을 둘러서 바람을 막기도 한다.

지붕과 방을 갖춘 가마는 바닥에서 불을 때어 불꽃 위에서 토기가 구워지도록 하는 수직요(垂直窯), 화구(火口)에서 땐 불이 연도(煙道)까지 수평으로 빠져나가면서 토기가 구워지는 수평요(水平窯), 화구에서 경사진 바닥을 화염이 통과하면서 토기가 구워지는 등요(登窯)의 세 가지가 있다.

소성에 있어서는 불을 넣는 방법에 따라 토기의 색깔이 달라지기도 한다. 산화염(酸化焰)으로 구우면 노천요에서처럼 산소 공급이 충분하므로 철분이 함유된 태토인 경우는 산화제2철로 변화해 밝은 색이 나온다.

환원염(還元焰)으로 구우면 산소 공급이 불충분하므로 철분이 본래의 색깔로 되돌아가서 어두운 색상이 난다. 산화염으로 굽는 경우에도 토기가 식기 전에 짚단이나 풀단 속에 다시 넣어서 산소 공급을 차단하면 탄소의 입자가 기벽에 붙어 색상이 어두워지고, 탄소의 부착으로 흡수성을 막아주기도 한다.

(5) 용도

토기의 용도는 일상용(日常用)과 의식용(儀式用)으로 구분된다. 일상용은 일상생활에 직접 사용되는 것으로 취사용[煮沸用], 저장용, 운반용, 식탁용 등으로 나뉜다.

취사용은 굵은 입자가 섞인 태토로 만들어지고 물이나 음식물을 끓이는데 사용되었다. 기형은 밑바닥이 둥글거나 뾰족한 발형이나 시루 등이 주종으로 비교적 간소하며 2개 또는 3개를 이어서 쓰는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시루는 물을 끓이는 토기에 포개어 사용된다. 저장용은 저장굴이나 집자리 바닥에 놓아두고 곡식, 술, 기름 따위 음식물을 장기간 저장하는데 사용되는 것으로 크고 작은 단지 종류가 대부분이다. 뚜껑을 덮거나 묶는 장치를 갖춘 것도 있다.

운반용은 물이나 식품 등을 다량으로 옮기는데 사용되는 것으로서 손잡이가 달리거나 물이 넘치지 않도록 구연부를 좁게, 또는 목을 길게 만든 것도 있다. 식탁용은 일상생활에 가장 요긴한 용기로 고체나 액체의 음식을 두루 담는데 편리하도록 만들어진 용기의 총칭으로서 접시ㆍ대접ㆍ발ㆍ잔ㆍ단지ㆍ병 등 소형이 많다.

의식용은 일상생활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서 의례용과 매장용이 있다. 의례용은 청동기시대 붉은간토기[紅陶]나 검은간토기[黑陶], 고분에 부장되는 토기와 같이 일상용 토기보다는 고운 태토를 쓰며 기형이 우아하고 더러는 정밀한 문양으로 장식한다.

매장용은 사람의 사체를 매장하는데 쓰이는 토기로서 옹관(甕棺)과 골호(骨壺)가 있다. 옹관은 사람을 신전장(伸展葬) 또는 굴장(屈葬)할 만한 크기로서 1개로 된 것과 2개 이상으로 된 것이 있다. 골호는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소형이 많고, 더러는 이중으로 된 것이나 뚜껑을 갖추고 문양장식이 된 것도 있다.

(6) 형태

토기의 형식학적 연구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부문이다. 토기의 형태는 대단히 많은 변이가 있으므로 그 분류기준은 매우 복잡하고 중요한 관심사이다. 고고학자들은 오랫동안 이 문제로 논란을 벌여 왔으나 아직도 완전한 분류기준을 세우지 못하였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기대하기 어렵다.

토기의 각 부분은 보통 구연부(口緣部), 몸체부[胴體部, 腹部], 바닥부[低部] 등으로 나뉜다. 구연부와 몸체부 사이에 완만한 경사면을 가질 경우 이를 경부(頸部)와 어깨부[肩部]라고 나누어 부른다.

토기의 형태는 대체로 항아리(壺)ㆍ독(甕)ㆍ사발(鉢)ㆍ접시(皿)ㆍ병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이 중 어느 분류에 넣을 수 없는 것도 있고, 설사 어느 분류에 속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문제의 기형에 적합한 명칭을 붙이기 어려운 것도 있다.

그리하여 학자에 따라서는 A형ㆍB형 또는 제1형ㆍ제2형 등의 기호나 숫자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것은 어디까지나 가칭일 뿐, 기형과 논리성이 결여된 명칭으로 토기의 실체적 명칭이 될 수 없다. 그래서 토기의 형태를 설명할 때 흔히 실측도를 그리게 된다.

실측도는 토기로서의 주체부를 중심으로 기하학적 도형으로 나타낸다. 여기서 구연ㆍ바닥ㆍ손잡이 등도 중요하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토기의 형태이다. 실측도형은 토기의 중심선을 통과하는 종단면을 그린다. 중심선에서 한 쪽은 토기의 외면, 다른 한 쪽은 내면을 나타낸다. 내면의 그림에는 기벽의 두께를 보여주는 단면이 나타나도록 한다.

토기 주체부의 형태도 원통형인가 원추형인가, 안으로 굽었는가 밖으로 굽었는가 하는 따위까지 기하학적 도형으로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떠한 기하학적 기본형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를 가지고 형태 분류의 기준을 세울 수 있다.

그러나 토기 종단면의 중심선을 축으로 해 균등하게 구성된 용기가 아닌 집ㆍ동물ㆍ배 따위의 특수한 모양의 토기는 따로 기준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된다. 또 토기의 외형은 몸체의 모양이나 그것의 높이에 대한 구경(口徑)의 비율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닥이나 구연의 모양, 손잡이 등 부속부분으로도 결정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조건을 종합해볼 때, 토기의 형태분류는 주체부를 주요소로 하고, 거기에 구연부ㆍ경부ㆍ어깨 등의 기형도 첨가해서 상호간의 비율을 검토해야 한다. 또한 형태분류에 있어서는 기형뿐만 아니라 그것의 크기도 분류의 한 특징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 나라의 토기

우리 나라의 토기는 신석기시대에 발생하며, 청동기시대를 거쳐 철기시대에 이르면 고화도의 토기로 발달한다. 삼국시대의 토기는 자연유(自然釉)가 토기 외벽에 나타나는 석기질단계에 이르고, 자기(磁器)가 등장하는 고려시대 이후에도 토기는 계속적으로 사용되었다.

[신석기시대의 토기]

신석기시대의 토기에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를 비롯해 덧띠무늬토기[隆起文土器], 채문토기(彩文土器), 단도마연토기(丹塗磨硏土器) 등이 있다. 토기의 형태는 바닥면이 뾰족한 첨저형이 기본을 이루나 화분모양의 평저형도 있다.

빗살무늬토기는 손으로 빗거나 적륜법 또는 권상법으로 기형을 만들고, 노천요(露天窯)에서 구운 토기이다. 토기의 색상은 대부분 갈색이나 흑갈색 계통이고, 소성온도는 600∼700℃ 정도이다. 빗살무늬토기는 토기 표면에 빗같은 다치구(多齒具)의 무늬새기개[施文具]로 새기거나 그어 만든 각종 문양이 있는 토기이다.

토기의 겉면을 평행으로 삼등분해 위로부터 구연부ㆍ몸체부ㆍ바닥부로 나누어 각기 다르게 무늬를 장식하였다. 주요 문양은 구연부에는 평행밀집사단선문(平行密集斜短線文)ㆍ점렬문(點列文)ㆍ사격자문(斜格子文) 등이 있고, 몸체부에는 어골문이 중심을 이루며, 구연부와 몸체부 사이에 파상점선문(波狀點線文)과 같이 곡선문을 시문한 경우도 있다.

바닥부에는 대부분 평행사단선문(平行斜短線文)을 시문한다. 문양 구성이 기하학적인 선을 배합해 만들었다고 하여 ‘기하문토기(幾何文土器)’라고도 하고, 청동기시대의 민무늬토기[無文土器]에 상대되는 말로 ‘유문토기(有文土器)’로 부르기도 한다.

빗살무늬토기는 서기전 6,000∼5,000년 전에 출현한 것으로 본다. 이것은 중국 동북지방, 시베리아 등과 멀리 북부 유럽에도 분포하고 있어 북방문화권(北方文化圈)을 이룬다. 또 한반도 내에서는 주로 압록강ㆍ대동강ㆍ한강ㆍ낙동강 등 주요한 강의 주변, 해안가 및 도서지방 등에서 발견되어 각 지역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다.

덧띠무늬토기는 토기 표면에 가는 점토띠를 손으로 붙여 만든 토기로 부산 동삼동 유적을 비롯한 남부지역에서 발견된다. 빗살무늬토기보다도 더 아래층에서 발견되고 있어 빗실무늬토기보다 더 이른 시기의 토기임을 알 수 있다.

채문토기는 나진 초도 유적과 평북 용천 신암리 등 북부지방 일부에서 발견된다. 이는 토기를 구운 뒤에 적색ㆍ황적색 등으로 표면에 문양을 그렸으며, 태토와 채색수법이 중국 요령지방의 토기와 유사하다. 단도마연토기는 토기 표면에 붉은 칠을 하고 마연한 토기로 남부지역의 신석기시대 후기에 나타난다.

[청동기시대의 토기]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민무늬토기(無文土器)이며, 그 외에 붉은간토기[紅陶], 검은간토기[黑陶] 등이 있다.

민무늬토기의 특징은 일반적으로 갈색 또는 황갈색의 색상, 납작한 바닥[平底]의 기형, 장석ㆍ석영립 등 화강암계의 굵은 사립이 섞인 태토의 사용, 문양이 없는 것 등이다. 민무늬토기는 빗살무늬토기와 마찬가지로 손으로 빚거나 적륜법 또는 권상법으로 성형해 노천요(露天窯)에서 구워졌다.

민무늬토기는 대체로 서기전 1,000년경에 종래의 빗살무늬토기에서 변화ㆍ발전되어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지역마다 형태가 다르고 매우 다양하다.

대표적인 예는 압록강 중상류에 분포하는 공귀리식토기, 청천강 이북과 중국 동북지역에 널리 분포하는 미송리식토기, 대동강과 재령강을 중심으로 발달된 팽이형토기(角形土器), 충청도와 전라도에 분포하는 송국리식토기, 우리 나라 전역에 고르게 분포하는 공렬토기(孔列土器), 골아가리토기[口脣刻目土器], 한강 이남에서 청동기시대 후기에 나타나는 아가리띠토기[粘土帶土器] 등이 있다.

붉은간토기는 고운 흙을 사용하고 표면을 반들거리게 만들고 산화철을 바른 것으로, 기형은 둥근 바닥의 긴 목을 가진 단지이다. 함경지방으로부터 중부지역을 거쳐 남부지역까지 분포하고 있으며, 고인돌과 집자리에서 출토되고 있다.

검은간토기는 흑색마연토기로 불리기도 한다. 장경호(長頸壺)를 기본으로 청동기들과 함께 출토되는 예가 많아 청동기시대 후기에 속한다.

[철기시대의 토기]

철기시대에는 민무늬계 토기와 타날문토기(打捺文土器)가 사용되었다. 민무늬계 토기는 청동기시대의 민무늬토기가 발전되어 경도가 높아지고, 기형이 다양하다. 이는 ‘경질무문토기(硬質無文土器)’로 불린다.

중부지역에서는 중도식토기(中島式土器)라 불리는 외반구연호(外反口緣壺)가 특징인 반면에, 남부지역에서는 단면삼각형점토대토기가 특징이다. 기형은 심발형, 옹형, 호형, 파수부토기, 대부토기, 발형토기와 잔, 시루, 고배, 토기뚜껑 등 다양하며 납작한 평저도 있으나 둥근 바닥이 더 많다.

타날문토기는 종래 ‘김해식토기(金海式土器)’로 불리던 것으로 민무늬토기에 비해, 태토가 정선되고, 돌림판이나 물레를 사용해 기벽이 일정하고, 표면에는 격자문(格子文), 승석문(繩蓆文), 의사승문(擬似繩文) 등 타날문이 시문되고 있다.

가마도 종래의 개방노천요(開放露天窯)가 아니라 지붕을 씌운 터널형의 등요(登窯)에서 900∼1,000℃ 이상의 높은 화력을 내어 매우 단단한 토기를 구웠다.

타날문토기는 경도에 따라 연질과 경질로 나뉘고, 색상에 의해 적갈색, 회색, 흑색, 회백색, 회청색 등으로 나뉜다. 낙동강유역의 토광묘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는 회백색의 연질토기는 와질토기(瓦質土器)로도 불리며, 기형에는 장경호, 단경호, 주머니호, 화로형토기 등이 있다.

[삼국시대의 토기]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각각 특징적인 토기들이 제작되고 사용되었다. 고구려는 중국(中國)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한식(漢式)계통의 회색 또는 흑회색의 평저토기, 파수부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표면을 마연해 광택이 나는 마연흑도도 있고, 광구평저사이호(廣口平底四耳壺)와 뚜껑이 있는 원통형 삼족기(三足器)도 있다. 표면은 대체로 무문이지만 직선, 파상문(波狀文), 연화문(蓮花文) 등이 어깨부분에 시문되어 있다.

백제토기는 승석문이 보편적으로 시문되고, 삼족기가 존재하며 평저토기가 많고, 형태가 특이한 기대(器臺)가 출토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백제토기는 태토와 색상을 기준으로 3종류로 나뉜다.

태토가 민무늬토기처럼 거칠고 화분형이 많은 적갈색연질토기, 표면이 잘 마연된 흑색토기, 경질과 연질의 회청색토기가 있다. 기형에는 원저호, 평저호, 고배, 삼족기, 기대, 벼루 등이 있다. 또한 골호도 많이 제작되었다.

신라토기는 타날문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정선된 태토를 사용하고 등요에서 환원염으로 구웠으며 물레를 사용해 다량으로 생산하였다. 고온으로 구워진 경질토기로 흡수성이 거의 없고 표면에 유약을 바르지 않았으나 자연유가 부분적으로 덮여지는 경우도 있다. 기본적인 기형은 고배와 장경호이며, 동물형 토기와 토우(土偶)가 특징이다.

신라토기는 넓은 의미에서 경상도지역 출토 토기 전체를 말한다. 그러나 좁은 의미에서는 낙동강을 기준으로 그 동쪽에서 출토된 것만 말하며, 그 서쪽에서 출토된 것을 가야토기라 부른다. 따라서 이를 신라양식과 가야양식으로 나눈다.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토기]

통일신라시대의 토기는 태토나 소성이 신라토기와 같으나 기형이나 문양에서 변화가 많다. 기대나 이형토기(異形土器)가 없어지고, 고배, 장경호의 받침이 짧아지며, 뚜껑 꼭지가 보주형(寶珠形)으로 변한다.

또 광구장경호, 평저장경병 등이 나타난다. 문양에서도 종래의 기하학적 요소에서 화려한 인화문(印花文)으로 변화된다. 이 시기는 불교의 성행으로 화장용 골호(骨壺)가 많은 것이 특징이며 녹유(綠釉)를 시유한 토기가 출현한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에는 완전한 자기를 만들어내지 못하였다.

고려시대의 토기는 통일신라시대 토기를 계승하고 있다. 이 시기에는 청자가 출현하므로 인해 청자를 모방한 매병(梅甁), 주전자 등과 항아리, 시루, 장군, 소병(小甁) 등과 같이 일상적인 용기로서 사용하는 토기가 만들어졌다.

≪참고문헌≫

新羅土器의 硏究(金元龍, 國立博物館, 1960), 韓國幾何文土器의 硏究(金廷鶴, 白山學報 4, 1968), 토기와 청동기(韓炳三, 世宗大王紀念事業會, 1974), 無文土器 型式分類 試攷(尹武柄, 震檀學報 29, 1975), 韓國古美術의 理解(金元龍, 서울大出版部, 1981), 韓國의 美-土器-(中央日報社, 1981), 韓國考古學美術史要解(國立博物館, 1982), 韓國考古學槪說(金元龍, 一志社, 1986), 鐵器時代-土器-(金暘玉, 韓國史論 17, 國史編纂委員會, 1987). 世界陶磁全集 17(韓國古代, 小學館, 1979).

<윤용진(尹容鎭)>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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