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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3-31 (수)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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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054      
[원시] 석기 (민족)
석기(石器)

인류가 돌을 이용해 만든 이기ㆍ연장. 구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는 주된 연장으로 사용되었으나 철기시대 이후가 되면 쇠붙이연장으로 바뀌었다.

[출현]

인류가 아직 금속을 알지 못했던 시대에는 돌을 다듬어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석기는 200만년 전 인간의 조상인 호모 하빌리스에 의해 만들어지기 시작한 이래, 세계 각지에 존재해 거의 모든 인류가 석기를 사용한 단계가 있었다고 생각되나 각 지역에 따라 문화의 차이가 있어 그 사용기간은 달랐을 것으로 믿어진다.

[시대구분]

석기를 주도구(主道具)로 사용한 시대를 고고학에서는 ‘석기시대(石器時代)’로 부르고 있다. 이 석기시대는 일반적으로 뗀석기〔打製石器〕를 사용했던 구석기시대, 간석기〔磨製石器〕를 사용했던 신석기시대로 대별된다.

또한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사이에 잔석기〔細石器〕를 사용한 중석기시대를 포함하기도 한다. 각 석기시대에는 모두 나름대로 정형화된 석기가 존재했으며, 어느 정도 공통된 석기기술의 단계를 보이고 있다.

[제작방법]

석기는 청동기시대에도 계속해서 활발하게 제작되었으며 철기시대의 유적에서도 발견되고 있지만 그 예는 무척 드물다. 석기의 제작은 석재의 선택 또는 때려서 깨는 방법 등 매우 고도의 기술을 요한다.

구석기시대의 타제석기 재료로서는 하상(河床)이나 해안 등에서 채집된 단단하면서도 떼어내기 쉬운 흑요석ㆍ수석(燧石, flint)ㆍ석영암ㆍ안산암(安山岩)ㆍ규암(硅岩) 등이 주로 선택된다.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간석기 재료는 보다 다양해져 화강석(花崗石)ㆍ섬록암(閃綠岩)ㆍ혈암(頁岩)ㆍ점판암(粘板岩)ㆍ사암(砂岩)ㆍ사문암(蛇文岩) 등이 사용되고 유럽에서는 광산에서 양재(良材)를 채취하기도 하였다.

구석기시대의 타제석기 제작방법 중 가장 간단한 것은 한쪽 손에 괴석(塊石)을 들고 다른 손에는 자갈돌망치나 녹각(鹿角) 또는 대형동물의 대퇴골(大腿骨), 단단한 나무 등을 이용해 직접 떼어 만드는 직접떼기〔直接打法〕와 고정된 모루돌에 석재를 던져서 만드는 던져떼기〔衝突打擊法〕가 있다.

이 밖에도 원재(原材)에 녹각과 같은 것을 대고 돌망치로 녹각의 위를 때려 박편(剝片)을 떼어내는 간접떼기〔間接打法〕, 골각제(骨角製)의 가는 봉(棒)을 석재의 한쪽 선단(先端)에 대고 눌러서 떼어내는 눌러떼기〔加壓剝離法〕, 지면에 고정된 모루돌을 놓고 이 모루돌의 한쪽 끝에 석재를 부딪혀 박편을 얻는 모루떼기〔臺石打法〕 등이 많이 사용되었다.

신석기시대에는 새로이 마연방법(磨硏方法)이 행해져 간석기가 제작되었으나 그 중 일부는 석재를 깨뜨려 다듬은 뒤 인부(刃部)만 마연한 것들도 있다. 청동기시대에는 마연방법 외에도 점판암과 같은 석재를 적당한 크기로 만들기 위해서, 석재의 양면에 약간 엇갈리게 해 홈을 낸 뒤 끊어내는 이른바 찰절법(擦切法)도 많이 사용되었다.

석기에 구멍을 내는 천공법(穿孔法)도 신석기시대 후기에 출현해 청동기시대까지 사용되었다. 도끼〔石斧〕ㆍ곤봉두(棍棒頭)ㆍ소옥(小玉)ㆍ유공석추(有孔石錘) 등에서 그 구멍을 볼 수 있다.

[구석기시대]

구석기시대는 석기의 종류와 가공기술의 특징에 의하여 전기ㆍ중기ㆍ후기로 나뉜다. 연대는 대략 전기는 50만∼10만년 전, 중기는 10만∼3만 5000년 전, 후기는 3만 5000∼1만년 전으로 보고 있다.

전기에는 외날찍개(chopper)ㆍ양날찍개(chopping tool)ㆍ주먹도끼(hand axe)ㆍ사냥돌(bolas)ㆍ자르개(cleaver)ㆍ찌르개(point)ㆍ긁개(scraper) 등이 제작되었다. 가공기술로는 초보적인 직접떼기가 가장 많이 사용되고 가벼운 잔손질과 모루망치떼기수법 등도 사용되었다. 이들 석기는 대체로 하나의 석기가 여러 가지 용도를 겸하고 있는 것이 많다.

전기 구석기가 출토된 유적으로는 공주 석장리 하층, 상원 검은모루 동굴 유적, 연천 전곡리 유적, 단양 금굴유적 등이 있으나 유적의 연대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견해의 차이가 크다.

중기에는 석기의 제작기술이 상당히 발전해서 전기에 많았던 다목적 용도의 석기가 줄어들고 하나의 용도를 가진 소형 석기가 많이 제작되었다. 주먹도끼ㆍ자르개 외에 톱니날석기ㆍ뚜르개ㆍ새기개 등이 새로이 등장하며, 밀개류〔削器類〕도 더욱 더 예리해졌다.

또한 르발루아(Levalloi)수법도 새로이 등장하나 동아시아에서는 드물며 많은 지역에서 전기 구석기시대의 석기 전통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중기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웅기 굴포리 하층, 제원 명오리, 단양 금굴 등이 있다.

후기는 간접떼기나 눌러떼기에 의한 좁고 긴 돌날석기가 등장한다. 전기ㆍ중기에 많았던 찍개는 줄어들고 격지를 이용한 소형 석기의 가공이 두드러진다. 후기의 유적으로는 공주 석장리 상층, 웅기 굴포리 상층, 단양 수양개 유적 등을 들 수 있다.

[신석기시대]

유럽을 중심으로 해서 신석기시대를 정의하게 될 경우에는 마제석기의 출현이 신석기시대의 현저한 특징의 하나로 논해진다. 우리 나라에서도 신석기시대에 들어서면 마제석기들이 제작되었지만 타제ㆍ반마제의 것들도 많이 제작되었다.

이른 시기의 유적에서는 타제의 역석제 찍개나 긁개 등이 많아, 초기에는 오히려 타제나 반마제석기가 기본을 이루었다고 믿어진다. 타제석기로는 자갈돌에 타격을 가해 박편을 떼어내고 그 둘레에 약간의 타정(打整)을 준 도끼류가 많은데 면에는 자갈돌의 표피가 그대로 남아 있다.

석기 재료는 일정하지 않으나 현무암(玄武岩)ㆍ반려암(斑礪岩)과 같은 경암(硬岩)을 주로 쓰고 있고, 때로는 규질점판암(硅質粘板岩)이나 혈암도 쓰고 있다. 이 경우는 전면 타정하거나 인부만을 잘 마연하고 있다.

강원도 양양과 같은 일부지역에서는 전면이 마연된 셰일제의 조합식어구ㆍ석창ㆍ석도ㆍ석추 등의 완전한 마제석기들이 출토되기도 하나 타제석부, 인부만 마연한 석부 등과 공반되고 있다.

신석기시대 후기가 되면 타제역석기도 계속 제작, 사용되나 마제석기가 보다 많이 제작되고 석재로서 점판암이 증가한다. 석부는 대체로 사문암ㆍ섬록암ㆍ화강암 등으로 만들었는데 형태는 사릉부(四稜斧), 단면렌즈형의 편평부(扁平斧), 대팻날과 같은 편평단인석부(扁平單刃石斧) 등이 있다. 도끼의 날은 합인(蛤刃)이 많다.

석촉은 점판암ㆍ편암 등으로 만들었는데 형태는 무경양익형(蕪莖兩翼形)ㆍ유엽형(柳葉形)ㆍ유경형(有莖形) 등이 있다. 기부(基部)가 만입되고 몸체의 단면이 편육각형인 무경양익형과 기부가 곧고 길이가 긴 유엽형이 기본을 이룬다.

석창은 편암제(片岩製)ㆍ점판암제이며 얇은 유엽형의 것이 많다. 연석은 화강암제가 많으며 갈판과 갈돌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도토리나 곡물같은 것을 부수기 위한 마분용(磨粉用)으로 사용된 석기로서 이 시기의 특색있는 도구로 돌보습과 함께 중국 동북지방으로부터 함께 들어온 것이라 믿어진다.

숫돌은 사암 등으로 만들었는데 석기를 갈기 위한 가공용의 석기이다. 마연할 물체를 숫돌 위에 올려놓고 물체를 움직여 갈거나 마연할 물체 위에 소형의 숫돌을 대고 숫돌을 움직여 갈기도 하였다.

보습은 모두 편암제로 마제 또는 타제이며 형태ㆍ크기는 다양하다. 굴지구(掘地具)나 경지구(耕地具)로 사용되었다. 돌낫은 형태가 새 부리모양으로 날은 닳아서 패어지고 있다. 이 밖에도 그물추ㆍ돌망치ㆍ발화석(發火石)ㆍ시문구(施文具) 등이 있다.

청동기시대(민무늬토기시대)의 석기는 신석기시대의 석기와는 달리, 제작법에 있어서 마연방법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신석기시대에는 간석기보다 뗀석기의 비중이 컸으나 청동기시대의 석기에는 뗀석기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전면마연에 의해 석기의 형태가 정비되고 기능에 따른 정형화가 이루어졌다.

또한 용도에 따라 각기 다른 형식의 석기가 제작되었다. 즉, 석기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양이 급증하였다. 이는 농경정착에 따른 생활의 다양화와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연에 필요한 숫돌의 사용이 증가해 많은 양이 발견되고 있다.

[청동기시대]

청동기시대의 석기 중 실생활과 밀접한 돌도끼ㆍ연석ㆍ숫돌ㆍ석촉ㆍ그물추 등은 신석기시대 이래 계속 제작된 것으로, 신석기문화의 내용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석검ㆍ수확용 석도 등은 새로이 출현한 것이다. 석도의 경우는 장방형 석도와 함께 새로운 형식의 반월형 석도(半月形石刀)가 만들어졌다. 석촉의 경우는 신석기시대의 것이 무경식인 데 비해 유경식이 대종을 이룬다.

이러한 점과 관련해볼 때, 한국의 청동기시대 문화가 중국의 동북지방〔遼寧地方〕과 관계가 깊고 석기 중에 반월형석도ㆍ유경식석촉(有莖式石鏃)ㆍ환상석부(環狀石斧) 등이 이 지역의 유물과 연결되어 우리 나라의 여러 종류 석기의 기원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마제석검ㆍ홈자귀ㆍ턱자귀ㆍ대팻날 등 한국적인 석기도 많기 때문에 한국 나름의 독특한 청동기시대 석기문화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대의 석기는 분포에 있어 크게 동북지역, 서북지역의 2개 지역군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서북지역군에서는 석검에 있어 유경식이 주종을 이루며 자귀형 석기에 있어서도 턱자귀〔有段石斧〕가 집중된다. 곤봉두 중 환상석부 역시 서북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석도 중 장방형 석도는 동북지역에 많이 보이며, 반월형 석도는 서북지역에서 많이 보인다. 또한 양인석도는 동북지역에서, 단인석도는 서북지역에서 많이 출토된다. 이러한 점은 양지역의 묘제, 특히 지석묘와 무문토기의 분포상에서도 볼 수 있는 점이다.

청동기시대의 석기는 시기적인 차에 의해서도 많은 변화를 보인다. 전기에는 환상석부ㆍ다두석부(多頭石斧)ㆍ턱자귀ㆍ반월형 석도ㆍ유경식 석검 등이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후기에는 이러한 석기들의 양이 현저히 줄어든 반면, 새로이 홈자귀ㆍ삼각형 석도ㆍ유병식 석검 등이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석기의 출현은 새로운 문화의 유입이라기보다는 자체적으로 보다 효율적 기능을 가진 것으로 대체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후기에는 석검과 석촉이 부장품으로 발견되고 있어 처음부터 부장 목적으로 제작된 석기들도 생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의 중요한 석기로는 석검ㆍ석촉ㆍ환상석부 등의 무기류, 반월형 석도ㆍ곰배괭이 등의 농기구, 석부ㆍ자귀ㆍ대팻날ㆍ끌 등의 공구류가 있다.

석검은 한국 청동기문화의 대표적인 특유의 석기이다. 석검은 함북지방을 제외한 우리 나라 전역과 일본의 구주지방, 그리고 연해주에 이르나 만주지방을 비롯한 요동반도 쪽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석검은 자루의 형태에 따라 유경식과 유병식으로 나뉜다. 유병식은 손잡이에 단(段)의 유무에 따라 1단병식과 2단병식으로 나뉜다. 또한 피홈〔血溝〕의 유무에 따라 유혈구식과 무혈구식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러한 석검들은 한국식 동검이나 중국식 동검을 조형으로 해 만들었다는 설이 있었으나 잘못된 견해임이 밝혀졌다.

석검은 집자리와 분묘에서 모두 발견된다. 집자리에서 발견되는 것들 중에는 인부에 마모흔적이 있고 재가공한 것도 있어 실용품으로 보인다. 그러나 분묘에서 출토되는 석검 중 재질이 약하고 검코 부분의 돌출이 심한 칼들은 부장용의 석검이거나 의기일 가능성도 많다.

석촉은 신석기시대에서도 사용되었으나 청동기시대에 들어서서 더욱 형태가 다양해지고 제작도 정교해진다. 석촉은 크게 유경식과 무경식으로 나뉜다. 신석기시대의 석촉이 타제석촉과 무경식 위주였음에 비해 청동기시대에는 마제의 유경식 석촉이 대종을 이룬다. 석촉은 수렵용과 무기용으로 사용되었음이 틀림없으나 기능에 따른 형태상의 차이는 보이지 않는 듯하다.

반월형 석도는 수확구로서 신석기시대 말기에 나타났지만 본격적으로 농경이 시작되는 청동기시대에 들어서서 한반도 전역에 파급되었다고 믿어진다. 이는 전체적인 형태와 인부ㆍ배부의 형상에 의해 여러 가지 형식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장방형과 반월형이 기본형이며 후기에는 삼각형이 출현한다.

이 석도의 기원은 중국 앙소문화계(仰韶文化系)와 용산문화계(龍山文化系)의 석도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석도는 석겸(石鎌)과 함께 청동기시대 후기까지 주요 수확구로서 계속 사용되었다. 그러나 초기철기시대에 이르러 철제반월도ㆍ철제낫 등으로 대체되었다.

석부는 종류가 다양하나 일반적인 것은 두부 쪽이 좁고 인부 쪽이 넓은 형태이다. 날은 용도에 따라 합인ㆍ양인ㆍ단인ㆍ사인 등으로 다르게 형성되었다. 단인석부로는 턱자귀ㆍ단인주상석부(單刃柱狀石斧)ㆍ대팻날ㆍ홈자귀 등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ㄱ자형의 자루에 날을 90°로 엇갈려 부착한 것으로 목재를 깎아내는 공구의 역할을 한 것이다. 특히, 홈자귀는 청동기시대 후기를 대표하는 석기로 목공구 외에 다목적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높다.

이 밖에 곤봉두로서 환상석부ㆍ다두석부ㆍ성형석부 등이 있다. 대체로 청동기시대 전기에서 중기에 걸친 유적에서 많이 보인다. 환상석부는 원반석의 중앙에 자루용 구멍을 뚫었으며 둘레에는 날을 세웠다.

다두석부와 성형석부는 둘레를 톱니처럼 간격을 둬 다인(多刃)을 베푼 것이다. 이들 석기의 용도는 확실하지 않으나 주거지의 출토 예로 보아 실제로 무기로서 사용한 것도 있고, 장식적인 것은 권위의 상징으로 제작된 듯하다.

[소멸]

이러한 석기들은 청동기와 같은 단단한 금속문화가 유입되면서부터는 점차 무기류부터 바뀌기 시작해 철기문화가 들어오면서부터는 공구ㆍ농기구에 이르기까지 실생활에 필요한 이기들이 모두 바뀌게 되어 사라지게 된다.

≪참고문헌≫

한국사 1ㆍ2ㆍ3(국사편찬위원회, 1996), 韓國舊石器文化硏究(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1), 石器ㆍ骨角器(黃龍渾, 韓國史論 12, 국사편찬위원회, 1983), 石器(尹德香, 韓國史論 13, 국사편찬위원회, 1983), 石器의 比較(全榮來, 韓國史論 17, 국사편찬위원회, 1987).

<한병삼(韓炳三)>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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