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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4-01 (월)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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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5996      
[삼국] 고구려 연구사와 참고문헌 (민족)
고구려(연구사)

세부항목

고구려
고구려(성립과 발전) 1
고구려(성립과 발전) 2
고구려(제도)
고구려(문화)
고구려(연구사)
고구려(참고문헌)

고구려사에 대한 사서(史書)로는 고구려 당시의 ≪유기≫ㆍ≪신집≫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고려시대에 와서 ≪구삼국사 舊三國史≫가 편찬되었으나 이 역시 망실되어 전하지 않는다. 현재 남아 있는 고구려사에 대한 사서로서 가장 오래된 것은 김부식(金富軾)이 편찬한 ≪삼국사기≫이다. ≪삼국사기≫는 유교적인 도덕 사관과 신라 정통론적인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편찬되었다.

한편 고려 무신 집권기에 활약했던 이규보(李奎報)는 〈동명왕편〉에서 ≪구삼국사≫의 기사를 바탕으로, 동명왕의 건국 과정을 노래하면서 당시까지 기층사회에 침전되어 이어져 오던 고구려적 전통을 확인하였다. 고려 충렬왕 때 인물 일연(一然)은 ≪삼국유사≫를 저술해, ≪삼국사기≫가 간과한 고구려의 일부 불교 관계 자료를 수집, 정리하였다. 조선 시대에 와서는, 조선 전기 권근(權近)의 ≪삼국사절요 三國史節要≫와 서거정(徐居正)이 편찬한 ≪동국통감≫ 등이 고구려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들 사서는 새로운 자료의 첨가 없이 편년체로 편찬되었고, ≪삼국사기≫의 역사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주자학적인 가치 기준에 의한 포폄이 보다 강조되었다. 조선 후기에 와서 실학이라는 새로운 학풍이 일어나면서, 고구려사에 대한 인식도 새로워졌다. 실학자들에 의한 고구려사 연구의 성과는 두 가지 측면으로 볼 수 있다.

먼저 문헌 고증학적인 검토에 의해 역사 지리에 관해 연구하였고, 나아가 고구려사에 관한 문헌자료를 수집, 정리하였다. 안정복(安鼎福)의 ≪동사강목≫, 한치윤(韓致奫)의 ≪해동역사 海東繹史≫, 정약용(丁若鏞)의 ≪강역고 疆域考≫ 등이 대표적인 성과이다. 다른 일면으로 종래의 일방적인 중국 중심의 천하관(天下觀)과 화이관(華夷觀)에서 벗어나, 당시의 확충된 역사 지리에 대한 지식과 결부해, 우리 민족의 역사적인 생활권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 이는 자연 고구려사와 발해사에 관한 이해를 촉진시켰다. 이종휘(李鍾徽)의 ≪동사 東史≫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와 같은 합리적이고 실증적인 연구 방법과 자기 민족 중심의 역사 인식이라는 두 가지 조류가 한데 어우러져 한국 근대 사학의 방향성이 주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충분히 성숙되기 전에 개항과 함께 밀려드는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국권을 상실당했다. 그에 따라 민족 독립의 쟁취가 시대적 과제가 됨에 따라, 역사연구 또한 민족 운동의 일환으로 수행되었다. 이에 민족주의 사학자들에 의해 고구려사의 영광과 애국 명장들이 강조되었다. 순환론적인 정신 사관에 입각한 이들의 논리에서 영광스러운 과거의 민족사는 곧 내일의 독립과 번영에 대한 정신적 담보였다. 이에 따라 고구려사에 관한 서술 역시 교설적인 측면이 강하였다. 신채호(申采浩)ㆍ정인보(鄭寅普)ㆍ문일평(文一平) 등이 대표적인 학자였다.

한편 일제 강점하에서 고구려사 연구에 주도권을 쥔 이들은 일본인 학자들이었다. 그들의 연구는 초기에는 역사지리와 그에 결부된 고구려의 피침략사에 치중되었으나, 점차 정치 제도사 분야로 확대되었다. 그들의 연구는 고구려사 및 한국 민족사의 내재적인 발전 과정과 독자성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채 개개의 사실을 문헌 고증학적으로 규명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이른바 만선 사관(滿鮮史觀)의 정립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또한 고구려사를 한국사에서 분리해 만주사에 귀속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런 시각은 해방 후에도 일부에서 견지되었으며, 근래 중국 학계에서 그와 같은 주장이 크게 강조되고 있다.

한편 1930년대 이후 백남운(白南雲)ㆍ김광진(金洸鎭) 등에 의해 사회 경제사적인 측면에서 고구려 사회의 성격을 파악하려는 논고들이 나왔다. 해방 후 우리 학자들은 새로운 민족사의 모습을 정립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하였다. 그러나 사상적 대립과 분단, 내전으로 이어지는 혼란과 갈등의 와중에 자연 충실한 학문적 연구 성과를 남기지 못하였다. 그런 와중에 소수 학자들의 몇몇 논문들은 이 시기 고구려사 연구의 학문적 공백을 메워주는 귀중한 성과였다. 1960년대 이후 다시 식민지사학의 잔재에 대한 비판이 가해졌고, 한국사에 관한 연구가 질적ㆍ양적으로 크게 활발해졌다.

그러나 고구려사의 경우, 전공학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현지 답사가 불가능하며 고고학적 자료를 입수하기 어려워 연구가 제한적이었다. 1960년대까지 고구려사 연구에서 주로 다루어진 문제는 고구려의 건국 및 관계 조직의 성립과 성격, 왕비족 문제, 북방 민족과의 관계 및 ≪일본서기≫에 실려 있는 고구려 관계 기사 검토 등이었다.

1970년대 이후 연구 인원이 늘어났고, 북한과 중국에서 행해진 유적 발굴 자료의 증가로 문헌 사료의 부족을 보충해 주었으며, 고고학ㆍ인류학ㆍ민속학 등 인접 학문 분야의 연구 성과와 방법론을 받아들임으로써, 고구려사 연구는 보다 활기를 띠게 되었다. 그에 따라 연구자의 관심 분야도 정치사 중심에서 사회사ㆍ사상사ㆍ미술사로 확대되었고, 인식의 폭도 넓어져 연구에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만주 지역에 대한 답사가 가능해져 현장 조사를 통한 연구 또한 활발해졌다.

1970년대 이후에 이루어진 고구려사 연구의 경향은, 먼저 초기 고구려사 부분에선 고구려의 기원, 건국 과정, 지배 조직의 성격, 혼인 풍속, 사회 구성 등의 제 방면에 걸쳐 연구가 행하여졌다. 이 시기에 대한 연구에서 기본적으로 쟁점이 되었던 것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초기 부분 기사의 사실성을 둘러싼 논의였다.

이에 대해선 그간 세 가지 관점이 제기되었다. 첫째는 왕계와 기년을 포함해 고구려본기의 기사를 사실로 인정하는 입장이다. 이에 따르면 고구려는 이른 시기부터 중앙집권적인 국가체제를 구축한 것이 된다. 둘째는 고구려본기의 기사를 기본적으로 긍정은 하되, 왕계와 건국 전승 등 초기 기사 기본 뼈대가 되는 전승이 고구려 당대에 몇 차례 정리 과정을 거쳐 정립되었음에 주목하는 견해이다. 이에 따르면 자연 고구려본기 기사를 현전하는 그대로 다 사실로 인정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정치 체제가 초기에는 부체제였다가 중기 이후 중앙 집권적인 영역 국가 체제로 발전해 나갔다고 보았다. 셋째는 고구려본기에서 전하는 왕계와 기사는 산상왕대 이후부터 믿을 수 있고, 그 이전은 후대에 조작된 것이라고 보는 일제 시대 이래로 제기되어 온 일인 학자들의 시각이다.

이러한 상이한 시각으로 이루어진 연구와 상호 비판을 통해 사료에 대한 이해와 그를 통한 역사상의 재구성에서 일정한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여전히 적지않은 문제가 미해결로 남아 있다. 초기 고구려사에 대한 연구의 두드러진 연구 경향은 압록강 중류 유역 등지에서 발굴된 유적 유물과 성곽 등의 고고학적 자료를 문헌 자료와 연관지워 검토해 이 시기 역사를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이런 연구 경향은 근래 상당한 성과를 이루었고,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고구려 중기에 관한 연구의 주요 주제는 관등제의 성립, 지방제도의 형성과정 등 고구려 지배체제의 정비과정에 대한 면과, 대외관계 등 주로 정치사적 측면에 집중되었다. 특히 광개토왕릉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행해졌는데, 비문의 조작 여부와 신묘년조 기사의 해석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진행되었다.

이밖에 안악3호분과 덕흥리 고분의 묵서명(墨書銘)에 대해서도 많은 논고가 발표되었다. 대외 관계사 면에서는 중원 고구려비의 발견에 따라 비문에 나타난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 그리고 5세기의 동아시아 국제 정세와 고구려의 대외 관계 등이 주된 논의의 대상이었다. 한편 고구려인의 천하관, 벽화 고분에 반영된 고구려인의 의식 세계 및 벽화 고분의 피장자의 성격에 관한 문제 등에 대한 연구가 행해져, 이 시기 역사에 관한 다각적인 접근이 이루어졌다.

6세기 중반 이후의 고구려 하대에 관한 논고들은 귀족간의 내분과 지배 체제의 변모, 연개소문의 집권, 고구려 말기의 도교 진흥책을 둘러싼 사상적 갈등, 그리고 수ㆍ당과의 전쟁 등의 문제를 중심으로 행하여졌다. 668년 고구려의 멸망 후 유민들의 동향도 검토되었다. 사회사 분야에선 ≪삼국지≫ 동이전에서 전하는 하호(下戶)의 성격, ≪수서≫ 고려전에서 전하는 당시 고구려의 수취관계에 대한 기사의 해석 및 고대사회의 근본적인 특성 등에 관한 논고들이 발표되었다.

한편 중국학계에서는 고구려사의 성격을 중국의 중세 지방 봉건 정권이라고 규정하고, 발해사에 이어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간주하였다. 앞으로 이를 둘러싼 논란이 주요한 문제로 가로놓여 있다.

고구려(참고문헌)
 
<자료>

三國史記, 三國遺事, 東國李相國集, 三國史節要, 東國通鑑, 東史綱目, 疆域考, 海東繹史, 東史, 漢書, 三國志, 翰苑, 後漢書, 晉書, 魏書, 北齊書, 北周書, 隋書, 舊唐書, 新唐書, 日本書紀.

<연구 저서>

韓國美術文化史論叢(高裕燮, 通文館, 1966), 韓國古代史의 硏究(李弘稙, 新丘文化社, 1971), 丹齋申采浩全集 上(申采浩, 螢雪出版社, 1972), 韓國古代社會硏究(金哲埈, 知識産業社, 1975), 三國時代의 美術文化(秦弘燮, 同和出版公社, 1976), 韓國壁怜古墳(金元龍, 一志社, 1980), 東夷傳의 文獻的硏究(全海宗, 一潮閣, 1980), 三國史記硏究(申瑩植, 一潮閣, 1981), 高句麗民族形成과 社會(李玉, 敎保文庫, 1984), 史學志 13-中原高句麗碑 特輯號-(檀國大史學會, 1979), 한국사 5-고구려-(국사편찬위원회편, 1996), 삼국 및 통일신라 세제의 연구(金基興, 역사비평사, 1991), 고구려문화(1975), 고구려사연구(리지린, 강인숙, 1976), 고구려사(손영종,1990), 조선전사3-고구려-(1991),조선고고학전서-고구려편-(박진욱, 1991),廣開土王碑硏究(王健群,1985),魏存成(高句麗考古,1994), 通溝(池內宏, 1938), 廣開土王陵碑の硏究(李進熙, 1972), 高句麗史と東アジア(武田幸男,1989).

<연구 논문>

高句麗王妃族考(李基白, 震檀學報 20, 1959), 高句麗의 遼西進出企圖와 突厥(李龍範, 史學硏究 4, 1959), 高句麗의 成長과 鐵(李龍範, 白山學報 1, 1966), 高句麗의 蓋堂(李基白, 歷史學報 35ㆍ36合輯, 1967), 1∼3世紀의 民의 存在樣態에 대한 一考察(洪承基, 歷史學報 63, 1974), 三國時代의 部에 關한 硏究(盧泰敦, 韓國史論 2,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1975), 高句麗의 漢水流域의 喪失의 原因에 대하여(盧泰敦, 韓國史硏究 13, 1976), 高句麗初期의 左右輔와 國相(李鍾旭, 全海宗博士華甲記念史學論叢, 1979), 廣開土好太王期 高句麗南進의 性格(朴性鳳, 韓國史硏究 27, 1979), 高句麗國相考(盧重國, 韓國學報 16ㆍ17合輯, 1979), 高句麗律令에 關한 一試論(盧重國, 東方學報 21, 1979), 高句麗遺民史硏究(盧泰敦, 韓薄劤博士停年記念史學論叢, 1981), 高句麗初期의 娶嫂婚에 관한 一考察(盧泰敦, 金哲埈博士華甲記念史學論叢, 1983), 高句麗 貴族家門 族祖傳承(徐永大, 韓國古代史硏究 8, 1995), 高句麗 執權體制 成立過程 硏究(林起煥, 경희대학교대학원박사학위논문, 1995), 5∼7세기 고구려의 지방제도(盧泰敦, 韓國古代史論叢 8, 1996), 1∼4세기 高句麗 政治體制 硏究(余昊奎, 서울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1997), 高句麗 古墳壁畵 硏究(全虎兌, 서울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7), 高句麗の五族について(三品彰英, 朝鮮學報 6, 1954).

<노태돈>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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