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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1-28 (일)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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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아시아 2 (두산)
아시아 2

(앞에서 이음)

VI. 정치

1. 독립의 배경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족주의의 거센 바람이 아시아 전역(全域)을 휩쓸면서 식민지로 남아 있던 아시아 각국은 속속 독립을 획득하였다. 그러나 이 독립은 먼저 반제국주의 민족운동의 대가(代價)인 동시에 미국과 소련의 영향력 아래서 얻은 것이었다. 소련을 종주국으로 하는 공산세력은 무지 ·빈곤과 정치적 불안 속에 있는 후진 아시아 국가에 직접 ·간접으로 침략의 손길을 내밀었으며, 여기서 아시아 각국은 다시 한번 ‘혼란의 소용돌이’를 겪어야만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어난 주요한 분규 ·충돌은 대부분 공산주의의 팽창정책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서유럽 세력과 그 동맹국들은 그 자신을 수호하기 위하여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를 치러야 하였다.

첫째는 인도차이나 전쟁(1946∼54)으로 디엔비엔푸 전투의 패배로 프랑스의 세력이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물러났고, 그 결과 전 인도차이나 반도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미국이 베트남 사태에 개입하였다.

둘째는 중국의 내전(1947∼49)으로, 2년간의 내전 결과 국민당 정부는 타이완으로 밀려나고 공산당이 대륙을 장악하였다. 아시아의 심장부를 공산정권이 장악함으로써 주변의 극동 ·인도차이나 ·동남아시아는 공산주의 세력에 직접적으로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되었다.

셋째는 6 ·25전쟁(1950∼53)으로, 중공의 지원을 얻은 북한이 남침하였는데 UN군의 지원을 얻은 한국군이 이를 물리침으로써 휴전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자유우방(16개국의 참전)은 반공의 굳은 결속을 성취하였으며, 또 일본이 전후의 정치적 ·경제적 침체에서 벗어나 번영할 수 있는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

넷째는 베트남전쟁으로, 15년에 걸친 전쟁 끝에 북베트남의 승리로 끝나 아시아 전역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2. 북부아시아

북부아시아는 모두 러시아가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은 1917년 ‘10월혁명’으로 정부가 수립되어 36년 12월 ‘신헌법’이라는 스탈린 헌법이 제정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소련은 동유럽의 여러 나라를 장악하여 중국과 함께 공산권을 형성하였다. 스탈린 시대를 마감한 소련은 말렌코프시대와 흐루시초프 시대를 거쳐 브레주네프 시대에 들어와 1977년 10월 다시 ‘신헌법’을 채택하였다.

뒤를 이어 안드로포프 시대와 체르넨코 시대가 계속되었으나 그들의 죽음으로 단명에 그쳤다. 1985년 3월 고르바초프가 새로운 서기장으로 선출되어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는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으로서 정보공개를 표방한 ‘글라스노스트’가 필요함을 인정하였다.

소련의 격변기에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공산당 1당독재의 폐기를 결정했고, 곧이어 여러 연방의 공산당들이 소련공산당에서 분리되었다. 1991년 8월 쿠데타 실패 이후 소련공산당은 급격히 몰락하였다. 고르바초프는 보수파로부터 개혁이 너무 급진적이라는 이유로, 급진파로부터는 너무 미온적이라는 이유로 협공을 받은 끝에 1991년 8월 보수파의 쿠데타 직후 서기장직을 사임하였다. 그 뒤를 이은 옐친은 러시아 공화국 내의 모든 지역에서 공산당의 해체와 자산동결을 명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로의 이행에 박차를 가하였다.

3. 중앙아시아

중국은 1951년 티베트의 라싸[拉薩]에 군대를 진주, 강점하여 티베트 자치준비위원회를 설치하였다. 티베트인들은 이에 불만을 품고 1959년 반란을 일으켜 14대 다라이 라마는 인도에 망명했다. 1965년 중국의 자치구로서 발족하였다. 신장성[新疆省]은 1958년 신장웨이우얼[新疆維吾爾] 자치구가 되었다. 몽골은 1961년에 UN에 가입했으며 1924년 소련의 지원으로 사회주의 국가를 수립한 이래 60년간 친소(親蘇) 일변도의 외교정책을 지향하면서 1962년 6월 코메콘(COMECON)에 가입하였고, 1962년 12월에는 중국과 국경협정을 체결하였다.

4. 서남아시아

서남아시아는 전통적인 이슬람교 지역으로 현재도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교차점으로서, 석유자원의 본산이다. 일찍이 오스만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자 이라크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가 독립하고 터키 공화국이 등장했으며, 이란에는 팔레비왕조가 탄생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레바논 ·시리아가 프랑스의 지원으로 독립했다.

그러나 UN의 결의에 의해 팔레스타인 지방에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유대인과 아랍인 간의 숙명적인 대결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대결은 1948∼49년의 제1차 중동전을 비롯, 1956년의 제2차 중동전, 1967년 제3차 중동전(6일 전쟁), 그리고 1973년 10월의 제4차 중동전 등 30년간 전쟁상태가 지속되었다. 이러한 속에서 중동 산유국은 ‘석유자원의 무기화’를 들고나와 세계적인 석유파동을 야기시켜, 세계 경제를 충격과 침체로 몰아 넣었다.

1979년 3월 이집트 ·이스라엘 간의 평화조약 체결로 31년에 걸친 양국간의 대결이 종지부를 찍었으나 1979년 호메이니의 이슬람교혁명으로 이란왕정(王政)이 붕괴되고, 아프가니스탄은 소련이 무력으로 강점하였으며, 1980년 이란 ·이라크전이 발발하는 등, 풍파가 잇달았다. 석유파동 재연(再演)의 가능성을 비롯하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결도 문제시된다.

이란 ·이라크전에서와 같이 아랍 진영은 요르단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라크 지지파와 리비아 ·시리아 · 알제리 등 이란 지지파로 심각한 분열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무력침공에서 보여주었듯이 이 지역에 대한 소련의 남하정책도 큰 위협이 되었으나 1989년 2월 소련군은 철수를 완료하였다.

5. 남부아시아

20세기에 들어와 활발한 반영운동이 인도 전역에서 일어났으며 인도는 1947년 마하트마 간디의 지도로 영연방 자치령으로 독립한 후, 1950년 공화국이 되었다. 독립 후 독립운동의 주체 세력인 국민회의파가 정권을 장악, 자와하람 네루가 초대 총리에 취임하면서 민족의식 고양과 함께 사회주의정책을 추진했으며, 독립 이래 비동맹자주노선을 채택하였으나 1966년 간디 정권시대에 친소노선으로 기울었다.

파키스탄은 이슬람교 국가로서 1947년 인도에서 분리, 독립했으며 79년 ‘이슬람교공화국’을 선언했고, 미국 ·소련 ·중국의 등거리 외교정책을 유지해 왔으나, 인접국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소련의 군사개입에 자극되어 ‘미국의 원조’를 받아들여 친미로 선회했다. 방글라데시는 1971년 파키스탄에서 완전독립, 비동맹정책을 외교의 기조로 삼으면서도 소련과 인도의 지원을 받아 독립했기 때문에 친소 ·친인의 색채가 농후했다.

스리랑카는 1948년 영연방 내의 자치국으로 독립, 1975년 신헌법을 제정하고 스리랑카 공화국으로 국명을 개칭, 완전 독립을 이룩하고 비동맹 중립외교정책을 취하고 있다. 왕국인 네팔과 부탄은 정치 ·경제 면에서 인도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아시아 지역 중에서 유일하게 ‘공산주의 세력’과 전쟁을 치르지 않은 곳이나, 중국과의 국경분쟁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며, 카슈미르 분쟁도 소강상태이지만 미해결로 남아 있다.

6. 동남아시아

동남아시아는 예로부터 인도문명과 중국문명의 영향권으로 고대 문명권의 유산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일본의 식민지를 벗어나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등이 독립, 신흥국가로서 새 출발을 하였다.

이들 국가들은 토지를 제외하고서는 한결같이 외세에 의한 식민통치의 경험을 가지고 있어 반서구 ·반일본의 의식이 특히 강한 지역이다. 따라서 이들은 신흥국가로서 출발한 이후 대부분이 중립주의 정책노선을 걸어왔다. 이는 중공이 국공내전(1945∼49)에서 공산정권이 중국 대륙을 장악함으로써 더욱 영향을 주었다.

현재 친서방 정책을 취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필리핀 ·타이 등도 과거에 중립노선 또는 친중공노선을 경험한 나라들로 이 지역의 중립적 색채를 알 수 있다. 또한 이 지역은 분규가 끊이지 않아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전쟁(1945∼49), 영국의 말레이시아 토벌전쟁(1945∼60),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전쟁(1946∼54), 베트남전쟁(1961∼75), 필리핀의 후크단 등 불안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베트남전쟁이 월맹의 승리로 끝나고,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가 차례로 적화되자, 동남아시아 각국은 불안을 감출 수 없었고, 자국내의 게릴라 소탕을 과감히 하는 등 국가기본질서를 확고히 하는 강력한 통치 경향으로 되어 갔다.

외교면에서는 대미(對美) 의존의 국방 ·외교정책을 버리고 중국 등 공산권과도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등 폭넓은 외교노선을 취하고 있으나, 내실적으로는 자국내의 게릴라 소탕, 용공단체의 금지 등 반공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특히 인도네시아 ·타이 ·필리핀 등 몇몇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타이는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 국가연합)을 결성, 지역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80년 6월 베트남의 타이침공 규탄, 81년 2월 아세안 ·공산 3개국 간의 회담개최 거부, 캄보디아의 헹삼린 정권 거부 등 안전보장에 관한 발언을 강화하여 공산주의 팽창 움직임에 대한 견제세력으로서 ‘아시아 태평양시대’의 새로운 모습을 시사해주고 있다.

7. 동아시아

동아시아의 3국도 제2차 세계대전의 종료와 더불어 새로운 출발이 시작되었다. 전후 1947~49년까지 2년간의 국공(國共) 내전 끝에 마오쩌둥[毛澤東] 공산정권이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정부군을 타이완으로 몰아내고 아시아 대륙을 장악함으로써 동아시아의 정치기상은 시작부터 순조롭지 못했다. 또 북한 공산정권은 1950년 6월 남침을 시작함으로써 6·25전쟁을 일으켰고 이어 UN의 지원하에 미국 등 17개국이 한국을 지원, 북한을 지원하는 중공과 대대적인 전쟁에 돌입함으로써 동아시아에서의 공산주의 팽창을 저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1947년 전쟁을 부정하는 새 헌법을 마련하고,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주권을 회복하던 중, 한국의 6 ·25전쟁으로 ‘경제회복의 결정적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어 베트남전쟁 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히려 경제적 어부지리만 얻어 1960년대 후반에는 미국 ·독일에 이어 자유세계 3대 경제대국으로 성장,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는 기본방위 정책 아래 오직 경제적 대국을 향해서만 질주했다.

한국 ·타이완은 1960년대의 공업화 정책 등 경제 ·사회 제정책(諸政策)의 성공으로 중진국 수준에 진입, 동남아의 ‘아세안’과 ‘아시아 태평양시대’의 담당자로 등장하게 되었다.

동남아시아의 자유 민주주의 3국이 경제적으로 성공한 반면 중공은 마오쩌둥이 집권한 이래 사회주의 이념 우선의 정책이 지속된 결과, 문화대혁명 등 내부적 혼란을 겪는 가운데 1차 5개년 경제계획(1953∼57),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 인민공사(人民公社) 등 경제정책은 실패로 돌아갔으며 경제상태는 낙후를 면치 못하였다. 대외적으로는 ‘중 ·소 국경분쟁’ 등 소련과 이념적 ·국익적 차원에서 회복하기 어려운 대립을 계속하는 가운데, 인도차이나 반도에서는 소련에게 종주국의 자리를 빼앗기는 등 사면으로 고립되어 갔다. 1972년 미국대통령 닉슨의 중국 방문 이래 서방측에 문호를 개방하고 정치 ·경제 ·군사 ·과학기술 ·문화 등 각 분야에 걸쳐 양국간의 관계는 급속도로 확대되었으며, 일본과도 일 ·중 평화우호조약을 체결하였고, 일본도 중국시장에 진출하였다.

그리하여 마치 미 ·일 ·중공 삼각관계가 소련과 대결하는 체제로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주는 가운데 소련은 블라디보스토크 극동함대를 대폭 강화하여 베트남의 캄란 기지를 연결하는 아시아 태평양을 항해의 무대로 삼기 시작했으며, 이에 태평양 제해권과 중동 석유 수송로에 심각한 우려를 느낀 미국은 태평양함대를 대폭 강화하였다.

VII. 경제

전통적 농경사회를 바탕으로 한 아시아의 경제는 근세에 들어와 유럽 열강의 식민지 경영으로 왜곡된 경제구조로 변질되었다. 이러한 경제구조 속에서 식민지 지배를 벗어난 대부분의 아시아 제국은 농업구조의 개혁과 공업화를 통해 자립경제를 이룩하려 하고 있으나, ① 인구 과잉, ② 자원부족과 미개발, ③ 문맹 등 의식수준의 낙후, ④ 기술의 부족, ⑤ 정치적 불안정, ⑥ 공산주의 등 외세의 압력 등의 이유로 경제개발의 길은 그리 쉽지 않았다.

아시아 경제는, ① 일본의 서부 유럽형 자본주의 경제, ② 한국 ·홍콩 ·타이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선진개발도상국 경제, ③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타이 ·미얀마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후진국 경제, ④ 이란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산유국 경제, ⑤ 몽골 ·중국 ·북한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의 공산권 경제로 크게 구별된다.

⑴ 일본경제:일본의 서부유럽형 자본주의는 1953년 6 ·25전쟁으로 경제적 번영의 기틀을 잡아 1960년대 후반부터는 미국 ·독일과 함께 자유세계 3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으며, 베트남전쟁 등으로 계속 호경기를 누렸다. 아시아 지역의 전쟁과 분규는 아시아 전체의 발전을 저지시키고 있었지만 오히려 일본에 대해서는 선발 공업국으로서의 강점과 지리적 위치로 인하여 경제성장을 더욱 가속화시켜주는 계기가 되어왔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자유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위치를 굳혔다.

⑵ 선진개발도상국 경제:한국 ·홍콩 ·타이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은 모두 자본주의 국가로 1960년대 이후 5∼10년의 장기 경제계획에 의해, 농업 중시, 농공 병진, 중공업 우선 등의 정책 아래 경제개발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이들 선두 그룹은 1970년대에 들어와 공업화와 농업생산성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어 중진국권(中進國圈)에 진입하였으며, ‘아세안’의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된다.

⑶ 후진국 경제: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타이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은 아직도 인구 과잉과 높은 인구 증가율, 문맹 등 낮은 교육수준, 기술부족, 농업국이면서도 식량부족, 인플레, 높은 물가, 적자 재정, 외채(外債)의 누적 등에 시달리고 있어 전형적인 후진국 경제권에 있다. 다만 인도는 부분적으로 공업화에 성공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는 산유국의 대열에 들어 있어 전망을 조금 밝게 해주고 있다.

⑷ 중동 산유국의 경제: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 제1의 산유국으로서, 전쟁과 혁명으로 점철된 중동에서 수십 년 동안 왕정을 비교적 잘 유지해왔으며, 오일 달러에 힘입어 도로 ·주택 ·병원 등 사회간접자본의 확충과 주바일 공업단지, 사막의 옥토화 작업 등 공업화와 농업화를 향해 착실한 성장을 계속, 명실공히 이 지역의 가장 성공한 국가로 손꼽힌다. 그러나 여타 중동제국은 거의가 혁명과 전쟁(이란-이라크전, 대 이스라엘전)에 시달려 산유국으로서의 충분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공업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또 대부분의 국토가 사막과 건조지대로 관개(灌漑) 부문의 개발에 주력하고 있으나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⑸ 이스라엘 ·레바논 경제:이스라엘은 막대한 유대 자본에 힘입어 비교적 단기간에 경제발전을 이룩하였다. 레바논 또한 ‘중동의 홍콩’으로 완전한 자유경제정책을 시행하였으며 수도 베이루트를 중심으로 무역 ·금융 ·교통 ·관광 등을 통해 활발한 경제발전을 이룩하여왔다. 그러나 레바논 사태가 해결되지 않아 수도 베이루트는 완전 황폐화되었고 경제는 유동단계에 있어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형편이다.

⑹ 공산주의 경제:공산주의 제국의 경제는 중공업 중심의 개발이 특징이며 콤비나트 등 중점 공업지대의 건설을 핵으로 하여 국가의 공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들의 경제운용상의 특징은 국영공업과 집단농업으로, 중앙정부의 경제계획에 따라 경제가 운영된다. 시베리아와 몽골 ·중앙아시아 ·중국 등은 괄목할 만한 자원개발과 공업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아직은 낮은 수준이다.

특히 중국은 1970년대에 들어와 미국 ·일본 등 서구 자본주의 국가에 문호를 개방하고 실용주의 노선을 취하고 있다.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는 제철소 ·조선소 ·발전소 등 대부분의 기간산업이 미국의 폭격으로 완전 파괴되었으며, 30여 년에 걸친 오랜 전쟁(사실상 1946∼79)으로 폐허화되어 아시아 최대의 후진 낙후지역이다.

1. 지하자원

아시아 대륙은 광대한 면적과 지질상의 다양성으로 인해 중요한 지하자원은 거의 망라하고 있다. 풍부한 양의 석탄 ·석유 ·천연가스 ·우라늄 ·철 ·보크사이트 등의 지하자원이 개발중에 있으며, 대부분의 지하자원들은 고르게 분포되지 못하고 중국과 남부시베리아에 분포되어 있다. 타이완 ·일본 ·한국 ·북한 ·북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는 양은 많지 않지만 경제성은 좋은 편에 속한다. 미얀마 ·타이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은 극히 소량의 석탄이 매장되어 있을 뿐이며, 서남아시아 지역에서는 터키와 아프가니스탄에 소량이 매장되어 있다.

구리는 대체로 풍부하지 못하며 아시아의 수력자원은 수력전기와 관개시설의 양면에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시베리아 ·일본 ·중국의 양쯔강, 인도 아대륙에서는 많은 댐의 건설 등을 통해 수력의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삼림자원이 많아 이의 활용은 이 지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자원이다. 석탄은 중국이 아시아 최대의 산출국이고 시베리아 ·인도 ·북한 ·일본 순이다. 서남아시아의 아랍제국은 석유생산에서 세계 제1이며 전세계 매장량의 60%를 차지한다.

인도네시아 ·중국 ·인도 ·브루나이가 후발 산유국이다. 천연가스는 시베리아 ·파키스탄 ·이란 ·일본 ·아프가니스탄 ·타이완에서 산출되고 있다. 철광의 최대산지는 중국 ·인도 ·북한이다. 이들 국가의 생산량은 아시아 전지역의 90%를 차지한다. 중국과 인도는 망간의 세계 10대 생산국에 속하며, 아시아 전체 생산량의 85%에 이른다. 아시아의 선광주석은 전세계 생산량의 59%를 공급한다. 말레이시아는 아시아 전체 생산량의 55%를 공급하며 타이는 16%를 생산한다. 보크사이트는 전세계 생산량으로 볼 때는 소량이다. 동시베리아의 금 생산도 세계 금 생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VIII. 산업

아시아 대륙에는 많은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지만, 공업은 크게 발달되지 못하였다. 1970년대를 통해 획기적 발전을 이룩한 곳은 시베리아와 일본 ·한국 ·타이완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정도이다. 이 지역의 주요 철강생산국은 일본 ·중국 ·인도 ·한국이다. 알루미늄의 주요 생산국도 일본 ·러시아의 시베리아 ·인도 ·타이완의 4개국이다. 비료의 주요 소비국은 일본 ·타이완 ·한국이며, 인도와 중국도 비료 소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일본은 질소비료의 55%를 생산하고 있다.

펄프와 종이 소비도 차츰 증가하고 있는데 주요 소비국은 일본과 인도이고, 주요 생산국은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이다. 1970년대에는 석유화학공업에 역점을 두었으며 방직공업은 제2차 세계대전 후 급격히 발달하였다. 일본 ·인도는 면직물의 최대 수출국이었으며 중국 ·타이완 ·파키스탄 ·홍콩 ·한국 등이 그 뒤를 따랐다. 아시아의 나라들은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전환하고 있다.

1. 북부아시아

북부아시아의 산업은 다음과 같다.

⑴ 공업:시베리아의 공업개발은 풍부한 천연자원을 배경으로 1959∼65년의 7개년계획과 10차 5개년계획(1976∼80) 등의 장기계획을 통하여 일대 공업지역이 형성되었다. 서시베리아에서는 쿠즈네츠크 탄전의 개발에 의해 철강업 ·화학공업이 신설되고 콤비나트가 건설되었다. 옴스크의 석유화학, 노보시비르스크의 과학아카데미 ·기계공장, 바르나울의 섬유, 키메로보의 화학콤비나트, 노보쿠즈네츠크의 서시베리아 제철소, 쿠즈바스 탄전을 포함한 쿠즈바스 지방(쿠즈바스 콤비나트)에서 공업화가 이루어졌다.

중앙시베리아 쪽에서는 앙가라 바이칼 지방에서 칸스크 ·아친스크 탄전의 개발, 앙가라강의 수력개발에 의한 브라츠크 발전소(출력 40만kW)나 예니세이강의 크라스노야르스크 발전소(출력 500만kW:세계 제1)의 에너지자원을 기초로 공업화가 진행되었다. 노릴리스크의 니켈 채굴, 이르쿠츠크-셀리호프 알루미늄 콤비나트(이르쿠츠크-브라츠코 콤비나트) ·앙가르스크 석유화학 공장, 크라스노야르스크의 제지 ·합성섬유 ·합성고무공업, 울란우데의 유리공업 중심의 공업화가 이루어졌다. 연해주에서 대싱안링 기슭 외에 동해북부의 티추혜 ·북(北)사할린의 오하 유전 등이 있다.

⑵ 농목축업:러시아시대부터 농업개발은 진행되어왔으나 혁명 이후 본격화하여 1913년 6만 3000km2인 경지는 1966년 25만 2000 km2가 되었다. 개발은 주로 시베리아철도 연변과 흑토지대(黑土地帶)를 중심으로 서시베리아에서 알타이 산지에 이르는 초원에서 밀과 옥수수 재배가 활발하다. 북부시베리아와 야쿠트 지방에서는 순록과 족제비 ·여우 등의 모피 짐승 사육이 전문화되어 있다.

⑶ 어업:극동해역도 세계적인 어장으로 러시아 총어획량의 1/3이 넘는다.

⑷ 교통:동서 방향의 시베리아 철도 · 남시베리아 철도, 레나 철도와 오브 ·예니세이 ·레나강 등 북류하는 하천이 시베리아 교통의 대동맥을 이룬다. 그러나 하천은 겨울철에 결빙하여 이용이 제한되며, 자동차 도로가 중요한 교통로이고 항공로가 모스크바∼노보시비르스크∼이르쿠츠크∼하바로프스크를 동서로 연결하며 지방선도 상당히 발달되어 있다.

2. 중앙아시아

중앙아시아의 산업은 다음과 같다.

⑴ 공업:1917년 10월혁명 이후 서(西)투르키스탄에는 각 민족에 의한 자치가 행해지고 90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등이 주권을 선언하고 자원개발, 경지면적의 확대, 대공장의 건설 등에 의하여 오아시스 생활의 극복, 유목민의 정착화가 진행되고 있다.

한편, 카라간다 탄전을 중심으로 하여 콤비나트가 이루어졌으며, 에키바스투즈 탄전은 고양질의 석탄을 생산한다. 타슈겐트 콤비나트가 이루어져 타슈겐트 ·알바아타를 중심으로 한 서투르키스탄의 여러 지역에서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카스피해 동안과 아랄해 남쪽에서 주로 발전되었다.

티베트의 공업은 아직 가내공업 수준이다. 자원개발은 뒤떨어져 있으나 금 ·은 ·구리 ·주석 ·붕사 등이 난다. 중국의 신장웨이우얼과 네이멍구 자치구는 철 ·석유 ·석탄 등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특히 위먼[玉門:甘肅省] ·커라마이[克拉瑪依:신장웨이우얼 자치구] ·렁후[冷湖:靑海省] ·차이다무[柴達木] 등의 대유전이 개발되어 공업도 급속도로 발달하고 있다. 스과이커우[石招溝:네이멍구 자치구]에도 탄전이 개발되었다.

몽골은 1981년 제18회 당대회에서 제7차 5개년계획을 채택, 경제개발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철광산으로는 바이윈어보[白雲顎博:네이멍구 자치구]가 알려져 있으며 동광(銅鑛)으로는 바이인창[白銀:甘肅省]이 있다. 정유기계는 란저우[蘭州]에서 제조되며, 석유 ·수력 등 에너지자원이 풍부하여 석유화학공업 ·기계공업을 주축으로 하는 대공업도시로 성장했다.

우루무치[烏魯木齊]는 신장웨이우얼 자치구의 행정중심으로 면방직공장 ·식품공업이 발달했다. 시닝[西寧]은 칭하이성[靑海省]의 성도로 화력발전 ·모직물 ·축산가공 등의 공업이 일어나, 교통의 발달, 고원지대의 풍부한 광산자원의 개발에 힘입어 새로운 공업기지로서 등장하고 있다. 후허하오터[呼和浩特:네이멍구 자치구의 主都]는 공장건물이 들어섰으며, 바오터우[包頭] 부근의 풍부한 철광과 석탄으로 제철 ·제강 공업이 발달하였다. 양모 ·피혁 ·유류 ·육류 등을 원료로 하는 축산가공업도 성하며, 중심지는 울란바토르와 다르한이다. 다르한 근처에는 샤링골 탄광과 화력발전소가 있으므로 이를 중심으로 건설자재 공장 등 공업기지가 건설되었다. 수흐바토르는 제재 ·제지공장이 있다.

⑵ 농목축업:서투르키스탄에서 농업이 널리 행해지고 있는 곳은 키르기스 스텝의 북부지대이며, 그 밖에 인공관개에 의한 오아시스농업이 있다. 생산물은 밀이 주종이며, 그 밖에 보리 ·옥수수 ·쌀 ·포도 ·담배 등이 재배된다. 이 지역의 주산업은 역시 목축으로 유목(遊牧)에 의해 낙타 ·말 ·당나귀 ·소 ·영양 ·양 ·산양 등이 사육되며, 피혁 ·털 ·낙농산물 등이 수출되고 있다.

신장웨이우얼 ·네이멍구 자치구에서는 친링[秦嶺]산맥 이북의 황토고원(黃土高原)이 황허강의 황토원인이 되어 황토유출방지 공사가 광범위하게 실시되고 있으며, 사막 주변에서는 고산지대의 눈녹인 물을 이용, 관개가 이루어져 농경지와 녹지대가 조성되고 었다. 이들 농경지에서는 겨울밀 ·봄밀 ·목화 ·오이 등의 생산이 활발하고 또 신장웨이우얼 남부에서는 양잠도 영위된다.

광대한 초원에는 양 ·염소 ·소 ·말 ·야크 등 방목이 성하다. 티베트 고원은 반농 ·반목(半牧)의 생활지역으로 양 ·염소 ·소 ·말 ·낙타 ·야크 등을 사육하며 농산물로는 맥류 등이 재배된다. 몽골 일대의 농업은 자연조건 때문에 국영농장제도 아래서 기계화되었고, 주산물은 봄밀로 일본에 수출하고 있다. 목축은 농 ·공업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산업의 주종을 이루고 있어, 가축 및 축산품이 수출의 비중을 유지하고 있다.

⑶ 교통:자동차 도로 등이 많이 발달하였고, 넓은 가도에는 버스 ·승용차들이 달리므로 유목국가의 면모는 찾아보기 어렵다.

3. 서부아시아

서남아시아의 산업은 다음과 같다.

⑴ 공업:석유를 경제의 기반으로 삼고 있는 아랍국가들은 막대한 오일 달러를 투자, 석유자원의 고갈을 대비하여 ‘공업화’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 석유매장량의 26%에 해당하는 1,400억 배럴의 매장량을 가지고 있는 세계 최대의 석유 수출국으로 이미 도로 ·항만 ·주택 ·병원 ·학교 신설 등의 사회간접자본은 일단 마무리지어 가고 있다. 이란의 석유 총매장량은 82억 6500만t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다음가는 세계 제2의 석유 수출국이나, 이란 ·이라크전, 호메이니의 ‘회교정권’의 정치적 혼란으로 경제개발은 정돈상태이다.

이라크도 총매장량 44억 2000만t의 석유를 배경으로 1976년부터 총규모 490억 달러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실시, 철강 ·화학비료를 중심으로 공업화를 추진 중이나 역시 이란 ·이라크전 등으로 여의치못한 상태이다. 레바논 등은 내란으로 파괴된 상태이다. 시리아 ·요르단 ·터키 등은 공업화를 추진중이며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⑵ 농업:시리아 ·레바논 등 여름에 건조한 난대지방에서는 지중해성 농업이 중심이며, 과일 ·야채생산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이란 ·이라크에서는 밀 ·보리 ·목화를 산출하고 있으나 생산성이 낮아 자국의 수요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 밖의 건조지역에서는 목축업이 성하고 유목에 의해서 낙타 ·소 ·양 등이 사육되며, 피혁 ·털 ·낙농산물을 수출하고 있다.

⑶ 교통:막강한 오일 달러로 도로확충과 신도로 건설이 급속히 이루어지고 있다. 다마스쿠스∼테헤란 간을 버스로 26시간이면 갈 수 있으며, 바그다드는 교통의 요지가 되어 있다.

4. 남부아시아

남부아시아의 산업은 다음과 같다.

⑴ 공업:일찍이 1850년대부터 견(絹)과 면(綿)을 중심으로 한 가내공업이 성했는데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서부의 뭄바이(봄베이) ·아메다바드 등지에 면공업이 발달하였다. 1951년부터 제1∼3차 5개년 계획을 추진하여 ‘혼합경제’ 방식에 의하여 공업화 정책을 추진해 왔다. 풍부한 지하자원과 수력자원을 개발, 제강업(製鋼業)을 기초로 두르가푸르 ·비라이 ·두루켈라의 3대 제철소가 건설되었으며, 항공 ·조선 ·자동차 ·비료 등 중화학공업을 비롯, 기계 ·알루미늄 ·제약 ·석유 ·시멘트 등 각 부문에 걸쳐 근대공업이 건설되고 있다.

수력자원은 풍부하여 다모다르 협곡 ·마하나디강의 히라쿠드댐 ·인더스 상류 시틀레지강 ·바크라낭갈 등이 개발되었다. 파키스탄도 공업화에 노력하고 있으며, 특히 수이 지방에서 발견된 천연가스는 공업화 촉진 역할에 큰 힘이 되고 있다. 방글라데시의 실헷 지방에서도 천연가스가 발견되었다.

⑵ 농업:농업은 49%로 취업인구의 70%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나 농업부문의 발전은 정체되어 식량의 수입이 해마다 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 ·사탕수수 ·밀 ·주트(마) ·목화 등이며, 사탕수수의 생산은 세계 제1이며, 주산지는 우타르프라데시주 ·비하르주 ·동(東)펀자브주가 중심이다. 갠지스 삼각주지역은 방글라데시와 더불어 세계 최대의 주트 산지이다.

⑶ 교통:철도 교통은 1853년 영국 식민지시대부터 발달하였다. 갠지스강 ·브라마푸트라강 ·인더스강의 대하천은 상당히 먼 내륙지방까지 기선의 항행이 가능하다.

5. 동남아시아

동남아시아의 산업은 다음과 같다.

⑴ 공업:인도차이나 지역은 오랜 전쟁으로 공업발전은 별로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다른 국가도 공업화 계획에 따라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 성과는 충분하지 않다. 다만 싱가포르는 항공기 ·전자 ·카메라 ·시계 ·자동차 공업 등 공업화에 성공하였으며,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가는 경제개발국이다.

⑵ 농업:전통적인 농업지역으로 화전농(火田農) 등 원시농업과 정주 미작농업(定住米作農業) 및 재식농업(栽植農業)이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미작농업은 이 지역의 주종농업이나 근래 각국에서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종래 쌀의 수출국이던 미얀마 ·타이 조차도 수출능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플랜테이션은 고무 ·커피 ·사탕수수 ·담배 ·황마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⑶ 교통:해운이 특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육상교통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자바섬이 발달하였고 타이와 미얀마는 하천과 운하를 이용한 수운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6. 동아시아

동아시아의 산업은 다음과 같다.

⑴ 공업:일본의 철강 ·기계 ·자동차 ·화학 ·섬유 ·전자공업은 세계 유수의 선진국 수준으로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입장이며, 한국의 전자 ·조선 ·철강공업도 부분적으로는 세계 수준이다. 중국에서는 안산[鞍山] ·번시[本溪] ·선양[瀋陽] ·바오터우[包頭] ·우한[武漢] ·충칭[重慶] ·란저우[蘭州] 등지에 철강공업을 중심한 중공업 지대가 형성되고 있다. 타이완도 자동차 ·선풍기 등 경공업과 시멘트 ·알루미늄 등 일부 중공업이 확충되어 공업화가 급진전되고 있다.

⑵ 농업:몬순을 이용한 벼농사지대로 최근에는 북위 45°까지 경작이 가능하다. 밀은 세계 총생산량의 1/4을 생산하고 콩은 총생산량의 90%를 산출하고 있다. 한국 ·일본 ·타이완에서는 종자개량과 기계화가 이루어져 미곡 생산량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⑶ 교통:이 지역은 모두 해운업이 크게 발달해 있으며 특히 일본은 세계 1위의 상선(2,700만t) 선복량(船腹量)을 가지고 있다. 일본 교통의 커다란 특색은 육상 ·해상 ·항공이 모두 도쿄[東京] ·오사카[大阪]를 주축으로 발달하였다는 점이다. 중국은 철도 총연장 4만 8000km, 철도선 60여 개, 하천의 항정(航程) 총연장 15만km, 기선 통행이 가능한 거리는 3만km이며, 항운(航運)에 이용되는 하천은 1,200개이다. 도로도 총연장 70만km에 이르며 민간 항공로의 총연장은 1만 7194km이다.

IX. 무역

1. 기원전

기원전 여러 세기 전에 아시아 각국은 아시아 각국끼리는 물론 서방 세계의 나라들과 교역관계를 가져왔다. 처음에는 유목민들이 물물교환의 방법으로 교역을 행하였으며, 교역의 주요 품목은 고급직물 ·비단 ·금 ·향료 등이었다. BC 4세기경에는 인도 서북부를 거쳐 소아시아를 지나 그리스로 연결되는 여러 육로(陸路)가 개척되었으며, 로마 시대에는 인도 남부를 지나는 육로와 해로가 새로 발견되었다. 동서교역은 AD 4세기 동안 가장 번영하여 남부아시아와 말레이시아 ·캄보디아를 지나 중국에 이르는 교역이 크게 성했다.

2. 식민과 무역

15 ·16세기에는 에스파냐 ·포르투갈을 선두로 아시아에 눈을 돌려 유럽 각국은 저마다 ‘동인도회사’ 경영에 들어갔다. 영국은 인도 아대륙 ·미얀마 ·실론(현재의 스리랑카), 네덜란드는 동남아시아, 프랑스는 인도차이나, 에스파냐는 필리핀을 활동무대로 하였다. 그리고 무역회사들은 식민제국(植民帝國)으로 변천해 갔다. 아시아의 수출무역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이루어졌으며, 이 시기의 상품들은 비단 ·직물 ·향료 등이다.

식민지 경영의 형태로 바뀌면서 무역의 패턴도 변화되어 아시아 제국은 원료를 수출하고 유럽 제국의 완제품을 수입하는 ‘식민지 무역’의 형태로 되어 갔다. 차 ·담배 ·주트가 무역품목에 등장했다. 19세기 말까지 일본은 주로 한국 ·중국과 무역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세계무역과는 거리가 있었다. 중국은 처음으로 서방국가 특히 미국과 무역 관계를 가졌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는 식민지의 전성기이었다.

20세기 초 일본은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세계의 주요한 무역 파트너로 등장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는 정치적 독립을 위한 ‘식민지 투쟁의 시대’의 극성기였다. 전후 15년 동안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는 아시아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아시아에 독립의 결실이 이루어지면서 공산주의 국가인 중공이 등장하고, 일본은 세계 유수의 공업생산국과 무역국가로 부각되었다.

신생 독립국들은 새로운 경제 사회개발 정책을 계획, 그들의 상품을 다양화하고 공업을 발전시켜 나가는 등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식민시대의 왜곡된 경제구조에서 오는 결함을 완전히 극복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3. 지역내

식민지 국가와 유럽 열강 사이의 ‘국제분업에 관한 이론’(비교생산비설)에 입각한 경제구조는 아시아 지역 내의 국가 사이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었다. 아시아 각국의 경제는 따라서 보완적이라기보다는 경쟁적인 방향으로 전개되어 갔다. 예컨대 필리핀 ·스리랑카 ·인도 ·아프가니스탄 ·이란 ·파키스탄 등의 최근 수년간의 지역내 수출은 전체 수출의 4∼15%에 불과하다. 또 수입면에서도 이란 ·아프가니스탄 ·타이완 ·한국 ·필리핀 ·인도는 그들 수입의 10%만을 아시아 국가로부터 사들이고 있다. 가장 발전한 일본은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ECAFE) 국가들에 자신의 생산량의 35%를 수출하고 수입의 23%를 ECAFE 쪽에서 받아들이고 있다.

아시아는 세계최대의 쌀 생산 지역이다. 쌀은 지역내 무역의 가장 중요한 상품으로 미얀마 ·타이 ·캄보디아의 가장 중요한 수출품목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상품협약을 통해 그들의 무역 위치를 증진시키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국제주석고무협약(ITRA),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국제설탕협약(ISA)에 가입되어 있다. 스리랑카 ·인도 ·인도네시아 ·파키스탄은 국제차협회(ITC)를, 스리랑카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타이는 1968년 아시아코코넛회(ACC)를 설립하였다.

중국은 혁명 초기에는 유럽 공화국 특히 소련의 주요 무역 상대국이었으나 근년에는 아시아 국가들과의 무역을 증가시키고 있으며, 상당수는 바터무역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중국의 무역 상대국으로는 미얀마 ·캄보디아 ·스리랑카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싱가포르가 있다.

1958년에 지역내 무역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ECAFE 주최로 무역회담이 있었으며, 1970년대 초에는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아시아어음교환협회(ACU)가 설립되었다. 지역통합을 위한 노력은 거의 없는 편이다.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무역은 두 나라 사이의 정치적 관계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많은 아시아 국가들은 지역내 생산을 다양화하고 있으며, 그 목표는 오직 자급자족이고 노동분배와 전문화를 통한 국제분업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4. 세계

아시아 국가들의 외부세계와의 무역은 정치적 유대에 크게 영향받고 있으며, 지불수단도 이에 따르는 경향이다. 구 영국 식민지들은 파운드 지역, 구 프랑스 식민지들은 프랑 지역에 속하는 나라들과 주로 무역 관계를 맺어왔으나 1960년대에 들어와 이러한 사정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첫째, 유럽경제공동체(EEC)가 결성되었는데, 이는 새로운 특혜조직이었다. 둘째, 일본은 자본재와 생산재의 주요 생산국이며, 아시아 각국으로부터 수출된 상품의 주요 시장이었다. 셋째, 중국이 사회주의권(圈) 밖의 자유 세계와의 무역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시아 개발도상국가의 수출상품은 고무 ·차 ·원유 ·석유제품 ·쌀 ·설탕 ·코프라 ·코코넛유(油) ·팜유(油) ·목화 ·면직물 ·주트 ·주트직물 ·선광된 주석 ·담배 ·목재 ·철광 ·양털 ·가죽 등이다. 동서교역의 초기에 중요했던 향료는 전체 수출의 작은 한 품목일 따름이다.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주요 수출품은 여전히 농산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수출 농산품의 양과 가격은 거의 전적으로 수요측에 달려 있다. 또 선진공업국들은 이들 농산품을 합성제품으로 대체하려는 경향이다. 예컨대 인조고무 ·나일론 ·폴리에스테르직물 등이 그것이다. 개발도상국들은 그들의 수출량을 늘려도 가격 면에서는 상승이 없다는 문제에 부딪치고 있다. 반면에 선진국이 수출하는 소비재와 자본재는 계속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개도국들의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있다. 개발도상국의 주 수입품은 기계류와 운송기관, 예컨대 트럭 ·자동차 ·트랙터 등과 다른 공장제품, 비료 등의 화학제품, 음식 ·청량음료 ·담배 ·연료 ·석유 등이다. 1959년 이후부터 소련은 아시아 제국, 특히 미얀마 ·스리랑카 ·인도 ·인도네시아와 무역을 증가시켰으며, 이들 국가들은 중립외교정책을 취하면서 소련으로부터의 경제원조를 받아들였다. 미국은 전후 아시아 제국의 최대의 경제원조국이었으며, 이에 상응해서 무역이 상당히 증가되었다. 미국의 아시아 무역 파트너는 일본 ·홍콩 ·타이완 ·한국 ·인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타이이다.

비공산권 국가와도 무역을 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중국은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프랑스와 무역을 증가시켰으며 일본과도 일련의 협정을 맺었다. 중국은 미국에 문호를 개방, 1970년대에 미국은 중국의 중요한 무역 파트너가 되었다. 금세기에 들어와 석유는 서부아시아 무역의 중요한 몫이 되었으며, 이란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무역으로 커다란 혜택을 입은 나라들이다. 이들 나라들은 1960년에 OPEC를 조직하였으며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중동석유의 비중은 70년대의 세계경제 제1의 이슈였다.

X. 사회문화

4대 종교의 발생지인 아시아는 문명에서도 고대에는 서구를 훨씬 능가하였다. 서아시아의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에서 일어난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BC 3000∼2000년경에 이미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등의 고대국가를 건설하여 유럽문명과 동남아시아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으며, 유럽은 그리스문명에 이르러서야 서아시아의 영향을 벗어날 수 있었다. 서아시아의 이슬람 문화는 8 ·11 ·14세기에 셀주크투르크 제국(帝國)과 오스만투르크제국이 건설됨으로써 중동 일대와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영향을 미쳐 이슬람 문화권을 이루었다.

남아시아의 인더스강에 하라파 ·모헨조다로의 도시국가가 성립된 것은 BC 3000∼2000년경으로, 유럽에 로마제국이 번영한 시대에도 마우리야 왕조 등이 번영하여 그 영향을 미쳤다. 인도의 불교문화는 그 발생지를 벗어나 동남아시아 일대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쳐,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타이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등에 불교문화권을 형성하였으며, 동아시아의 중국 ·한국 ·일본도 거대한 불교문화권을 형성하였다. 인도의 힌두이즘은 인도 아대륙에서 융성, 독자적인 힌두문화권을 이루었다.

동아시아에서는 황허강 유역에 일찍이 문명이 발생하여 은(殷:BC 1600년경) ·진(秦) ·한(漢) 왕조가 이루어졌으며, 수(隋) ·당(唐)시대에 이르러는 유교(儒敎) ·도교(道敎)를 중심으로 하는 고대 유교문화권이 한국 ·일본 ·베트남 등에 광범한 영향을 주었다. 이들 여러 문화는 농경 ·유목 ·수공업 또는 그 결합 등 각 지역의 생활형태에 따라서 각각 풍토적 특색을 형성해 왔다.

그러나 17∼18세기부터 시작된 유럽자본주의의 발흥에 의한 아시아의 식민지화는 정치적 종속(從屬)과 동시에 문화적 예속 또는 정체가 수반되었으며, 원료의 공급 생산지로서 생활의 빈곤화, 식량부족, 높은 문맹률, 빈부의 격차, 높은 인구압력 등 사회적 ·경제적 문제에 시달렸다. 한편, 외국의 식민지주의와 제국주의 및 인종적 차별에 대한 반항, 신흥 공산주의로 인한 갈등, 새로운 기독교 문화의 전파에서 오는 종교적 갈등, 최근의 공업화와 근대화에 따른 사회 2중구조에서 오는 갈등 등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1. 북부아시아

주민의 대부분은 남동쪽에서 카자흐스탄 북쪽과 몽골 고원 북쪽에서 아무르 ·우수리강 유역에 이르는 남부 시베리아에 주로 거주한다. 생활은 소규모의 순록 사육 ·사슴 ·엘크사슴 ·다람쥐 ·여우 ·검은 담비 등의 덫사냥과 소규모의 어업 등에 의존한다.

주거는 대개 일자집(길게 붙은 공동주택)이나 반지하 오두막집이며 교통수단은 카누 ·보트 ·스키 ·눈신발 ·순록이나 개가 끄는 썰매이며, 동부에서는 말도 이용된다. 대개의 원주민 그룹의 수효는 극히 적다. 에벤키족은 8만 여 명으로 거의 미국과 같은 크기의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다. 식량은 육류나 지방(脂肪)이 많은 편이고, 육류를 보존하기 위해 냉동법 ·건조법 ·훈제법(燻製法) 등이 이용되고 있다.

오늘날에는 남부 시베리아에 공업지대가 많이 조성되고, 자원개발이 활발하여 공장이나 광산에서 일하는 원주민이 날로 늘어나고 있으며, 인구도 이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공산주의 체제하의 집단농장과 공장지대의 생활은 과거의 전통적 생활과는 전혀 이질적인 것으로 남부 시베리아의 주민생활은 급격한 변천 속에 있다.

2. 중앙아시아

중앙아시아 지역은 높이와 생태(生態)가 지방에 따라 뚜렷이 다르며, 같은 지방 내에서도 차이가 심하다. 서(西)투르키스탄의 사막과 초원은 해수면보다 낮은 저지이며, 몽골초원은 해발고도 1,500m의 고원지대이다. 종교는 이슬람교이며, 몽골 동쪽과 중국 신장웨이우얼 자치구는 수니파(派)이고, 파미르 고원과 힌두쿠시족은 시아파(派)이다. 라마교는 티베트와 몽골과 중국의 변두리 지역에 걸쳐 있다. 몽골은 러시아 문자를 개조하여 몽골 문자로 사용하고 있다.

농업과 목축도 집단적인 방법이 채택되고 있다. 양 ·염소 ·소 ·낙타 등이 파미르 ·신장웨이우얼 자치구, 몽골과 티베트에서 사육되나 당나귀와 노새는 중앙아시아에서 중동에 가까운 지역까지 보급되어 있다. 티베트에 가까운 산악지대에서는 고도와 한랭기후에 견딜 수 있는 야크의 사육이 성하며 천막도 야크털을 짜서 만든다. 유전 ·광산 등이 개발되어, 자동차도로가 보급되고, 공업지대가 형성되어 현대 산업사회로 이행되고 있으며, 생활에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3. 서부아시아

서부아시아는 전통적인 이슬람교 문화권으로 이란은 시아파(派)가 다수, 이라크는 시아파와 수니파가 반반, 다른 나라들은 대부분 수니파이다. 대부분 사막지역으로 유목에 의해 낙타 ·소 ·양이 주로 사육되며,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소규모의 농업이 이루어질 뿐이다. 산유국이 대부분으로 급격한 공업화로 커다란 사회적 변화를 겪고 있다.

엄격한 이슬람교 법률이 지배하는 사회이기는 하나 이란 등은 상당히 서구화되었으며, 사우디아라비아는 가장 계율이 엄격하다. 사막 한복판에 신도시와 고속도로가 건설되고, 석유화학공장이 들어서는 등 급격한 변화로 20세기와 17 ·18세기의 유목생활이 공존하는 사회이기도 하다.

4. 남부아시아

인도(힌두교)와 파키스탄(이슬람교)의 분리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종교가 가지는 의미는 이 지역에서 심각하다. 힌두이즘을 숭상하는 인도에서는 소[牛]가 신성시되어 축산이 이루어질 수 없음이 단적인 예이다. 눈 덮인 8,000m의 히말라야 준봉에서 적도의 정글까지 이어지는 이 지역은 명상과 사상과 종교의 나라로, 힌두교(84%) ·이슬람교(10%) · 그리스도교 ·시크교 ·불교 ·자이나교 ·기타 종교를 신봉한다. 인도에는 3,000여 종의 종교적 ·직업적 ·인종적 카스트 제도가 존재하며, 이 카스트 제도에서 오는 사회계급의 분화는 인도사회가 안고 있는 최대의 모순이기도 하다.

과잉인구를 가지는 인도 노동력의 상당수가 중동건설과 동남아건설시장에 취업하고 있으나, 취업인구문제, 불가촉(不可觸) 천민의 문제, 문맹 등도 커다란 문제이다. 가족생활에서도 힌두이즘의 윤리가 엄격히 적용되고 있어 조상숭배, 가정 내의 예의, 식사, 결혼, 교제, 직업제한 등 전통적 습관이 그대로 지켜지고 있으며 대가족제도가 그대로 내려오고 있다. 힌두이즘은 거의 절대적이어서 고등교육을 받아도 힌두이즘의 윤리와 습관은 철저히 지킨다. 그러나 근래에는 공업과 도시의 발달에 따라 핵가족이 생기는 등 부분적으로 변화를 보이고 있다.

5. 동남아시아

동남아시아는 중국의 유교문화와 인도의 불교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아왔다. 종교적으로는 불교의 영향권에 있으며, 일찍부터 화교(華僑)가 진출,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어 원주민과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또 지역에 따라서 이슬람교의 영향도 커서 말레이시아는 전체 인구의 50%가, 인도네시아는 90%가 이슬람교도이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유적은 중국 불교의 영향이며, 자바섬의 보로부두르 유적은 인도 불교의 영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동남아시아의 도시들은 역사적으로 여러 외래민족이 뒤섞여서, 이른바 복합사회를 형성하는 곳이 많으나, 아직 전반적으로 도시화는 미숙한 상태에 있다. 자급적 ·전통적 촌락생활이 주축을 이루고, 그들 촌락에는 필연적 ·지연적(地緣的)인 결합관계를 바탕으로 한 상부상조의 전통이 남아 있는 사회이다. 인도차이나 반도에는 중국 유교의 영향으로 부권적(父權的) 색채가 농후하며, 하노이 ·하이퐁 ·호치민 ·후에 등의 도시에서는 프랑스의 오랜 식민지 통치로 가로나 건축양식에 프랑스 색채가 짙게 남아 있다.

논농사가 이 지역의 주산업이며, 물소도 기른다. 대규모의 플랜테이션 농업도 상당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원주민들은 종래의 원시적 농업을 영위하고 있다. 베트남전쟁 후 공산정권은 100만 명 이상의 베트남인 ·캄보디아인을 학살하여 국민의 위화감(違和感)이 높으며 아시아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다.

6. 동아시아

일찍부터 중국 황허강은 고대문명의 발상지로 전지역이 잘 개발되어 인구가 조밀하다. 동양 유교문명의 발생지로 낙천적 ·보수적 ·전통적 현실주의가 국민성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중화사상’이 수천 년간 뿌리박고 있는 지역이다. 19세기 말 서구열강의 식민정책으로 수난을 겪고, 한 때 일본에 지배당하였으며, 오늘날은 전통적 유교사상과는 이질적인 공산주의 정권에 의해 지배당함으로써 과거의 전통적 중국문명에 이변(異變)을 낳았다.

주민 생활은 ‘인민공사’ 등 종래의 대가족적 가족제도의 사회로서는 수긍할 수 없는 제도가 도입되어 급격한 변화 속에 있다. 마오쩌둥의 공산정권에서 공자가 악인으로 매도되는 등 종래의 전통적인 중국관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현실을 초래했으나, 덩샤오핑[鄧小平]이 권력을 잡은 뒤 ‘현실주의적 실용주의 노선’이 체택됨으로써 비교적 과거의 전통적 중국관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는 중국적 공산주의의 색채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 ·일본 등 자본주의 세계에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완만하고 실용주의적인 경제체제가 도입될 것으로 기대되어 과거의 공산주의에서 많이 완화될 것으로 보이며 사회 ·문화도 상당히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리드와 한국의 6 ·25전쟁, 베트남전쟁 등에 힘입어 자유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함으로써 급격히 서구화되어 오늘날의 일본인은 아시아인(人)이 아닌 아시아인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고도 산업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도시로의 인구집중을 통한 도시화 단계를 이미 지나 ‘도시중심권 공동화(空洞化)’ 단계에 이르러 도쿄지구에는 통근권 내에 많은 주변도시가 형성었다.

한국도 공업화로 도시화되어 종래의 유교적 가부장제 사회에서 핵가족 사회로 변천되고 있으며, 농촌인구의 급감소와 도시인구의 팽창으로 산업사회로 이전되고 있다. 동아시아지역은 공업화의 진전에 따라 서유럽 ·북아메리카에 이은 산업중심지로 등장하고 있으며, 사회구조 ·문화형태 ·국민의식 ·가치관 등 모든 면에서 서구화하고 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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