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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4-24 (수)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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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448      
[고려/조선] 고려 말 조선 초의 과거 (민족)
과거(고려 말 조선 초의 과거)

관련항목 : 문과, 무과

세부항목

과거
과거(고려시대)
과거(고려 말 조선 초의 과거)
과거(조선시대) 1
과거(조선시대) 2
과거(과거제도의 개혁론)
과거(과거의 영향과 의의)
과거(근대화와 과거제도의 폐지)
과거(참고문헌)

[고려 말 신흥 사대부의 진출과 과거 제도의 개혁]

고려 후기 이래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등장한 것이 능문능리(能文能吏)의 신흥 사대부들이다. 이들은 무신 집권기에 배출되기 시작하였지만, 그보다는 무신 정권이 무너진 뒤 향리들이 과거를 통하여 중앙 정계에 대거 진출하게 됨으로써, 점차 그 세력이 커져서 고려 말의 급격한 사회 변동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들은 주자학, 즉 성리학에 심취하여 먼저 주자학을 연구ㆍ보급시키는 방편으로 관학을 일으키는 동시에, 이것을 바탕으로 구 귀족의 불교와 사장(詞章) 중심의 한ㆍ당유학을 배격하였다. 이들의 주장으로 충렬왕 이후 과거시험이 제대로 실시되었는데, 특히 제술과의 선발 인원이 대체로 정액인 33인 선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고려의 국자감시가 원나라의 향시인 거자시(擧子試)에 해당하게 되어 고려인들이 원나라의 제과(制科)에 응시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원나라의 제과에 합격한 고려인으로는 이곡(李穀)ㆍ이제현(李齊賢)ㆍ이색(李穡) 등을 들 수 있다.

고려의 과거 제도는 신흥 사대부들을 대거 기용하여 반원 개혁 정치를 실시한 공민왕 때 학교 제도와 함께 개혁되었다. 먼저 1367년(공민왕 16) 성균관을 중건하고 생원을 100인으로 늘리는 동시에, 사서오경재(四書五經齋)를 두어 경전 중심의 성리학 교육으로 대폭 개혁하였다. 뒤이어 다음해 종래와 같은 과거제 실시는 좌주ㆍ문생관계에 의한 문벌귀족의 폐해만을 가져온다 하여 왕이 직접 구재(九齋)에 행차하여 사장이 아닌 경학을 시험 과목으로 친시(親試)를 행하였으며 이와 함께 국자감시를 철폐하였다.

다음해인 1369년 원나라 제도에 따라 향시ㆍ회시ㆍ전시의 과거 삼층법을 실시하였다. 왕의 주관하에 시행되는 전시를 둔 것은 왕권강화의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1374년 본관(本貫)에서 향시를 거치지 않은 자는 회시에 응시할 수 없도록 하였는데, 이것 역시 중앙의 문벌귀족 세력을 억제하기 위한 것으로서 왕권 강화와 연관되는 조처였다. 그리고 문벌 귀족의 나이 어린 자제들이 문과에 합격하는 예가 많아서 문과응시 연령을 18세에서 20세로 올렸다.

그 뒤 우왕의 즉위와 함께 구 귀족 세력이 득세하고 신흥사대부 중심의 개혁론자들이 밀려남에 따라 과거 제도도 1368년 이전의 구 제도로 환원되었다. 신흥 무인과 신진사대부 세력이 우왕을 비롯 구 귀족 세력을 몰아내고 창왕을 세움으로써 과거삼층법이 부활되고, 고시 과목도 경학중심으로 바뀌었다.

과거 시험의 시관(試官)도 지공거 제도에서 고시관 제도로 바뀌는 동시에 그 수도 한 번의 과거 시험에 고시관 6인, 전시고시관 2인, 도합 8인이나 되었다. 이것은 좌주의 권한을 분산시킴으로써 종래의 좌주와 문생의 강한 유대 관계에 타격을 가하고자 한 것이다.

1367년 성균관에 사서오경재를 둔 것과 관련하여 승보시가 생원시로 바뀌었다. 즉, 성균관 제도가 대폭 개편됨에 따라 종래의 국자감시는 조선 시대의 소과에 해당하는 진사시로, 승보시도 역시 소과에 해당하는 생원시로 바뀌어 성균관의 입학 자격을 인정하는 시험으로 되어버렸다. 또한, 고려 말의 신흥 사대부들은 문무 양반 관료 체제를 갖추려는 뜻에서 1391년(공양왕 3) 무과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그 실시는 실제로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조선 초기 집권 사대부의 과거 제도 정비]

조선 왕조를 성립시킨 집권 사대부들은 고려 말부터 그들이 추진해 온 과거 제도의 개혁을 계속해서 추진하였다. 먼저 1392년(태조 1) 7월 신왕조 개창(開創)과 함께 고려 시대의 제술과와 명경과를 통합하여 문과로 하고, 다음해 처음으로 무과를 실시하여 양과가 균형적으로 운영됨으로써 명실상부한 양반관료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도 우문좌무의 풍조 때문에 무과보다는 문과가 훨씬 중요시되었다.

한편, 양대업의 문과 통합과 함께 초장을 강경(講經:口義라고도 함), 중장을 표(表)ㆍ장(章)ㆍ고부(古賦), 종장을 책문(策問)으로 정하였다. 초장의 경학시험이 고려 시대까지 경(經)의 본문을 내어놓고 곧바로 해석을 가하는 일종의 논(論)을 세우게 하는 필기시험인 경의에서 경서의 대의를 묻는 구술시험인 강경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조선 초기 약 반세기 동안 문과 초장의 시험 방법을 놓고 강경파와 제술파가 대립하여 때로는 강경, 때로는 제술이 실시되었으나, 결국은 강경파의 승리로 끝나 그들의 주장이 ≪경국대전≫에 실려 법제화되었다. 1392년 7월에는 진사시에 해당하는 국자감시가 혁파되었다. 그 이유는 성리학 신봉자로서 사장보다는 경학을 중시하였던 집권 사대부들이 사장 시험인 진사시보다 경학 시험인 생원시를 중시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와 함께 국자감시가 고려 시대 귀족들의 붕당ㆍ학벌ㆍ족벌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도구로 이용되는 등의 폐해를 자아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크게 작용하였다. 그러나 혁파 다음해인 1393년 감시가 실시된 적이 있으며, 그 2년 뒤인 1395년 다시 혁파되었다.

그 뒤 진사시의 복구를 요청하는 의견이 많아지자 1438년(세종 20) 진사시가 부활되었으나, 역시 경학 위주의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6년 만인 1444년 다시 혁파되었다. 진사시는 1453년(단종 1) 다시 복구되어 계속 실시되었다. 조선 초기 약 60년 동안 진사시는 실시되지 않았으므로 이 시기에는 성균관 입학시험이 생원시 하나뿐이었다.

성균관 입학 시험에 해당하는 시험인 소과는 국초에는 단 한 번의 시험으로 급락을 정하였으나, 1414년(태종 4)부터는 초시ㆍ복시 두 단계 시험에 의하여 급락이 정해지는 것으로 바뀌었다.
감시의 혁파와 함께 좌주ㆍ문생제도 철폐되었다. 좌주ㆍ문생제는 한때 태종 스스로가 좌주문생례를 행하는 등의 긍정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아직 뿌리 뽑히지 않은 상태였으나, 사대부 관료들이 집요하게 반대하여 1413년 철폐하도록 하였다.

신왕조의 집권 사대부들은 국가의 지도 이념인 성리학의 요람이자 새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 기관으로서 성균관ㆍ사부학당ㆍ향교 등의 관학을 진흥시켰다. 그리고 관학과 과거제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킨다는 입장에서 사학과 향교에서 양성한 인재를 생원시(진사시가 부설된 이후는 진사시도 해당)로 뽑아 성균관에 입학시켜 실력을 더 쌓도록 하였다. 이와 함께 1417년 신과거법(新科擧法)을 제정하여 성균관과 과거(문과)와의 관계를 명시하여 생원은 '입학의 문'이요, 급제는 '입사(入仕)의 길'이라 하였다.

조선 초기의 과거 시험 업무는 성균관에서 거의 담당하고 있었다. 즉, 성균관 학관(成均館學官)의 집합체 성균정록소(成均正錄所)와 성균장이소(成均長貳所)에서 과거 시험의 실무를 맡고 있었다. 성균관의 이와 같은 과도적 과거 시험 업무는 1413년 좌주ㆍ문생제를 제도적으로 철폐한 다음 예조로 이관되었다. 그리하여 문과와 생원ㆍ진사시(진사시는 복설된 이후에 해당함)를 모두 예조가 주관하되, 생원ㆍ진사시는 성균관과 함께, 그리고 문과는 예문관ㆍ춘추관과 함께 시험을 보이게 하였다.

잡과는 개국 초에 제정된 <입관보리법 入官補吏法>에 의하면 고려 시대의 잡과 중 잔존된 것은 의과ㆍ음양과 뿐이고, 새로 역과(譯科)ㆍ이과(吏科)가 신설되었다. 역과는 대명 외교의 중요성 때문에 한어과(漢語科)가 국초부터 설치되었고, 세종 때 몽어과(蒙語科)와 왜어과(倭語科), 문종 때 여진어과(女眞語科)가 각각 설치되었다. 이과는 조선 초기 상급서리(上級胥吏)인 성중관(成衆官)을 뽑는 시험이었으나, 뒤에 없어지고 대신 율과(律科)가 새로 생겨 조선시대의 잡과는 역과ㆍ의과ㆍ음양과ㆍ율과로 굳어지게 되었다.

집권 사대부들은 국가 사회의 운영에 기술학의 필요성을 인정하여 잡과를 두었으면서도 유교적인 직업 관념에 의거하여 기술학을 점차 천시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기술직은 사대부들이 종사하기를 꺼리게 되어 점차 양반에서 도태되거나 양인에서 상승한 부류들이 종사하는 직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 결과 기술관 등용시험인 잡과의 격이 떨어져 점차 하급 지배 신분층인 중인층의 과거로 전락되어갔다.

<조좌호>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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