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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4-28 (일) 21:53
분 류 사전1
ㆍ조회: 2037      
[역사] 한국사의 특성 (민족)
한국(한국사의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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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는 원시 사회 이후 부단한 발전을 계속하여왔다. 한국사를 원시 사회에 이어 고대·중세·근세·근대·현대로 나눈 것도 이러한 사회 발전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러한 한국 사회의 내부적 발전은 한국사의 첫 번째 특성이라 할 수 있다.

한국사의 내부적 발전은 우선 사회 신분면에서 찾을 수 있으니, 일반 민중의 지위가 시대가 내려옴에 따라 점진적으로 상승하여갔던 것이다. 즉, 한국사의 사회 발전은 꾸준히 양인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었으며, 또한 천민의 신분 해방이 이루어져 고려 말 조선 초의 사회 변동을 거치면서는 향·부곡·소 등 천민 집단이 소멸하였고,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노비 제도가 붕괴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신분제의 변화는 곧 지배 계층의 확대로 이어졌으니, 민중의 전반적인 지위가 상승하면서 그 일부가 점차 지배층으로 전환되어갔다. 삼국 시대에 왕족과 고대 귀족의 상층 신분만이 지배층이 되었던 것에서 고려에 들어와서는 새로이 문벌 귀족이 지배층으로 되었다. 그것은 종래의 편협한 진골 체제보다 개방된 것이었으나, 역시 문벌이 중시되는 폐쇄성을 가진 점에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이에 고려의 문벌귀족사회는 무신란에 의하여 붕괴되고 고려 후기에는 권문 세족이 지배층을 형성하였으며, 뒤이어 신흥 사대부가 새로이 대두하여 조선의 양반 관료 사회를 성립시켰으니, 이것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관리가 될 수 있는 진전된 형태였다. 그리고 이 양반 관료 사회도 조선 후기에는 점차 붕괴되고 근대에 들어와서는 개화 세력의 성장에 따라 온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민주 사회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와같이, 한국사의 지배 세력은 고대 이후 점차 확대되고 개방되어갔으니, 이는 한국사의 발전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한국 사회는 또한 경제력의 상승을 계속하였다. 농경지의 확대와 농법의 개량은 농업 생산력을 증대시켰으며, 조선 후기에 이르면 상업과 수공업에도 커다란 발전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같은 경제적 성장은 사회 변동의 토대를 이루었으며, 한국사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밖에 한국사는 문화적인 향상을 끊임없이 이룩하였다. 샤머니즘을 중심으로 하는 토착적인 원시신앙에다 외래의 불교 사상과 유교 사상, 그리고 근대에는 서구의 사상과 문물을 수용하여 문화의 폭을 넓혀갔으며, 또한 한문학을 중심으로 한 여러 학문의 발달과 다양한 예술의 전개는 한국 문화의 수준을 높였던 것이다. 이러한 문화의 향상은 한국사의 지적 역량의 축적을 뜻하는 것으로 정신면의 발전을 가져오게 하였다.

한국사의 두 번째 특성으로는 이러한 내부적 발전이 한국사의 주체적인 역량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고대에서 중세 사회로의 발전은 폐쇄적인 진골 체제에 반대하는 6두품 계층 및 지방 호족 세력들의 대두와 더불어 고대적 수취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저항의 결과로서 가능한 것이었다.

또한, 근세 사회로의 발전도 당시의 사회 변동에 따른 신흥사대부의 성장과 함께 12, 13세기 이래 농민·천민의 난으로 표현되는 기층 사회의 움직임이 그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사의 자율적인 발전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조선 후기의 사회 변동이다. 조선 후기에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커다란 변동이 일어나고 있었으며, 그것은 확실히 근대사회를 지향하는 힘찬 움직임이었다.

우선, 경제면에서는 농업 생산력이 급증하여 사회 변동의 토대를 마련하였고, 상공업에 있어서도 이미 상업 자본의 성장이 나타나고 있었으며, 사회면에서는 신분 제도가 붕괴되어갔다. 또한, 사상계에 있어서는 실학이 발생하여 사회 개혁으로 현실 개혁의 사회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와같이, 한국사는 그 스스로의 내재적인 요인에 의해서 근대화의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한국의 광복 역시 제2차 세계 대전의 종결에 따라 일방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식민지하에서 줄기차게 계속된 우리 민족의 항쟁의 결과로서 얻어진 것이었다.

세 번째 특성으로는 한국사는 대외적으로 외세의 거듭된 침략에 대항하면서 국토를 방위하고 국권을 수호하는 데 전력을 기울인 국토 보전의 역사라는 점이다. 고조선이 한의 침략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고구려가 수·당과 충돌하였고, 고려 시대에는 거란·여진·몽고족의 침략을 받았으며, 조선 시대에는 왜란과 호란을 겪었지만, 이들 침략 세력과 항쟁하여 국가를 보위하였던 것이다.

특히, 고구려가 수·당의 침략을 물리친 것은 고구려뿐 아니라 백제와 신라의 존립까지도 구원한 민족 보위의 의의를 지니는 것이며, 고려가 당시 세계 제국을 건설한 몽고족에 대항하여 30여년간의 치열한 항쟁 끝에 국가를 보전한 것은 특기할만한 사실이다.

다만, 조선 후기에 제국주의의 침략을 당하여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35년 동안 주권을 상실한 단절기를 맞이하였으나, 식민지하에서도 국권 회복을 위한 민족의 항쟁은 계속되었고, 우리의 국권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의하여 계승됨으로써 한국사의 정통성은 단절되지 않았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사는 곧 민족사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니, 이는 우리 민족이 단일 민족이라는 사실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신석기 시대에 이미 형성된 우리 민족은 국가 성립 이후 삼국 시대에 이르기까지 통일된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분열된 채 서로 상쟁하였으나, 그러한 가운데서도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표방한 일통 삼한 의식(一統三韓意識)이 바로 그것으로, 이러한 동족 의식을 바탕으로 하면서 삼국 통일을 계기로 하나의 민족 국가가 성립되었던 것이다. 그뒤 후삼국의 분열이 있었지만,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고 나아가서는 발해 유민까지 포섭함으로써 민족의 재통일을 이룩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대내적으로 한글이 창제되고 단군 국조 관념이 대두하였으며, 대외적으로는 국경선 확장에 따라 국토의식이 성장하는 등 민족 의식이 고취되고 국민 국가의 터전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후기에는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한 논리로서 민족주의가 제시되고 민족 의식이 강조되었는데, 민족 의식은 식민지하에서 치열하게 전개된 독립 운동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한국사가 단일민족의 역사라는 사실은 오늘날 분단 상황의 극복과 민족 통일의 당위성을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변태섭>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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