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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5-01 (수)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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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584      
[한국] 한국의 과학 기술 (민족)
한국(한국의 과학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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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물질문화와 정신문화로 크게 나누어볼 때, 과학기술은 물질문화에 속한다. 그러나 과학은 물질문화를 창출하는 근원으로서의 정신적 활동이란 면이 강하다. 이에 비해 기술은 필요성에 의해 자연스럽게 창출된다. 그렇다면 과학과 기술은 다른 개념이 된다. 그럼에도 우리가 흔히들 과학기술이라 붙여 부르는 데에는, 과학적 사고방식 내지 인식이 기술 발전에 절대적인 구실을 하여 양자간에는 뗄 수 없는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필요성은 인간의 정신활동을 자극하고, 그 자극의 결과는 필요로 하는 대상물을 획득 내지는 만드는 행위로 이어진다. 이 행위가 의도에 의해, 즉 과학적이고도 현실에 기반을 둔 의식으로 나타날 때, 우리는 그것을 넓은 의미로 기술이라 부른다. 따라서 인간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 낸 모든 물질문화에는 과학의식과 그에 따른 기술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한국문화의 형성과 전개과정은 그대로 한국 과학기술의 형성과 전개과정이 된다. 인간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 낸 최초의 물질문화를 우리는 도구라 부를 수 있다. 인류 최초로 기술이 구사된 것이다. 한국 과학기술의 발전사도 인간이 최초로 도구를 만들어낸 시기, 구석기시대로부터 출발한다. 한국문화의 발전 속에서 과학기술의 변화상을 이해하려면, 한국사의 전개과정에 맞추어 설명해나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1) 석기 시대

인류 최초의 과학기술은 그들이 만든 도구에 반영되었다. 구석기시대의 타제석기에서 출발해 신석기시대의 마제석기에 이르기까지 석기시대의 과학기술은 주로 도구 제작에 적용되었다. 이 시기에 한국인의 과학기술을 획기적으로 촉진시킨 요인은 농업이었다. 즉, 농업에 따른 정착생활은 각종 도구를 필요로 했고, 특히 토기의 발명은 이 시기 과학기술을 대변하였다. 재료의 선택과 혼합, 그릇 모양의 다양화, 굽는 온도의 조절 등은 단순히 때리거나 갈아서 만든 도구에 적용된 과학기술의 개념을 이미 크게 벗어나 있었다. 이른바 빗살무늬토기로 대표되는 신석기시대의 문화권이 발해 연안을 중심으로 한반도·일본에 이르기까지 넓게 형성되었다.

석기 시대 과학기술이 반영된 것들로는 이 밖에도 옷감이나 그물을 짜는 데 기술이 필요했던 물레나, 원시적이긴 해도 일정한 공간과 화덕을 갖춘 주거지를 들 수 있다. 석기시대의 과학기술의 주체는 도구와 토기의 제작을 주로 담당한 여성이었다. 이는 물론 모계 중심의 원시공동체사회의 모습이었다.

(2) 청동기 시대

신석기 시대 말기부터 주로 묘장에 반영되어 나타난 인간 사회 불평등의 요소는 금속기인 청동기의 사용으로 더욱 확대되었다. 석기에 비해 엄청난 살상능력을 갖춘 청동기의 사용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더욱 촉진시켰고, 이에 따라 나타난 권력은 마침내 고대국가의 형성으로까지 발전하였다.

농업은 효율적인 농구의 개발로 보다 발전했고, 식량 증산은 인구의 증가를 가져왔다. 인간생활에 있어 필요 요소는 늘어날 수밖에 없었고, 분배의 불평등은 이를 더욱 자극하였다. 우리 나라 고유의 문화로 인정되고 있는 비파형청동단검문화는 당시 과학기술의 수준과 용도를 단적으로 드러내준다.

세 부분을 조립하게 되어 있는 점이나, 검에 무게를 더해주는 가중기와 비파형 날에서 나오는 엄청난 살상력을 특징으로 하는 이 검문화는, 서기전 10세기를 전후한 동북아시아 어느 민족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는 은·주교체기와 춘추전국시대라는 동북아시아 국제정세 속에서의 고조선이 가지는 위치와 무관하지 않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토기인 무문토기는 그 제작·형태·종류·문양 등에서 전 시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발전하고 다양화되었다. 지배와 피지배관계를 잘 나타내주는 말의 사용과 그에 따른 각종 말갖춤도 이 시기의 과학기술 수준을 잘 나타내준다.

특히, 꼭지가 여럿 달린 잔줄무늬청동거울〔多瞿細文鏡〕은 당시의 뛰어난 기하학 수준이 반영된 기물로, 거울면에 새겨진 잔줄무늬는 오늘날의 과학기술로도 재현해내기 힘들 정도이다. 각종 문물에 반영된 과학기술 수준은 이 시기 문화가 가지는 개방성과 전파성과도 관계가 있다. 이는 민족과 같은 이데올로기적 개념이 정착되기 이전의 문화가 가지는 특성이다. 비파형청동단검에 반영된 중원적 요소와 북방민족의 요소, 그리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해 낸 점은 이 시기 문화의 특성을 잘 드러내 준다.

일본 야요이시대(彌生時代) 청동기의 원료가 상당 부분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이라는 납의 동위원소 분석결과는 이 시기 문화의 전파성을 잘 말해준다. 청동기문화를 기반으로 형성된 초기 고대국가들은 서기전 4, 3세기 전후에 전파된 보다 강력하고 다양한 용도의 금속기인 철기의 사용으로 재편성기를 맞이한다.

중국은 전국시대의 혼란기를 거쳐 진·한에 의해 통일이 준비되어가고 있었고, 한국 고대국가를 대표하는 고조선은 이 국제질서 재편성의 와중에서 몰락하였다. 이러한 커다란 변동을 과학기술적 측면에서 보면, 바로 철기라는 금속기의 사용인 것이다.

(3) 삼국 시대

철기라는 금속기의 도입으로 재편성된 한국의 국가체제는 이른바 삼국시대였다. 삼국은 각기 폐쇄적인 국가적 차원의 통로로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국가체제를 정비해나갔다. 이 시기의 과학기술은 국가적 차원에서 통제되는 가운데 체계적으로 발전하였다. 전문적인 기술인이 육성되어 국가의 요구에 부응한 여러 물질문화를 창조해냈다.

고구려는 일찍부터 여러 주변 민족들과 문물 교류를 통해 우수한 과학기술을 보유하였다. 벽화고분의 축조기술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뛰어났다. 석성의 축조 기술도 중국이나 백제·신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기술이었다. 벽화에 보이는 생활 모습은 실생활에 과학의 원리를 잘 이용했음을 보여준다.

벽화천장의 성도(星圖)는 고구려의 천문과학의 단면을 보여주며, 주요 도로·건물·성곽 등이 치밀한 설계에 의해 축조되었다. 수학·건축·토목 등 각종 과학적 지식이 어우러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여러 문물이 고구려의 장인들에 의해 축조되었다.

백제의 과학기술은 무령왕릉의 출토유물들이 잘 보여준다. 정교하게 구워진 벽돌, 배수시설을 비롯한 수도시설이 갖추어졌음을 알려주는 토관 등은 우아하고 세련된 문화적 감각 하에서 이루어진 백제인의 과학기술 수준을 보여준다.

삼국 중 가장 늦게 발전한 신라는 전통사상과 고등종교인 불교가 심한 갈등을 거친 끝에 국가의 이념체제를 정비하고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신라의 과학기술도 이러한 국가발전과 궤를 같이하며 발전하였다. 유리를 직접 만들 정도의 우수한 과학기술을 소유하였다. 높은 온도에서 구워낸 각종 토기도 신라의 기술수준을 잘 대변한다. 국가에서는 장인을 정책적으로 육성하였다. 오늘날까지 남아 전하는 금제 공예품에는 그것을 제작한 장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삼국의 과학기술은 농경문화의 정착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에 보이는 관개수리사업은 농경과 관련된 토목기술의 개발을 의미한다. 우경기술(牛耕技術)도 개발되고, 벼농사기술도 발달되어 생활을 풍족하게 하였다. 삼국의 대치상황에서 각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생산성 향상을 위한 모든 분야의 과학기술 육성을 장려하였다.

통일 신라의 과학기술이 한국적 과학기술 전통을 확고하게 다지면서도 세계에서 뒤지지 않는 수준을 보여준 데에는 삼국의 과학기술 장려책에 힘입은 바가 크다. 삼국시대는 국가적 차원에서 과학기술을 장려함으로써 장인계층이라는 신분층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4) 통일 신라와 발해

보다 넓어진 영토와 크게 늘어난 인구를 적절히 통제하기 위해서 통일신라는 전제왕권이라는 강력한 왕권체제 하에서 과학기술 분야에 국가적인 투자를 기울였다. 석굴암·첨성대·불국사·금동불상·범종·목판인쇄술 등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문물은 통일신라시대의 과학기술의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한편으로 통일신라의 과학기술이 얼마나 실생활에 유용하게 활용되었는가라는 의문도 없지 않다. 이는 신라사회가 폐쇄적인 골품제라는 신분체제에 의해 귀족들의 특권을 유지해왔다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다. 또한 외세의 힘을 빌려 삼국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었던 많은 계층의 이익을 보장해주지 못한 통일신라의 국가적 한계도, 과학기술의 진정한 발전을 방해한 요인이었다.

신라와 대치했던 발해의 과학기술의 실상을 제대로 밝혀줄 만한 자료가 지금으로서는 부족하지만, 성당문화(盛唐文化)의 수용에 힘썼던 발해의 과학기술 수준이 어떠했는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벽화무덤과 불교건축 및 그와 관련된 여러 문물은 당과 신라와 대치한 국제정세속에서 국가발전을 위해 노력한 발해의 과학기술의 실상을 잘 나타내준다.

신라나 발해의 과학기술은 말기로 오면서 실생활과는 유리되는 경향을 보인다. 과학기술이 귀족들의 사치향락의 수단으로 동원되는 모습들이 후기 문물들 곳곳에 반영되고 있다. 여기에 신라 말기에 수용된 선종의 개인주의적이고 관념적인 특성은 실생활에 유용하게 활용되어야 할 과학기술의 발전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하였다.

(5) 고려

고려 시대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쇄술 및 청자 등 도자기 제조기술면에서 두드러진다. 그 밖에도 의학·천문·역법·수학 등의 방면에서도 큰 발전을 보았다. 고려 말에는 중국의 강남농법과 같은 생산성 높은 경작기술이 도입되어 농업생산력의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농업과 관련된 수리개간사업 및 농지측량은 진보된 과학기술 수준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

(6) 조선

신흥 사대부 계급이 주축이 되어 성립된 조선 왕조는 농업경제를 최우선으로 안정시켜 농민들을 통제하면서 양반이 지배계급으로 형성된 사회였다. 기반이 넓어진 지배계층의 이익을 대변한 과학기술은 왕조 초기에 국가체제의 정비와 함께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세종대를 정점으로 하는 조선 초기의 과학기술의 수준과 역량은 한국 과학기술 수준의 최고봉을 이룬다. 여기에 훈민정음의 창제로 전달매체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어 과학기술은 많은 사람의 실생활 속에 적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상은 점차 초기 지배층이 수구화되고 지배이념인 성리학이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가운데, 임진왜란을 당하면서 커다란 변혁을 맞이한다. 전쟁은 일시적으로 과학기술의 발전을 자극했지만 이것이 전쟁 후 일반민중의 실생활에서 효율적으로 적용되지는 못하였다. 정치는 정쟁으로 일관되었다.

그에 대한 반성으로 일어난 새롭고도 전반적인 신학문활동인 실학도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의 배타적 관념체계를 부정하지 못하고 실패하고 말았다. 때문에 임진왜란 이후 과학기술은 전쟁 후 일시적으로 발전한 의학 방면을 제외하고는 보잘것 없었다.

조선 후기의 과학기술은 청으로부터 들어온 서학의 자극을 받아 충격 속에서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이 전환기가 자기의 길을 찾기 전에 봉건체제에 대한 민중의 저항과 외세의 침략으로 인한 민족운동의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들었다. 그러나 과학기술은 조선 후기부터 민중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아갔다. 이제 지배계층에 복무하는 수단이 아닌 민중의 생활에 유용하게 활용되어야 할 중요한 대상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것은 민중의 자각과 함께 강조되어 물질문화가 궁극적으로는 인간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방향에서 정착되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인식으로 자리잡아가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 민중의 자각과 외세의 침략에 대항한 민족운동의 큰 틀 속에서 과학기술은 민중의 생활을 유용하게 만드는 작용점으로 인식되었고, 이는 과학기술의 본질이 바르게 이해되기 시작한 계기였다. 일제 강점기의 민족 운동이나 현재의 통일 운동 속에서의 과학기술의 의미도 과학기술이 인간 실생활 속에서 조화롭게 용해되어야 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라 할 것이다.

<강신표>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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