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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5-01 (수)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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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3296      
[한국] 한국 문화의 특성 (민족)
한국(한국문화의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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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이나 우주를 이해한다거나 경험한다는 것은 어떤 질서를 설정해서 부여해보는 것뿐이다.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감각자료들은 무한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는 간단한 몇 가지 유형으로 정리하여 질서를 세운다. 즉 혼돈을 질서로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이해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 자체는 이미 ‘준비된 질서’를 마련해 놓고 있다. 한 사회의 성원으로 어떻게 세상을 지각해야 하는가를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배우게 된다. 이른바 사회화 과정은 준비된 질서를 배우고 익히고 유지하려고 하고, 때에 따라서는 수정해 보려고도 하는 것이다. ‘준비된 질서’ 또는 우리의 경험을 정리시켜주는 일련의 모델이 다름 아닌 한 사회의 문화인 것이다. 이리하여 문화는 인간의 행위를 규제하게 된다.

한국 문화 분석상의 이념형을 ‘조선 농민사회 문화’와 ‘한국 시민 문화’로 나누어볼 수 있다. 전자를 조선왕조 사회의 농업 중심적 문화라고 한다면, 후자는 오늘날 한국 민주사회의 상공업 중심적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조선 농민사회 문화의 모델은 ‘대대적 인지구조(對待的認知構造)’라고 규정할 수 있다. 대대(對待)는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음양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음과 양은 이분법적 대(對)의 개념이다. 그리고 동시에 대대는 서로 상반된 개념이다. 즉 상대하고 반대하는 대(對)이며, 대접하고 대우하는 대(待)이다. 어쩌면 시(是)비(非)의 논리의 세계이다.

이는 곧 음과 양의 이분법적 대(對)의 개념이요, 음과 양의 대(待)의 화합으로 만물을 화생시키는 개념이다. 이 동적인 관계에서 양은 음을, 음은 양을 상보하여 하나로 되려는 것이다. 대대는 다름아닌 이러한 상보적인 음양의 작용관계를 말한다. 이러한 이분법적 대대적 인지구조는 인간사고의 기본구조에서 연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선 시대 농민사회의 이데올로기는 고대 중국의 그러한 인지 구조의 일환으로 파악된다. 즉, 유교·불교·도교·샤마니즘은 음양적 대대구조의 특성을 하나의 공통분모로 하고 있다고 본다. 조선의 정치·사회·종교·예술 그 밖의 여러 가지 생활 영역에 있어 전통사회의 지도자들이 이를 ‘설명의 원리’로서 사용해 왔음을 여러 각도에서 고찰할 수 있다.

음양 원리란 어떤 실체가 아니라 사(事)와 물(物)을 지각하고 관련짓고 해석하는 데 사용한, 사람 마음 속에 있는 조직원리이다. ‘한다’와 ‘된다’라는 이분법적 짝은 조선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짝으로 상정해 볼 수 있다. 앞의 것이 능동이면 뒤의 것은 피동이다. 이러한 피동과 능동은 음과 양으로 풀이할 수 있다.

양자는 서로에 대하여 모순·반대·주종·표리·상하·좌우·선후 등의 여러 관계로 성립할 수 있다. 따라서 두 개의 관계에 여러 가지로 변환이 가능하다. 이러한 이분법적 짝의 사고구조는 한국을 포함하는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의 공통된 구조적 원리이다.

이를 ‘음양의 원리에 입각한 대대적 문화문법(對待的文化文法)’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즉, 음과 양은 이원적이면서도 그 동태적 관계에서는 음양은 합일하게 되어 있으므로 일원적이고, ‘분(分)하면 합(合)하고, 다시 합하면 분한다. ’는 논리까지 깃들여 이원적이면서도 일원적이고, 일원적이면서도 이원적이다.

한국 전통 사회에 있어 부자적(父子的) 인간관계는 한국인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의 준거 ‘형식’이다. 부자적 관계의 형식이 모든 인간관계 지각의 기본이 된다. 부(父)와 자(子)는 ‘대대적’ 관계에 있다. 부가 자(慈)의 태도로 자식을 대할 때, 자는 효(孝)의 태도로 부에 대하는 것으로 대대를 이룬다고 풀이된다.

이러한 대대적 관계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상‘대(對)’의 기‘대(待)’속에서 어떻게 화합할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덕목이다. 그래서 그것이 부가 되든, 자연이든 초자연이든 그 상대에 순응하고 복종하며 안녕과 질서를 찾고 세우며 살아가는 세계이다. 한국 전통사회에 있어서 가족이란 부자적 대대관계 속에서 상대에 순응하고 복종하여 안녕과 질서를 제일로 여기며 생활하는 집단이다. 부는 조부(祖父)에 대하여 자로 존재하며, 자는 손자에 대하여 부로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한 개인은 각기 상대하는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부가 되고 자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부자적 관계는 다른 말로 표현해서 상하적 관계이다.

이러한 상하적 관계는 한국어의 언어적 표현에 잘 결정되어 있다. 존칭어와 비칭어라는 존비어는 사회 일반의 관계에서 발견되고 있으나, 이것의 원형은 가족관계에서 출발되고 있다. 전통적 가족관계에서 존재하는 절대적 가부장의 위치나 신분계서(身分階序)의 엄격성, 동족 위주주의 등은 현존하는 언어적 표현에 의해서 그대로 잔존하고 있다. 문법은 문장과 달리 좀처럼 쉽게 변하지 않는다. 오늘날 한국사회에 있어 사용되고 있는 각종 인간관계의 호칭이 가족관계적인 표현이라는 점은 전통적인 가족주의문화가 건재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가족주의적 문화의 규칙을 몇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정리해보자.

첫째로, 한 개인은 개체로서 존재할 수 없고 반드시 어떤 집단의 일원으로 존재한다. 어떤 가족의 일원으로서만 정체성(正體性)이 확인되는 것이다. 그 가족은 다시 어떤 당내(堂內)의 성원이요, 그 당내는 다시 어떤 종파의 성원이요, 그 지파(支派:종파)는 다시 문중의 성원으로 귀속하게 된다.

때에 따라서는 혈연적이 아닌 지연적인 집단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것은 대체로 혈연적 집단이 위치하고 있는 지리적 자연과 관련되기 때문에 두가지 상이한 기준은 상호교체, 변화될 수 있다. 한 개인의 행동은 그가 속해 있는 집단 전체의 행동으로 평가된다. 이것은 어떠한 개인도 일가친척의 공동체적 유대 속에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이러한 집단은 규모가 클수록 좋은 것이다. 일가친척이 번성한다는 것은 곧 집단의 성원수가 확대됨을 말한다. 농경사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생활의 협동에 있다. 농사에 있어서는 양질의 노동력의 확보가 가장 중요한 소망이다. 오늘날의 한국 농촌에 있어서도 한 집안의 크고 작은 일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여서 서로 도우느냐 하는 것이 그 집단의 사회적 지위를 말해주는 척도가 되고 있다. 시제(時祭)에서부터 혼상례 때에 이르기까지 많은 동족성원의 참가는 가장 자랑스러운 것이다.

셋째로, 앞에서 부자적 관계를 설명할 때 언급한 상하적 서열의식이다. 이 상하의식은 ‘천존지비(天尊地卑)’라고도 표현된다. ‘천존지비’라는 ≪주역≫의 일구는 어떤 의미에서 한자문화권에 살아온 모든 사람들의 심층의식의 구조를 이룬다. 존비라는 두 글자 앞에 있는 천지라는 두 글자 대신에 여러 다른 수많은 대(對)의 글자를 넣을 수 있다. 관민과 남녀라는 글자를 존비 앞에 각각 놓고 보면 관존민비, 남존여비가 된다.

천존지비라는 표현은 한자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사물의 형식’의 표현이다. 천존지비라는 표현이 유의미한 한 남존여비를 없앨 수는 없다. 그것은 뿌리는 두고 가지만 바꾸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해야 할 점이 있다. 한자의 사용이 오늘날에 와서 과거에 비해 현격히 줄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옛날처럼 천존지비라는 말과 뜻이 깊은 뿌리처럼 통용되지 않고 있다.

관존민비나 남존여비의 단어가 막연히 과거 봉건적 잔재로만 여겨지는 낡은 것으로 이해되어가고 있다. 설혹 남아 있다 해도 곧 얼마 가지 않아서 없어질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또한 경어법의 사용도 쉽게 없어지지 않으리라는 것도 당연하다고 본다. 경어법 사용에 혼란이 있었다면, 다만 경어 사용의 상황과 규칙이 보다 단순화 내지 생략되는 데 있지 않았나 여겨진다.

넷째로, 부자관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호작용의 내용에 관한 것이다. 부(父)는 자(慈)해야 하고 자(子)는 효(孝)해야 한다는 것은 앞에서도 지적하였다. 천존지비가 존비의 상하관계로도 볼 수 있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 상호작용적 측면으로도 볼 수 있다. ‘천(天)은 지(地)에 대하여 존경받을만해야 하고, 지는 천에 대하여 자기를 낮추어 비하함이 예(禮)다. ’라고도 할 수 있다. 천은 천다워야 하고, 지는 지다워야 한다.

‘상(上)은 상이고 하(下)은 하이다.’라는 단순한 위치설정으로 정태적인 관계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부단한 행동과 활동으로 상(上)은 상으로서 하(下)에 대한 소임을 다하고 하(下)는 하로서 상(上)에 대한 소임을 다할 때 천존지비가 완성된다는 동태적인 관계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점은 위의 세번째 내용의 연속으로 보인다.

그리고 첫째 내용의 개인이 개체로 존재할 수 없다는 점도 셋째·넷째 내용에서 설명하는 ‘대대성’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천은 지가 없이 존재할 수 없고, 지는 천이 없이 생각할 수 없다. 같은 논리로 부(父) 없이 자(子) 없고, 자 없이 부를 생각할 수 없다. 자에 대한 부는 부모요, 다시 그 부모는 동시에 친조부모와 외조부모를 뜻할 수 있고 그 부모의 형제자매들을 뜻할 수도 있다.

‘대대적’ 사고나 의식에 있어서는 구체적 ‘부’ 하나로 ‘자’를 뜻하지 않는다. ‘대(對)’가 될 수 있는 모든 내포가 각기 상황에 따라 확대 변환될 수 있는 것이 한자문화권의 인지적 구조이다. 두 번째로 지적한 집단의 규모가 클수록 좋다는 것은 또한 ‘대대적’ 관계가 많을수록 좋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즉, 부자자효(父慈子孝)할 수 있는 상‘대’관계가 많을수록 네트워크의 연줄망은 많아지는 것이요, 그것이 많을 때 상부상조할 수 있는 양과 폭이 크다는 것이다. 부자적 관계로 파악될 수 없는 집단 간에 있어서는 자(慈)와 효(孝)를 행할 수 없다는 점도 중요한 사실이다.

그리고 자와 효를 행할 수 있는 친가의 폭은 외가의 폭보다 넓다. 이러한 점이 자(子)를 여(女)보다 귀히 여긴 이유일지도 모른다. 오늘날도 선생이 자기 제자를 많이 만들려는 것이나, 정치하는 사람들이 자기 부하 당원을 많이 거느리려는 것도 이에 기초한다. 여자 제자와 여자 당원을 기피하는 것도 부자 관계 같은 관계 성립이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많이 변해가고 있음도 부정할 수 없다.

문화 정체성(文化正體性)을 논할 때 ‘전통문화’와 ‘문화적 전통’은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전자는 기본적으로 과거 전통사회의 문화라는 뜻이며, 후자는 ‘과거로부터 현대까지 축적된 문화양식으로서, 현재의 사회환경 속에서도 유지되고 있는 문화’라는 의미이다. 우리의 고유문화로서 ‘과거에 속하는 것’과 ‘현재에 속하는 것’이 각각 ‘전통문화’와 ‘문화적 전통’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3분은 문화의 연속과 단절을 논할 때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측면을 제시하고 있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의 고유문화를 다루는 데 있어서 과거에 속하는 것과 현재에 속하는 것을 구분하기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고유문화는 이미 역사적 전통의 배경을 빼놓고서는 설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문제와 혼란이 제기되는 데는 문화란 무엇이냐라는 데 대한 각 학문마다의 정의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문화인류학에서도 경험론적 입장과 관념론적 입장에 따라 문화의 정의가 완전히 다르다.

현대 한국 사회 문화 속에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 전통문화라고 본다. 앞에서 이러한 전통문화의 특성을 ‘대대적 인지구조’로 해석해 보고 다시 ‘가족주의적 문화’의 규칙을 구체적으로 열거해보았다. 가족주의적 문화의 성격을 다시 세 가지 분석적 차원으로 요약하여 정리할 수 있다. 첫째가 급수성(級數性)이요, 둘째가 집단성(集團性)이요, 셋째가 연극·의례성이다.

첫째로, 급수성은 바둑의 급수처럼 모든 인간관계를 등급별로 파악하는 성향이다. 가족관계에 있어 부자로부터 시작되는 촌수(寸數)의 항렬이며, 신분차등서열이며, 요즘 많이 논의되는 관료적 권위주의이다. 이미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말에 내재하는 존비어의 사용이 없어지지 않는 한 상하적 인간관계를 파악하는 ‘마음 속의 형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중앙과 지방, 도시와 농촌, 양반과 평민, 혼반(婚班), 지체, 그리고 일류학교와 이류학교, 대학입학 학력고사 등급 등은 우리 사회를 ‘지각하고 판단하는 데 사용되는 마음 속의 형식’으로, 이러한 급수적 차등의식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급수성에서 나타나는 상위 지향은 우리 문화만의 고유한 특성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가족주의적 문화전통에 있어서 항렬의식이 한국에서 수백년을 두고 강조되어 왔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 현대 사회생활의 측면에서 다른 나라에 비하여 보다 많이 변환해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집단성은 한 개인이 가족집단의 일원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음을 말한다. 혈연으로 지연으로 한 개인이 어떤 집단에 소속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개인은 한 개인으로 평가되지 않고 개인의 평가가 곧 그가 속한 집단의 평가로 간주된다. 한 개인의 잘못은 그가 속한 집단·가족·문중·지방 등으로 확대되어간다. 이른바 공동체의식이 그것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라는 것으로부터 ‘우리 집안을 위하여’에 이르기까지 한 개인이 흔쾌히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정신은 가족주의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동아시아한자문화권사회의 공통된 특성들이다. 동족(씨족)집단, 파족(派族), 우리 집안, 우리 고향사람, 학교동창, 그리고 최근에 와서 대기업들도 가족 집단으로 집단 의식을 고취시키고 있다.

셋째로, 연극·의례성은 우리의 과거 전통사회로부터 오늘날 현대사회로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이 차원의 문제성은 우리 언어의 문법처럼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문화적 문법이라는 데 있다. 앞에서 대대적 인지구조를 언급했지만, 음양합일에는 연극·의례성을 강요하는 면이 있다. 즉 음양적 관계로 두 사람의 관계가 설정되면 연극·의례적으로라도 합일해야 하는 문화적 규칙이다.

두 사람이 친형제 또는 친부자가 아니더라도 형뻘·동생뻘 사이라든지, 아버지와 아들 사이로 보일 수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각자 자기 소임을 연극적으로 또는 의례적으로라도 수행해야 하는 ‘마음 속의 형식’이다. 어르신네가 걱정하실까봐 거짓말을 할 수 있다. 회의할 때 내심으로는 안건에 반대하지만, “그 자리에서 ‘차마’ 반대할 수 있어야지?” 라는 입장에서 표결에서는 찬성해 놓고 나와서는 반대하는 것이다.

이른바 연극·의례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예’와 ‘아니오’가 체면상의 ‘예’와 ‘아니오’가 되기 쉽다. 찬반과 가부를 딱잘라 말하지 않고, 찬성하는 것 같으면서도 반대하는 것 같다. 그래서 시험답안지 ○×만이 분명할 뿐 찬반 양쪽 어느 집단에 대해서도 욕을 먹지 않는 연극과 의례를 해야 할 때가 많다. ‘만장일치’, ‘일사불란’ 등의 표현이 오늘날 한국 정당들의 협의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도 이러한 연극·의례성을 대변한다.

한국 농촌에서 이견 조정 및 분쟁 해결의 과정을 살펴보면, 지도자나 중재자를 두고 마을 전체사람들의 ‘만장일치’를 공식적(표면상)으로 얻게 되며, 분쟁의 해결은 양편 다 ‘말이 된다’는 식으로 이끈다. 한국 전통 문화에 있어 분쟁 해결의 대표적인 예는 ‘없었던 것으로 하자.’일 것이다. 시비와 분쟁이 있을 때, 그 해결이 양편 다 옳은 것으로 되는 동시에 양편 다 옳지 않은 것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그 어느 것도 용납 안 된다면 ‘없었던 것’으로 하는 방안밖에 없다. 황희정승의 명판결인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는 것도 이런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우기면 된다.”, “큰소리만 치면 안 될 것도 없다.” 더 나아가 “안 될 것도 없고 될 것도 없다.”라는 등의 말이 뜻하는 바가 연극·의례성이다.

대표적으로 TV방송극 가운데 〈풍란 風蘭〉과 〈새벽〉은 조선 중기와 광복 이후의 사회가 어쩌면 그렇게도 비슷한가를 실감하게 한다. 이 역시 권모술수와 모략중상에 생사를 걸고 ‘연극·의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극(史劇)은 전해오는 이야기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전통문화는 현존하고 있으며, 동시에 다시 재활성화, 재확인되고 있는 셈이다.

다음으로 의·식·주 문화의 특성을 살펴볼 수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있어야 하는 요소로 ‘의·식·주’의 삼대 요소를 꼽는다. 사람이 삶을 꾸려나가는 데 옷·밥·집은 빠지지 않는 기본거리이다. 그러나 이를 학문으로 여기는 이는 드물며, 또 이를 학문으로 연구하는 이조차 물질 그 자체에 천착하기 일쑤이다. 의식주는 인간사에 너무나 상식이라 논리를 요구하는 학문의 체계는 미치지 않는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식주를 깊이 살펴보면, 그 물질을 있게 하는 관념, 즉 문법이 있음을 발견한다. 우리 의식주에 대한 연구 역시 이러한 문법을 찾는 데 주목해야 한다. 이미 앞에서 의식주에 대한 설명은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대대적 문화문법으로 이를 설명할 때 다음과 같이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옷은 인간의 몸을 가리는 데 첫 의미가 있다. 그러나 몸의 치부를 가리는 방법은 각양각색이다. 여기서 우리는 문화를 발견한다. 자연환경에 따라 옷을 촘촘이 입기도 하고, 치부만 가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옷의 첫 의미에 불과하다. 우리네 옷입기의 역사는 이 첫 의미에만 그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상의와 하의를 엄격히 구별한 북방민의 전통을 이어받은 바탕에서 불교, 몽고, 그리고 유교의 영향이 고루 어우러지는 가운데 우리의 전통 인간관이 옷에서도 면면히 흐르고 있다. 우리 전래의 옷입기는 공식복·의례복·일상복으로 나눌 수 있다. 모두가 의례(儀禮)에 따라 정해져 있다. 동·서반의 차이에 따라 옷입기도 달랐다. 관직의 서열에 따라서도 복식의 모양과 색깔은 분명히 달랐다. 그 다름에는 음양 대대문화문법의 원칙이 작용하고 있다.

포(袍)는 상하가 하나로 된 겉옷으로 조선시대 양반이 외출할 때 입는 옷이다. 이 중에서 심의(深衣)는 유학자 간에 유가의 법복으로 숭상되고 애호된 포이다. 심의의 형태는 둥근소매와 모진깃을 가지고 있으며 의상(衣裳)을 나누어 마름하여 봉합하였다. 감은 백포로 만들며 의 4폭, 상 12폭을 허리에 연접해 만든다. 상의하상을 나누어 옷을 만드는 관념은 음양의 원칙을 따른 우리 전래의 문법이다. 이는 상의하상의 구별이 없는 심의에서도 그대로 남아 있다. 아래옷 12폭은 다시 6포씩 나누어 마름하는 게 기본이다. 심의에도 음양대대의 관념이 반영되어 하나의 완성된 포가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 전통 주거 공간에서도 음과 양의 구분과 조화가 관통하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의 구별이 분명한 남녀유별, 칸수의 차이에 따른 장유유서(長幼有序), 축대에도 층을 나눈 상하계층의 구별, 살림살이도 안과 바깥을 구분하여 공간을 나누었다.

우리네 상류가옥 건물 배치는 사랑채를 중심으로 여성 공간인 안채와 남성 공간인 사랑채가 분명히 나누어진다. 보통 남향인 집에서 사랑채는 동남쪽에, 사당채는 동북쪽에, 그리고 안채는 서북쪽에 배치되는 것이 원칙이다. 동과 서를 좌우의 개념으로 대치시키면서 동은 오른쪽이요 서는 왼쪽이 된다. 오른쪽은 남성, 왼쪽은 여성의 자리이다. 그렇다고 부부가 별거하는 것은 아니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사랑채와 안채가 통하는 은밀한 통로가 있다.

집은 가족이 모여 대를 이어가는 공간이다. 안과 밖을 구별하여 살림을 꾸려나가면서도 동시에 사랑채는 안채에 비해서는 위요, 사당은 집의 제일 높은 곳이다. 상호관계 속에서 집안살림이 이루어진다. 집의 급수성, 연극·의례성은 상류가옥에서 안채나 사랑채를 지나치게 높이 세웠던 것에서도 나타난다.

이는 양반과 천민 사이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고 양반 사이에서도 가문이나 출신, 벼슬의 높낮이 또는 나이에 따라 엄격히 반영되었다. 문턱은 신분상의 경계선 구실을 한다. 급수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축대의 높이를 과도하게 2m가 넘게 한다든지, 문턱도 몇을 두어 사람을 대할 때마다 급수에 따라 체통과 위신을 세웠다. 유교의 급수적 인간관이 건물 배치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 음식의 전형은 뭐니뭐니 해도 상차림이다. 밥과 반찬을 기본 격식으로 한 3첩반상·5첩반상·7첩반상·9첩반상의 양식에는 조선시대 유교의 인간관이 완성한 상대적 조합성이 잘 반영되어 있다. 우리 음식은 밥이 주격음식(主格飮食)이요, 반찬이 부위격음식(副位格飮食)이다.

밥이 양이면, 반찬은 음이다. 밥은 밥만으로 제모습을 갖추지 못하며, 반찬은 반찬만으로 제격을 유지하지 못한다. 상호간에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제각기 본래의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밥과 반찬은 이와 같이 서로 상대적이면서 동시에 대응 관계를 이룬다. 상차림은 밥과 반찬의 조화에서 성립된다. 우리 밥상의 대대적 문화문법이 상차림에서 구현되고 있다.

3첩반상을 예로 살펴보자. 밥·탕·김치·나물·생채, 그리고 구이 또는 조림과 간장종지가 3첩반상을 구성한다. 가장 간단한 상차림이지만 곡물음식, 생채와 숙채음식, 발효음식, 육류나 어패류가 고루 어우러진다. 상을 차릴 때도 밥을 왼쪽에, 탕을 오른쪽에 대치시키고, 간장종지를 가운데로 하여 반찬을 두 줄로 놓는다. 양이 적은 나물·생채 따위를 가운데 줄에, 김치를 바깥 줄에 대비하여 놓는다. 김치도 여름이면 열무김치와 깍두기를 하나씩 놓는다. 물김치와 보통 김치를 상대적으로 놓는 것은 맛을 돋우기 위해서이다.

완성된 상차림은 색깔의 조화를 이룬다. 흰색에서 빨간색까지 제각기의 색이 조화롭다. 밥-탕, 밥-김치, 밥-나물, 구이-간장 식으로 음양의 대대가 입 속에서 이루어진다. 영양에서도 고루 합한 것이 몸에 좋다. 첩수를 나눔에도 밥·탕·김치는 기본이다. 첩수가 늘어나면서 나물·구이·회·편육·장아찌 등이 늘어난다. 첩수에 들어가지 않는 음식은 기본 음식이요, 첩수에 들어가는 음식은 밥상을 풍성하게 하는 구실을 한다.

첩수를 나누는 것에도 음양의 구분과 조화가 있다. 반상기나 수저에도 남녀의 구별이 있다. 남자용 밥그릇은 몸이 직선형이고, 여자용은 꼭지가 있는 둥근 뚜껑이 달리고 둥근 모양의 바리이다. 이렇듯 우리는 밥상에서도 유교의 대대적 인간관과 그 문화를 읽을 수 있다. 문화는 어떤 물질적인 현상이 아니다. 사람들이 마음 속에 지니고 있는 사물의 형식들이며, 그 형식을 지각하고 관련짓고 해석하는 데 사용되는 모델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문법을 밝힘으로써 그들의 행위를 설명하려는 것이며, 동시에 대상들 사이에 내재한 관계의 체계를 발견하려는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의 의식주 문화 연구 역시 이러한 문화의 문법에 주목해야 한다.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의 기본 사고체계인 음양의 대대적(對待的) 문화문법은 우리 의식주문화의 내면체계에도 존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질 그 자체에만 주목한 많은 연구자들이 문화를 물질적인 현상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상의하의의 대대, 안채와 사랑채의 대대, 밥과 반찬의 대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그 본질을 규명할 의무를 느낀다. 우리는 의식주와 관련된 심리 및 정신적 관념, 의례 따위와 같은 심리정신복합체와 사회조직, 물질문화라는 문화의 중층적 구조 내지 범주에서 의식주문화를 연구해야 한다.

요즈음은 사정이 다를지도 모른다. 의식주가 서구식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러나 물질 그 자체가 변했다고 수백년간 이어온 문화의 문법이 몇 십년 사이에 뭉개졌다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현대에도 우리의 생활문화에는 오랜 전통문화의 여러 규칙들이 암암리에, 또는 심층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규칙을 찾는 작업이 우리의 의무이다. 그래서 전통문화에서 우리의 문화문법을 찾아내고, 지금의 우리 생활 속에서 이 문법의 변이를 찾고 나아가 우리의 문법을 정리해서 표현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의식주 문화를 물질의 축에만 버려두지 않고, 관념의 세계로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이다.

<강신표>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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