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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11-30 (일)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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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490      
[현대] 북한-사회 (한메)
북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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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구>

총인구는 2190만(1990)으로 추산된다. 출생률은 1000명당 28.9명, 사망률은 1000명당 5.4명, 유아사망률은 1000명당 24.0명이며, 평균수명은 남자 66.2세, 여자 72.7세이고, 인구증가율은 2.5%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제활동인구는 949만(1989)이며, 그 가운데 31%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 밖의 직업별 인구구성은 국영기업소 노동자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며, 공무원과 협동기업소 노동자는 1987년 기준으로 16.8%와 0.9%로 나타났다. 또 지역별 인구분포에서는 평안남도 인구가 가장 많으나, 인구밀도는 평양특별시가 가장 높으며, 최저 인구는 개성직할시, 최저인구밀도는 양강도로 기록되어 있다.

<사회체제의 특징>

⑴ 획일적 사회

1948년 공산정권 수립 이후부터 북한은 전통사회의 <낡은 사상과 관습>들을 청산하고, 마르크스 레닌주의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도입하여 온 사회를 밑바닥으로부터 혁명화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서 주민의식의 개혁·개조작업을 강력히 추진하는 등 사회구조의 변혁을 위해 노력해 왔다.

특히 1970년대에 접어들어 강조되기 시작한 <유일사상체계의 확립>과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의 추진 결과는 전체 사회가 하나의 가치체계(주체사상)에 의해 지배되고 통제되는 획일적 이념사회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북한 사회에서 강요된 이러한 이념적 획일성은 오늘날 가치의식의 단순화, 강한 통합성과 함께 사회적 형태면에서의 획일화를 낳고 있다.

⑵ 폐쇄사회

북한은 주민의 사상체계를 주체사상이라는 유일사상에 의해 획일화하고, 이에 배치되거나 위해를 끼칠 염려가 있는 모든 사상과 외래 사조의 유입을 적극 차단하는 사회화정책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사회구조 자체가 폐쇄된 경직사회로 변모되었고, 이와 같은 체제적 특성은 공산정권 수립 이후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기본적으로 변화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주민들의 물질적·문화적 욕구가 분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대내외적 폐쇄체제의 고수가 언제까지 가능할 것인가의 여부가 체제존립의 큰 위협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⑶ 집단주의 조직사회

북한 사회를 특징짓는 또하나의 요소는 <집단주의 원칙>에 입각한 조직적 통제사회라는 점이다. 사회주의 헌법 제63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공민의 권리와 의무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 원칙에 기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82조는 <집단주의는 사회주의 사회생활의 기초이다. 공민은 조직과 집단을 귀중히 여기며 사회와 인민을 위하여 몸바쳐 일하는 기풍을 높이 발휘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북한사회에서 이러한 집단주의 정신과 원칙은 치밀하게 계획된 정치교화작업(政治矯化作業)에 의해 의식화되고, 어릴 때부터 시작되는 각종 소년단 및 조선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조선직업총동맹 등의 조직과 단체생활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렇게 하여 형성된 오늘의 북한사회는 첫째, 개인의 이익보다 집단과 사회의 이익이 우선한다. 둘째, 혁명을 위한 유일사상체계(주체사상체계)가 모든 사회적 가치를 지배한다. 셋째, 모든 사회 성원에게 철저한 공산주의 교양사업(정치사상교육)이 체계적으로 실시된다. 넷째, 수령과 당의 결정은 절대적이며, 모든 사회 조직과 인민은 이에 무조건 복종해야 된다는 등 통제사회로서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사회정책의 기본방향>

북한이 성취하고자 하는 사회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회주의사회의 건설과 공산화 통일, 김일성 유일체제의 공고화로 집약된다. 이러한 목표의 달성을 위해 몇가지 사회정책의 기본방향을 추구하고 있다.

첫째, 전해 내려오는 생활양식과 관습을 공산주의식으로 개조하여 이른바 <사회주의적 생활양식>을 창조해 나가는 것이다. 이에 관하여 사회주의 헌법 제42조 <국가는 모든 분야에서 낡은 사회의 생활양식을 없애고 새로운 사회주의적 생활양식을 전면적으로 확립한다>고 규정, 명문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 주민들의 전통적 생활방식은 점차 공산주의적 생활방식으로 대체되어 왔으며, 그 결과 주민들의 사고방식과 사물에 대한 시각·감각에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둘째, <천리마운동> <속도전> <3대혁명 붉은기 쟁취운동> 등 이른바 사회주의 경쟁운동을 통해 강도 높은 노력동원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셋째, 강력한 계급정책의 추진이다.

북한은 마르크스 레닌주의 계급투쟁관을 그대로 도입하여 정권 초기 단계에서부터 일련의 계급정책을 통해 전통적 계층구조의 변혁을 도모해 왔다. 이에 관하여 김일성은 일찍이 <사회주의·공산주의를 건설하는 과정이란 노동자·인텔리 등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다 혁명화하는 과정이며, 전 사회를 노동계급의 모양대로 개조하여 온갖 계급적 차이를 없애는 과정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입장에서 출발된 계급정책은 <노동계급의 이익을 확고히 고수하며 노동계급의 정치적·경제적·사상적 입장을 공고히 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지주·자본가·반혁명세력 등 계급적 적대 세력들에 대한 끝없는 투쟁과 증오심을 고취하는 계급투쟁으로 주민을 몰입시켜 왔다. 뿐만 아니라 모든 주민은 출신성분과 사회성분에 따라 분류된 신분에 의해 갖가지 사회적·경제적 차별을 받게 되는 새로운 계급사회에서 살게 되었다.

<사회적 동원과 통제체제>

북한은 집권 초기부터 모든 주민을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에 투입하기 위한 갖가지 사회적 동원과 통제장치들을 강구하여 시행해 왔다.

⑴ 사회주의 경쟁운동

사회주의 경쟁이란 <서로 돕고 이끌면서 앞서기를 겨루어 참가자들 자체의 사업을 앙양시키는 일을 통하여 전반적인 사회주의 건설을 추동하는 경쟁운동>을 말하는데, 근로자에게 물질적 동기부여를 하는 것으로 노동력을 동원할 수 없는 사회체제에서 선택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심리적 노력동원방법의 하나이다.

이러한 사회주의 경쟁운동은 8·15 직후 처음 <애국운동>의 형태로 등장하였는데, 57년부터는 천리마운동을 비롯하여 <6개고지점령운동> <10대과업 완수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이어 74년에는 <속도전>이 등장하였고, 75년 말부터는 <3대혁명 붉은기 쟁취운동> <3대혁명소조운동> 등으로 모습을 바꾸면서 날로 그 강도가 높아져 왔다.

이 밖에 노동 독려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는 <70일 전투> <60일 전투> <100일 전투> 등이 있다. 또 이러한 경쟁운동에서 공로가 많은 모범적 일꾼을 선발하여 <노력영웅> <공훈광부> <공훈어부> 등의 칭호와 공로메달·훈장 등을 수여하고, 갖가지 경제적·사회적 혜택을 줌과 동시에 이들을 하나의 우상으로 내세워 <숨은 영웅따라 배우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⑵ 정치학습과 비판

사회주의노동법 제33조는 <국가는 근로자들의 노동생활 조직에서 8시간일하고 8시간 학습하는 원칙을 철저히 관철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 주민 모두는 소속 직장이나 단체에서 조직하는 각종 정치학습에 의무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 이를 통해 모든 주민은 정치사상적으로 <교양>될 뿐아니라, 직장에서 이루어지는 갖가지 <총화시간>을 통해 개인적 잘못이나 집단에서의 이탈행위 등이 공개적으로 지적, 비판되고 있다.

⑶ 생활통제

북한사회에서 주민생활에 가해지는 통제는 크게 일상생활 통제, 경제적 통제, 조직을 통한 통제 등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 대한 통제수단으로는 1958년부터 73년까지 시행하였던 5호담당제와 74년 초부터 시행한 인민반 분조담당제에 의한 가정생활지도 및 감시, 거주 이전과 여행의 제한, 직업 선택의 제한과 국가에 의한 직장 배치 등의 방법이 동원되어, 주민의 일상적 활동을 규제하고 기본적 인권을 제한하는 강력한 장치로 작용하고 있다.

경제적 통제는 식량과 주요 부식에 대한 배급제(북한에서는 이것을 공급이라고 한다)와 의복의 배급, 주택의 배정 등 의·식·주에 대한 인간의 기본적 생활조건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수행되고 있다. 조직을 통한 통제는 모든 주민을 여러 가지 조직과 단체에 소속시켜 조직생활을 하게 함으로써, 소속 집단의 목적과 조직에 의해 개인의 사회의식과 행동을 <집단주의 원칙>에 따라 통제하는 것을 말한다.

북한에서는 특히 조직생활을 <사상 관련의 용광로이며, 혁명적 교양의 학교>로 보기 때문에 각종 사회단체나 대중조직의 정치교화 방법으로서만이 아니라 대중 동원과 통제의 매개수단으로도 중요시하고 있다. 북한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은 만 6세 때부터 정년퇴직 때까지 적어도 1개 이상의 단체나 조직에 가입되어, 이들 단체가 주관하는 조직생활 속에서 통제를 받아야 한다.

실제로 만 6∼13세의 어린이는 조선소년단에, 14∼27세(대학 재학생의 경우 30세)의 청소년은 조선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에, 18∼55세의 여성 가운데 직장에 나가지 않는 부녀자들은 조선민주여성동맹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며, 모든 성인은 직종별로 조직되어 있는 조선직업총동맹·농업근로자동맹 등에 편입되게 되어 있다.

⑷ 정보의 통제

북한에서는 주민에게 전달되는 각종 정보의 전달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거나, 국가가 대중매체들을 독점적으로 장악하여 혁명에 위해한 <잡사상(雜思想)>이나 외부 소식이 주민들에게 전파되는 것을 최소한으로 억제하고 있다. TV채널이나 라디오 다이얼은 고정되어 있고, 모든 신문·잡지 등과 전파매체들은 관급(官給) 뉴스 외에는 전달하지 못하도록 사전 통제되고 있다.

주민의 지역간 왕래와 국제여행도 당국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며, 외부 방문객과의 접촉도 규제되고 있다. 1988년부터 개방되기 시작한 외국 관광객들의 관광도 사전 허가된 지역 이외의 출입은 강력히 통제되고 있다.

<가족제도>

북한은 공산정권 수립 이후 조상 전래의 전통적 가족제도를 낡은 사상과 생활양식을 전승시키는 온상으로 규정하고, 새로운 사회주의 사회 건설을 위해서는 전통사회의 낡은 사상과 관습을 버리고 가정을 먼저 혁명화해야 한다는 시각에서 전래의 가족제도를 타파한 뒤 이른바 <붉은 가정>을 세워나가기 위한 정책적인 노력을 계속하여 왔다.

북한은 전래의 가족제도를 사회주의화하는 제도적 조치의 첫단계로서, 호적제도를 혈연과 문벌을 상징하는 봉건적 제도라 하여 없애고 1946년부터 신분등록제도인 공민증제도를 실시하였다. 이에 따라 18세 이상의 개개 가족 성원은 가족 단위로부터 독립된 존재로서의 법적 지위를 부여받았으며, 친족의 범위도 6촌까지로만 한정되었다.

특히 소유의 사회화정책 추진에 따른 재산상속제 소멸 등은 전통적 가족제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1946년 실시된 토지개혁을 비롯하여 농업의 협동화, 중요산업의 국유화 등 사유재산의 국유화 조치는 가족제도의 물질적 기반을 소멸시켰고, 친족집단의 성원들을 각 지역으로 분산, 이주하게 함으로써 전통적인 친족관계의 와해를 가져왔다.

이 밖에 1976년부터 제정하여 시행한 <어린이 교육보양법>을 계기로 모든 어린이가 유치원이나 탁아소에 수용되어, 국가의 책임 아래 교육 보양됨에 따라 부모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던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족관계는 파괴되었다.

한편 1960년대까지만 해도 노동력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 인구증대에 힘써 출산장려사업을 벌이고, 다산모(多産母)에게 영웅칭호를 수여하고 포상까지 한 적이 있었으나, 1970년대 초부터는 산아제한을 권장하여 가족 단위의 숫자도 평균 4∼5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북한사회에서는 <여성해방운동>에 의해 여성의 사회적 노동 참여가 상대적으로 활발해졌으나, 일상적인 생활면에서 남성 우위의 관습은 그대로 남아 있다. 1980년대 이후부터는 부부와 자녀중심의 핵가족이 늘어나고, 가족중심의 가치기준이 되살아 나면서 부부간의 애정문제가 가정의 중요한 조건으로 대두하였다. 특히 90년 10월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에서 가족법이 채택되는 등 사회주의 가족개념이 점차 퇴색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관혼상제>

⑴ 결혼

북한은 1946년 공포한 남녀평등법에 혼인적령을 남자 18세, 여자 17세로 규정하였으나 70년대 말까지의 실제 결혼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나 가능하였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혼기에 대한 여러 가지 제한이 완화됨으로써 여자의 경우 23∼24세, 남자의 경우 27∼28세가 되면 결혼하는 것이 보통이다.

결혼상대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배우자의 성분이다. 당 고위간부가 아닌 일반 노동자 계층에서는 당원·비당원 여부가 크게 문제시되지 않으나, 6·25 때 치안대원·종교인·지주·월남자의 가족 등은 일반적으로 기피된다. 당원의 인기는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며, 가장 인기 있는 후보로는 대부분 당 고위직·전문직·군인이 선호되어 왔지만, 최근에는 비행사·기관사·열차승무원·운전사·요리사 및 도시총각(특히 평양시민) 등도 환영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서도 무역부문 종사자나 상점판매원 등 일상용품을 직접 취급하는 분야 종사원의 인기가 상대적으로 높다.

남녀 양쪽이 결혼에 합의하면 택일을 하게 되는데, 종래와 같이 길일을 가리는 풍습은 거의 없어지고, 공휴일이나 일요일을 택해 혼례를 치른다. 일정한 예식장소는 없고 신랑이나 신부집에서 올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때로는 식당·회의실·유치원 등을 빌려 식을 올리기도 한다. 혼례 절차는 많이 간소화되었으나 상견례, 약혼식과 예물 교환, 결혼식과 신랑달기 같은 행사는 여전히 치러지고 있다.

예식복장은 신랑의 경우 테트론양복 차림에 왼쪽 가슴에는 김일성 흉상이 새겨진 휘장을, 오른쪽에는 꽃을 단다. 신부는 대부분 나일론으로 된 연분홍빛 치마저고리 차림이며, 최근에는 치마저고리 복장에 흰 면사포를 쓰기도 한다. 신혼여행지로는 금강산·묘향산·송도원 등이 꼽히나, 결혼휴가가 따로 없고 근로자에게 주어지는 연 14일의 휴가기간 중에서 조절해야 하는 등의 이유로 신혼여행을 가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아주 드물다.

혼수와 예물은 가정 형편과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살림에 필요한 집기는 남녀가 같이 준비하며 소속직장에서 약간의 혼수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가마솥·식기류·찬장 등 주방용품과 이불 등은 여자가 준비한다. 신랑집에서는 신부집에 함을 보내는데, 함에는 신부가 입을 옷 1∼2벌과 화장품 정도를 넣는다. 신부는 신랑에게 양복 1벌과 만년필 정도를 예물로 준다.

한편 이혼에 관한 절차는 정권수립 초에 합의 이혼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1956년 3월 8일 합의 이혼제를 폐지하고, 재판에 의해서만 이혼을 허용하는 내각결정을 채택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남자가 이혼을 원할 경우에는 이루어지기가 어렵고, 여자가 원할 경우에는 비교적 쉽게 이루어진다.

이혼할 때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으나, 현금이 없을 경우 가정에서 쓰던 가구를 비롯한 일체의 물건을 여자가 가지도록 한다. 자녀문제는 이혼 때의 합의에 따라 부인이 자녀를 양육할 경우 고등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남편이 양육비를 지불하는데, 앙육비는 월급에서 자동공제된다.

대개의 경우 여성의 이혼청구율은 낮으며, 이혼해도 남자보다 불리한 입장이다. 당국에서도 이혼사유의 제한, 이혼신청서의 수입인지 고가정책(남녀 각각 50원씩) 등으로 이혼에 대한 정책적 규제를 가하고 있다.

⑵ 회갑

휴전 후 1950년대까지는 경제적 여유가 없어 회갑·생일·돌잔치 등을 금지했으나 60년대 이후 묵인하는 경향이다. 간혹 회갑잔치를 할 때에는 초청받은 사람들은 식량을 선물하거나 2∼3원 정도의 부조금(扶助金)을 내며, 근무하고 있는 직장에서도 부조를 한다. 회갑상은 별도로 차리지 않고 접대용으로 준비한 음식을 차려 놓고, 직계 친척들이 서열순으로 헌주한 뒤 절을 한다. 접대용 음식으로는 강냉이국수·명태볶음·고사리무침·무생채·당근무침·떡·막걸리 등이 준비된다.

⑶ 장례

장례 절차는 간소화되어 보통 3일장이나 형편에 따라 1∼2일장도 행해지고 있다. 장례식과 매장은 도시의 경우 녹화사업소가 대부분 맡아서 처리한다. 상복은 따로 만들어 입지 않고 팔에 상장(喪章)이나 검은 천을 두르는 것으로 대신하며, 운구는 전래의 상여 대신 트럭·달구지 등을 이용한다.

대도시에서의 장지는 주로 공동묘지이나 지방에서는 편리한 장소에 임의로 매장하며, 1년 탈상이 통례이나 3년 탈상을 하기도 한다. 최근 묘지가 늘어남에 따라 화장을 권장하였으나, 주민들이 기피해 화장을 하지 않는다. 직계 존속의 사망시 상주에게는 3일 동안 공식 휴가가 주어지고, 장례보조금 10원과 쌀 1말이 배급된다.

⑷ 제례

전통적인 제례를 미신으로 간주할 뿐만 아니라 조상숭배를 복고주의적 병폐와 봉건적 잔재라고 비판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제사는 공식적으로 없어졌다. 그러나 탈상 때까지는 매년 제사를 지내며, 집안에 노인이 있는 경우 계속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제사에는 유교적 제례기준에 따른 음식을 특별히 차리지는 않고, 대개 밥·떡·지짐이·생선·과일·나물 등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으로 지낸다.

<의·식·주>

북한은 의·식·주에 대한 공급조건과 수단을 직접 관장, 통제함으로써 주민을 정권의 정책과 목적에 따라 쉽게 동원하고, 주민의 사회적 일탈행위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또한 8·15 이후 지금까지 주민의 의·식·주생활의 향상욕구를 사회주의 사회건설과 <남조선혁명>의 달성이라는 정책목표에 종속시켜 최소한의 수준으로 제한함으로써 군수산업 위주의 중공업진흥정책을 추진하여 왔다.

그러나 1980년대에 접어들어 늘어나는 주민의 소비생활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경공업분야의 생산증대와, <8·3인민소비품 생산운동> 등을 통해 다각적인 소비생활 향상책을 추진하는 등 정책적으로 배려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뚜렷한 개선 실적은 보이지 않으며, 아직도 식생활 문제가 최우선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⑴ 의생활

북한은 80년대에 들어와 의생활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85년 남북한 이산가족 교환 방문을 계기로 김정일로부터 복장에 대한 언급이 있은 뒤, 의상의 다양화와 컬러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 의류전시회·기성복전시회·옷품평회 등이 개최되고, 일본 등지로부터 원단을 수입하여 가공·수출함으로써 의복의 형태·색상·무늬 등이 다양화하고 있다.

여성 의상의 경우 어두운 색보다 밝고 화려한 색이 많이 쓰이며, 약간의 신체적 노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남성복에도 넥타이·양복차림에 이어 점퍼차림이 나타나는 등 다양화, 세련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의류배급(공급)은 신분에 따라 차등 실시되고 있는데, 계층에 따라 중앙공급대상과 일반공급대상으로 구분되어 공급량과 품질 및 종류가 달라진다.

중앙공급대상은 급수에 따라 2∼4년에 1벌씩의 기성복이나 복지가 염가(반값)로 공급된다. 질에 있어서는 특권층에 배당되는 최고급 모직물에서부터 하급직 간부로 내려가면서 반모직·대마직 순으로 차등을 두고 있다. 이 밖에 예술가·기자·교원 등 특수직업인에 대해서는 의류특배제를 실시하고 있고, 당·정무원 산하 간부들에게는 신사복을, 판문점 출입기자들에 대해서는 상급(장관)에 해당하는 의류를 특배하고 있다.

일반공급대상자에 대해서는 1년에 1벌 정도 <노동용 물자>라는 명목으로 광목·포플린·스프 등의 직물이 배급되고 노동자들에게는 작업복이 1년마다 1∼2벌씩 무상으로 지급되며 사무원·농민과 그 부양가족들에게는 인민반을 통해 공급카드를 발급, 각자가 돈을 주고 사도록 하고 있다. 공급대상품목이 아닌 털모자·면장갑·스타킹·모직천·셔츠 등은 자유구매품으로 개인이 구입해야 한다.

⑵ 식생활

북한은 1957년 내각결정 제96호 및 제102호를 발표하면서 식량자유판매제를 폐지하고, 노동자·사무원에 대한 식량공급을 완전배급제로 전환하였다. 식량배급제는 대상자의 직급과 거주지에 따라 차등을 두고 있으며, 배급기준은 연령과 노동력 공여의 정도에 따라 달리 규정하고 있다.

당·정·군의 고급 간부는 1명당 백미 700g, 노동자·사무원·군인 및 각급학교 학생들은 백미·잡곡 혼합으로 600∼700g을 배급하고 있으며, 잡곡과 백미의 혼합비율은 평양이 7:3, 지방이 8:2 또는 9:1 정도로 잡곡의 비율이 높다. 공급되는 식량의 종류는 백미·감자·옥쌀(강냉이 가루를 기본 원료로 해서 밀가루 등 여러 가지 낱알의 가루를 섞어 쌀모양으로 가공한 것)·밀가루 등이며, 식량배급 절차는 매월 15일마다 각 직장에서 발급하는 배급카드를 가지고 이·동 배급소에서 <전쟁비축미>로 2일분을 뺀 13일분의 식량을 받게 된다.

그러나 실제 배급되는 양은 13일분에서 다시 절약미 명목으로 10%가 공제된다. 각 직장에서 작성된 배급표가 각 가정에 배분되면 가정에서는 식량공급 카드와 함께 배급표와 소정의 대금을 지정된 배급소에 제출하고, 식량공급 카드에 배급량을 기재한 뒤 식량을 지급받게 된다.

농민들은 배급제가 아니라 협동농장의 연말 결산분배시에 도시 노동자의 식량배급에 준하는 1년분의 식량을 현물로 할당받게 된다. 한편 <양표>라고도 하는 양권(糧券)이 있는데, 이것은 일정량의 식량을 대신하는 증표로서 유가증권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양권은 사용목적에 따라 사전에 발급을 신청하여야 하며, 식당을 이용할 때에는 양권과 식대를 함께 지불하여야 한다.

양권에는 출장용 양권과 가정용 양권의 2종류가 있는데, 1㎏까지 교환할 수 있는 양이 지정되어 있다. 출장용 양권은 여행중 식당이나 여관에 투숙할 때 쓰이며, 열차 내에서 곽밥(도시락)을 사먹으려면 양권과 철도밥표를 같이 제출하여야 한다. 가정용 양권은 식량배급소 및 식료품 상점에서 국수·밀가루·식빵 등을 구입할 때 쓰며, 평양 등 대도시에는 꼬부랑국수(라면)와도 교환할 수 있다.

양권을 발급받으면 다음 쌀 배급에서 그만큼 공제하고 잔여량만을 배급받게 된다. 간장·된장·고추장·식용유 등의 부식은 공급카드가 있어야 구입할 수 있으나, 기타 부식의 주종을 이루는 김치·콩나물·두부·야채 등은 식료품 상점을 통해 임의로 구입할 수 있다. 김장철에는 김장용 무·배추 등을 한 가구당 평균 70∼80㎏씩 인민반을 통해 공급받는다.

북한은 여성의 노동력 동원을 지원하기 위하여 주식을 비롯한 부식까지 아파트 및 공장지역 단위로 집단조리하여 공급하는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밥공장이다. 밥공장은 평양·개성·청진·남포·함흥 등 대도시에 각각 3∼4개씩 대규모 기업소 형태로 설치되어 있다. 여기서는 주식 이외에도 반제품으로 된 부식과 국거리를 공급하며, 조리된 음식물의 이용자로는 대개 맞벌이 부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곳의 음식은 질이 낮고 양이 적어 기피하는 경향이다. 한편 명절특배제라는 것이 있는데, 김일성생일·김정일생일·당창건기념일·노동절 등 국경일과 설날 등의 명절에 세대당 돼지고기 1∼2㎏, 생선류 2∼3㎏을 기본으로 하여 설탕·술·담배 등을 유상으로 특배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배급 대상과 시기, 해당 물품의 수급 형편에 따라 공급되는 품목과 양은 달라진다.

⑶ 주생활

북한의 모든 주택은 국가소유로 되어 있기 때문에, 주택에 대한 개인 소유는 물론 개인에 의한 주택의 건축도 일체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규격화되어 있는 각 등급의 독립 가옥이나 아파트 등은 신분등급에 따라 국가로부터 임대형식으로 배정받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주택배정제도 때문에 주민의 거주지는 특정지역에 제한될 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주거 이전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급되는 주택형은 대개 정무원의 부부장급(차관급) 이상 고급간부 등이 거주하는 특호로부터 말단 근로자와 협동농장원에게 배정되는 1호주택에 이르기까지 5단계로 구분된다. 70년대 이후 평양·남포·원산·함흥 등 대도시 중심으로 현대식 고층 아파트를 신축하고, 농촌에도 문화주택을 2층(3세대용)·3층(5세대용)으로 지어 다양화하고 있으며, 외형도 현대식 문화주택 모양을 갖추게 하였다.

최근 도시의 경우 8∼15층 고층아파트가 늘어나고 있는데, 특히 평양에서는 청년거리·광복거리 등에 40층 정도의 중앙난방식 고층아파트를 건축하고 있으며, 농촌지역에서는 2∼3층에서 5∼7층에 이르는 연립주택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주택들은 방 2∼4개 외에 창고·세면장·목욕탕·화장실 등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주택 규모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총가계지출비 가운데 부부장급 주택(특호)은 6%, 노동자·사무원주택(4호)은 3% 정도가 주택 및 광열비로 지출된다. 주택보급률은 일반 노동자의 경우 57%, 기업소 간부급의 경우 68%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평양 등 대도시의 경우 결혼하여도 주택을 배정받지 못해 부부가 떨어져 사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주택 보급사정이 좋지 못하다.

이렇듯 주택난이 심화되자 북한은 개인이 집을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시멘트와 벽돌은 당국에서 실비로 지원하면서 개인이 기타 건축자재를 부담하여 건축하도록 하고 있다. 이 경우 집은 원칙적으로 개인재산으로 볼 수 있겠으나 매매가 허용되지 않으므로 사유재산으로 볼 수 없다.

⑷ 생활용품 구매

북한에서 생활필수품은 배정품과 자유판매품으로 구분하여 구매카드를 가지고 지정된 상점에서만 구매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주요 생필품의 경우 대부분 자유로운 구입이 불가능하며, 구매카드가 있다 하더라도 소속된 인민반 소재 지역을 벗어나서 다른 지역에서는 구입할 수 없다.

주민들의 주요 구입품목을 보면 첫째가 <쌀표>에 의한 식량구입이며, 그 밖에 주요 부식인 된장·간장·기름 등이 있다. 학생이 있는 경우는 책이나 학용품 등으로도 상당한 액수가 지출된다. 생활용품 공급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각급 도매소는 생산 기업소로부터 상품을 공급받아 소매소에 공급한다.

도매소는 철저한 주문제 방식으로 소매소가 필요로 하는 물품을 공급하고 있어 주문된 상품의 보관을 위해 여러 개의 창고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소매소와 주민과의 수급관계를 파악하고 필요한 물량을 산출하여 생산기관이나 기업소에 각종 자료를 제공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도매가격은 제품의 평균 원가에다 기업소의 관리운영에 필요한 일정금액을 이윤으로 추가하여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실제 주민이 물품을 구입할 때 지불해야 하는 판매가격은 상업부과금(필요비용과 상업기업소 이익금)을 추가한 소매가격이 된다. 이렇게 <국정소매가격>이 결정되어 각 지역 이·동 단위의 소매점에 하달되면, 소매상점은 일반 주민들의 구매카드에 기록되어 있는 수량을 확인하고 이 가격에 따라 판매한다.

소매상은 평양의 백화점, 지방 도시의 종합상점, 직매점, 각 이·동 상점 등의 형태로 나눌 수 있으며, 이러한 소매상점들은 상품에 따라 이동판매·배달판매·야간판매·주문판매 등의 방법을 통하여 생활필수품을 일반 주민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텔레비전·냉장고·시계 등 일부 특수상품은 구매카드에 따라 상점에서 판매하지 않고, 직장에서 할당을 받은 사람만이 구입할 수 있다. 구매카드 없이 마음대로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은 휴지·옷핀·손톱깎이 등 극히 값이 싸고 소형인 제품에 한정되어 있으며, 실〔絲〕은 반드시 구매카드로 구입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상품이 주민이 원하는 시기에 공급되지 않고 있어서 긴급한 생활용품은 <장마당>에 가서 비싼 값(암거래 가격)으로 구입하고 있다.

<직장생활>

사회주의헌법 제70조에는 <노동력 있는 모든 공민은 희망과 재능에 따라 직업을 선택하며, 안정된 일자리와 노동조건을 보장받는다. 공민은 능력에 따라 일하며 노동의 양과 질에 따라 분배를 받는다>라고 하여 직업선택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으나, 실제의 직업선택에서는 개인의 의사나 자질 여부가 크게 반영되지 않고 있다.

고등중학교나 대학을 졸업하는 경우, 시·군 인민위원회 노동과에서 배부하는 이력서·자서전·신원진술서·취직희망서·신원보증서 등의 서류를 작성한 다음 학교에 제출하면, 이에 대한 평정서를 학교장이 작성하여 학교 정치담당 부교장에게 넘기고, 이것을 정치부교장이 졸업 약 3개월 전에 시·군 인민위원회 노동과에 제출한다.

각 노동과는 이 문건을 심사하여 직장을 배치하게 된다. 군 제대자의 경우 출신 지역의 도·시·군 행정위원회 노동과에서 제대군인들의 출신성분과 군대 근무기록들을 파악한 뒤 당 지도원, 사무원, 산업체 필수요원, 간부 양성요원 등 필요한 인원을 선발하여 우선 배치하며, 나머지는 대부분 집단적으로 인원이 부족한 직장에 배치한다.

도시에서의 직장생활은 보통 오전 8시에 출근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정오까지 오전 일과가 끝나는데, 50분 노동에 10분 휴식이 원칙으로 되어 있다. 점심시간은 1시간 30분 내지 2시간인데, 도시락을 먹은 뒤 남는 시간은 낮잠시간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낮잠을 위한 별도의 장소가 있는 것은 아니며 주로 회의실의 긴의자, 책상, 숙직실 등을 이용한다.

오후 일과도 오전과 같이 50분 노동에 10분 휴식으로 되어 있고, 오후 6시에 기본 일과가 끝난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작업반별 또는 직장별로 약 1시간 동안 작업총화(그날의 작업성과를 평가, 반성하고 다짐하는 시간)가 있고, 그것이 끝나면 각종 회의나 학습이 진행된 뒤 퇴근하게 되는데 사무원은 오후 7시, 노동자는 오후 8시 무렵이면 퇴근이 가능하다.

지각·조퇴·결근·병가 등은 엄중히 통제되는데, 이러한 일이 발생했을 때에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상사로부터 비판을 받게 되며, 지각 3일이 겹치면 하루 결근으로 쳐 식량배급량 중에서 1일분이 공제된다. 조퇴의 경우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으나, 부득이한 경우 자기 책임량을 완수하고 나간다는 조건 아래 허락된다.

병가는 진료소장의 진단서가 첨부되는 경우에만 허용된다. 하루 일과가 끝난 뒤에는 누구나 하루 1∼2시간씨 학습회에 참가하여야 한다. 대부분의 공장과 기업소, 사무기관에서 진행되는 학습회는 김일성주의 연구반 학습회(중앙부처 국장급 이상), 당 역사연구반 학습회(중앙부처 계장급 이상), 당 정책 학습회, 회상기(回想記) 학습회, 김일성 교시 및 약전(略傳) 학습회, 김정일 덕성(德性) 학습회, 신문독보회(新聞讀報會), 시사토론회, 기타 수시로 제기되는 당 지시 학습회 등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 밖에 모든 직장인은 소속 당과 단체의 총회와 위원회, 사상검토회(필요시 소집), 작업반 및 소조회 등 각종 회의와 연극 및 영화감상회, 각종 보고회, 인민반회의 등에 거의 매일같이 참석해야 한다. 농촌에서 농민과 협동농장원의 하루 생활은 소속된 협동농장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기본적인 일과와 그 진행은 별다른 차이가 없다.

농민들은 대부분 새벽에 마을의 종소리나 사이렌에 따라 기상하게 된다. 기상하는 즉시 지정된 장소에 작업반이나 분조별로 집합하여 15∼30분 동안 조회(朝會)를 가진다. 조회가 끝나면 각자 집으로 돌아가 작업도구를 준비하고, 다시 나와 각 분조마다 할당된 작업량에 따라 7시 무렵까지 출근 전 작업을 해야 한다.

새벽작업이 끝나면 집에 돌아가 아침식사를 하고 8시까지 협동농장에 출근해 각 분조별로 작업량을 작업반장으로부터 할당받는다. 이에 따른 오전 작업은 12시까지 계속되는데, 10시 무렵에 15분간의 휴식이 주어진다.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점심식사 및 휴식시간으로 되어 있다.

오후 작업이 모두 끝나는 7시 무렵에는 작업총화가 있고, 그 뒤 당일의 각 개인에 대한 노력공수(일정한 제품을 생산하거나 또는 일정한 작업을 수행하는 데 투입된 노동의 크기를 노동일 단위로 측정하는 척도)가 발표되는 것을 듣고 귀가하게 된다. 협동농장원도 매일 정치학습이나 회의에 참가해야 되는데, 그 내용과 시간은 도시 노동자의 경우와 비슷하다.

농장원에게는 일요일 대신 10일에 1번씩 휴식일을 주게 되어 있으나, 영농 사정을 이유로 잘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임금은 <생활비>라고 하며 경험과 능력에 따라 급수가 매겨지는데 보통 80원에서 150원 정도이다. 식당 접대원 80원, 백화점 점원 90원, 이발사 110원, 의사 120원, 교원 100원, 작가 170원 수준이고 장관은 200원 정도를 받는다.

협동농장원의 경우에는 노동 결과가 연말에 가서 확정적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매년 말에 현물·현금 등으로 분배를 받게 된다. 한편 모든 노동자들은 노동법에 의거하여 연간 14일간 정기휴가와 직종에 따라 7∼21일간의 보충휴가를 받을 수 있다.

이 밖에 각 분야에서 책임량을 초과 수행한 모범 노동자, 기술자, 기타 유공노동자와 결핵 등 장기요양을 요하는 일반환자들에게는 정양과 휴양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휴양기간은 왕복 일수를 제외하고 14일간이며, 정양기간은 14일부터 1개월까지로 되어 있다. 휴가 일자를 정하는 것은 본인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으며, 이미 받은 결혼휴가나 휴양 등의 기간은 휴가일수로 계산 공제된다.

그러나 각종 <노력경쟁운동>이나 김일성 교시 관철 등을 위해 휴가를 반납하고 계속 출근하여 일을 할 경우 임금의 60%를 가산해 준다. 대부분은 본인이 원하는 날짜에 휴가를 받을 수 있다. 법정휴가 이외에는 <사결>이라 하여 사정에 따라 쉴 수 있으나, 노임과 배급량은 쉬는 날만큼 공제된다. 이 밖에 임산부에게는 산전산후에 걸쳐 77일의 휴가가 있다.

<사회복지>

북한은 주민의 복지증진을 모든 활동의 최우선 원칙으로 보고, 이에 큰 역점을 두고 있다고는 하나 국민생활은 빈곤하다. 일반적으로 북한과 같이 사유재산제도가 인정되지 않고 있는 사회주의 체제 아래에서 주민복지의 사회적 보장문제는 결국 국가적 책임으로 귀속될 수밖에 없다.

사회복지에 대해 <국가는 모든 근로자들의 생활을 책임지고 보장하며, 그들의 물질문화생활을 끊임없이 높이는 것을 자기 활동의 최고 원칙으로 삼는다>라고 규정하고(사회주의헌법 23, 사회주의노동법 68), 사회복지가 노동에 대한 보수 이외에 추가적인 국가의 사회적 혜택으로 제공되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북한의 사회복지정책은 정권수립부터 6·25 뒤의 복구에 이르는 초기단계에서는, 새로운 사회주의체제가 그 이전의 일제강점기 때나 한국의 자본주의체제보다 우월하다는 신념을 노동자들에게 심어주기 위한 선전적 차원에서 추진되어 오다가, 1950년대 이후 사회주의 경제건설 시기에는 주민을 경제건설에 동원하기 위한 하나의 통제수단으로서 추진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적 관점에서 추구되어 온 북한의 사회복지시책은 오늘날 11년 무상 의무교육제, 무상 치료제, 연금사회보험, 생활보호, 재해구호, 공적 부조, 기타 사회복지적 시혜 등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각종 사회보장에 필요한 기금의 재원은 각종 기업소 및 사회단체 부담금(소속 노동자 및 사무원 임금 총액의 5∼12%), 노동자 및 사무원 개인 부담(월임금액의 1%), 국가 및 지방행정기관이 부담하는 필요행정비 등으로 충당된다.

한편 북한이 자랑하는 <전반적인 무상치료제>는 60년 2월 27일의 최고인민회의 제2기 제7차 회의에서 처음 선포되었고, 이에 따라 의료경비 일체를 개인이 부담하지 않고 치료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첨단장비 부족으로 의료수준은 낮고, 이른바 동의학(東醫學;한방)의 과학화로 임상환자 치료에 70%나 활용하는 실정이다.

그리고 실제로 모든 주민은 <사회보장비>라는 명목으로 매월 임금에서 1%를 공제당하고 있다. 연금제도(年金制度)는 1978년 4월 18일 사회주의노동법이 채택되면서 실시되었다. 연금의 종류에는 폐질연금(3등급으로 분류, 90%부터 35%까지 지급)과 유가족연금(부양가족에 따라 차등), 정년퇴직자에 대한 양로연금(남자 60세, 여자 55세), 영예군인연금 등이 있다.

보험으로는 산재보험과 실업보험의 2종류가 있다. 산업재해를 입은 사람에게 지급되는 산재보험은 취업할 때의 임금을 기준으로 하여 5등급으로 구분되는데, 최고(1급)는 임금의 75%, 최하(5급)는 50%를 지급한다. 실업보험은 노동의 의사와 능력은 있으나 1개월 이상 직업을 얻지 못하고, 생계가 극빈하여 부양해줄 사람도 없는 경우 지급되며, 표준 임금의 20%를 6개월 한도 내에서 지급한다.

특별대상의 생활보호를 위한 공적 부조는 생활보호·재해구호·원호사업 등으로 나뉘는데, 이 중 가장 중요한 시책으로는 국가공로자에 대한 생활보호, 인민군 군관 및 하전사의 부양가족에 대한 생활보호(보조금 지급, 농업 현장세 감면, 취직 알선, 무상치료, 우선배급, 주택확보, 면세 등), 제대군인 생활보호, 북송 재일교포 및 월북한 한국주민의 생활보호 등이 있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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