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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4-02 (금) 12:28
분 류 사전4
ㆍ조회: 2403      
[원시] 빗살무늬토기 (민족)
빗살무늬토기(-土器)

빗살무늬토기. 서울 강동구 암사동 주거지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의 토기. 경희대학교 박물관 소장. 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진

빗살무늬토기. 신석기시대의 용기. 서울 암사동 출토.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진

빗살무늬토기 출토지 분포도
빗살무늬토기 출토지 분포도

표면무늬
빗살무늬토기의 표면무늬

그릇 표면을 빗살같이 길게 이어진 무늬새기개로 누르거나 그어서 점ㆍ금ㆍ동그라미 등의 기하학무늬를 나타낸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 '즐목문토기(櫛目文土器)'라고도 한다.

또한 겉면에 무늬를 새기고 있기 때문에 '유문토기(有文土器)'라고도 하며, 무늬 모양의 특징을 따서 '어골문토기(魚骨文土器)' 또는 '기하학문토기(幾何學文土器)'라고도 부른다.

토기의 일반적인 형태는 바닥면이 포탄모양으로 뾰족한 첨저형(尖底形)과 편평한 화분모양의 평저형(平底形)의 두 종류가 있다. 첨저형 토기는 바탕흙인 점토를 빚어서 만들 때 운모(雲母)를 섞었으며, 활석이나 석면을 섞은 것도 있다.

토기를 제작하는 방법에는, 반죽한 점토를 일정한 크기의 반지모양의 테로 만들어 쌓아 만드는 법, 길고 납작하게 만든 점토띠를 아래로부터 위로 감아 올려 만드는 법, 점토 덩어리를 그냥 손으로 눌러 빚어 토기모양을 만드는 법 등 3가지 방법이 있다.

토기 겉면에는 1개 또는 여러 개의 이가 달린 무늬새기개로 긋거나 눌러서 무늬를 새겼다. 토지 겉면을 평행으로 3등분해 위로부터 구연부ㆍ기복부ㆍ저부로 나눌 때, 각 부분에 각각 다른 무늬를 장식하는 것이 많다.

구연부를 장식하는 주요무늬로는 평행밀집사단선문(平行密集斜短線文)ㆍ점렬문(點列文)ㆍ사격자문(斜格子文) 등이 있으나 평행밀집사단선문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기복부에는 평행사선을 어긋나게 그은, 마치 물고기뼈모양의 어골문이 가장 많이 새겨져 있다. 저부에는 평행사선문 또는 어골문 등으로 시문된 것이 많다.

그 중에서도 구연부의 평행밀집사단선문과 기복부의 어골문이 결합한 형태가 수적으로 가장 많다. 또 이러한 구연부문과 기복부문의 사이에 파상점선문(波狀點線文)과 같이 곡선으로 된 특징있는 문양이 끼어 있는 것도 있으나 수적으로 많지는 않다.

이와 같이 토기의 각 부분마다 각각 다른 무늬로 장식되는 종류 외에, 한 가지 무늬로 토기 겉면의 전체 또는 부분을 장식하는 종류도 있다. 이 경우에는 앞에서 기복부에 가장 많이 새겼던 어골문으로 겉면 전체 또는 일부를 장식하는 예가 많다.

평저형토기에는 바탕흙에다 돌을 모래알 만하게 잘게 부숴 섞어 만든 것이 많으며, 수적으로는 적으나 조개가루를 섞은 것도 있다. 토기의 색은 갈색이나 흑갈색계통이 대부분이며, 토기 겉면을 반들반들하게 갈아서 광택이 나는 것도 있다.

무늬새기개로 긋거나 눌러서 생긴 선과 점을 배합해 토기 겉면을 장식하고 있는데, 토기 겉면의 상반부에 한해 무늬를 장식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무늬 종류로는 첨저형 토기에서 흔히 보이는 일반적인 무늬 외에 번개무늬와 같이 특징적인 무늬가 새겨져 있는 것도 있다.

우리 나라 빗살무늬토기는 섭씨 600°∼700℃ 정도의 열을 가해 구운 것이다. 토기를 구워낸 가마자리가 확인된 곳은 없지만, 땅을 판 구덩이에서 별다른 특별한 시설 없이 장작불을 피워 구워낸 것으로 생각된다.

토기의 용도는 크기에 따라 각각 달라, 현재의 독과 같은 대형은 저장용으로, 중형은 취사용으로, 소형은 식기나 음식 준비과정에 각각 사용되었다고 생각된다.

우리 나라 빗살무늬토기와 유사한 형태의 토기는 핀란드, 스웨덴 남부, 북부 독일, 서북 러시아의 카렐리아지방에서 오카강ㆍ볼가강 상류지방에 걸친 북유럽 일대, 우랄산맥을 넘어서 오브강ㆍ예니세이강유역 일대, 바이칼호지역, 몽고지방, 연해주 일대에 걸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이들 지역의 토기도 빗같은 무늬새기개의 끝으로 눌러서 새기고, 그어서 생긴 선으로 토기 겉면을 장식하고 있고, 토기의 기형면(器形面)에서도 공통되는 점이 많다. 따라서 우리 나라 빗살무늬토기와 동일계통의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까지 우리 나라에서 발견된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된 유적의 수는 135개에 달한다. 이들은 한반도 전역에 균등하게 분포되어 있지는 않고 주로 해안가ㆍ강가 그리고 도서지방에서 발견된다.

크게는 대동강ㆍ한강을 포함한 서해안지역, 낙동강을 포함한 남해안지역, 두만강을 포함한 동해안지역의 3개 지역군으로 나눌 수 있으며, 각 지역군 사이에는 뚜렷한 지역차가 있다.

서해안 및 남해안지역에서는 뾰족 밑을 기본으로 하는 첨저형 빗살무늬토기가 분포된 반면, 동해안지역에서는 납작 밑을 기본으로 하는 평저형 빗살무늬토기가 분포되어 있다.

첨저형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된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서해안지역에서 평안남도 온천군 궁산리, 황해도 봉산군 지탑리, 서울특별시 암사동, 경기도 광주군 미사리, 경기도 부천군 시도(矢島) 패총 등이 있고, 남해안지역에서 부산직할시 동삼동패총, 경상남도 김해군 수가리 패총 등이 있다.

한편, 평저형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된 유적으로는 동해안지역에서는 함경북도 무산군 서포항(西浦項)패총, 강원도 양양군 오산리 유적 등을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빗살무늬토기는 해안변의 패총 유적에서 많이 발견되는 것이 특징이며, 강변의 경우는 주거지 유적에서 출토된 것이 많다.

빗살무늬토기 중 가장 오랜 방사성탄소연대는 서기전 4000년경이고, 늦은 연대는 서기전 1000년경이다. 이와 같이 3천년 이상 존속했던 빗살무늬토기시대를 전기ㆍ중기ㆍ후기로 구분할 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빗살무늬토기도 변천된 것으로 판단된다.

첨저형 빗살무늬토기의 전기의 토기는 구연부와 기복부에 각각 다른 문양요소로 토기 겉면 전체에 시문된 것이 주류를 점하고 있다.

구연부에는 평행밀집사단선문, 기복부에는 어골문이 배합되어 시문된 것이 기본형을 이루고 있다. 이것은 무늬를 시문하는데 각 부위별 문양요소의 선정에 엄격한 규율이 작용됐던 결과로 생각된다.

중기의 토기는 구연부와 기복부에 각각 다른 문양으로 시문된 것은 전기와 마찬가지이지만, 저부의 문양 시문이 생략된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또한 이제까지 기복부에 새겼던 어골문을 구연부까지 계속해서 장식함으로써 동일한 문양으로 시문하는 종류가 많아지는데, 여기서도 저부의 문양 시문이 생략된 것이 많다. 이것은 전기의 전면 시문 전통이나 부위별 문양선정의 엄격한 규율이 부분적으로 붕괴된 결과에서 기인된 것으로 생각된다.

후기의 토기는 구연부에만 무늬를 새기고 나머지 부분의 시문이 생략된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전기 이후의 전통이나 규율이 쇠퇴해 구연부 일부에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던 결과로 생각된다.

평저형 빗살무늬토기도 그 나름대로의 전통을 가지고 변천되었다. 전기간을 통해 토기의 구연부에만 시문하는 전통이 지속되었으나, 중기 이후에는 기복부에 어골문을 시문한 것이 나타나며, 후기에는 번개무늬와 같은 특징있는 문양도 시문되었다.

우리 나라 빗살무늬토기는 기형이나 무늬 수법으로 보아 시베리아지방의 영향을 받아 발생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것은 북유럽의 핀란드, 북부 독일 일대에서 번영했던 캄케라믹(Kammkeramik, 櫛文土器)이 동으로 전파되어 시베리아를 지나 우리 나라로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견해로, 그 중계지역으로서 바이칼호지역이나 연해주지역이 유력시된다.

전래경로는 먼저 연해주지방에서 한반도 동북해안으로 유입되어 동해안을 따라 남해안을 거쳐 서해안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 나라 빗살무늬토기와 시베리아토기와는 제작방법, 문양의 구성방법 등 세부적인 면에서 차이점이 크며, 방사성탄소연대측정치가 연해주보다 더 오래된 연대를 보이고 있는 점을 들어 한반도 빗살무늬토기의 자생(自生) 가능성을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출토유적의 분포양상이나 반출유물의 성격으로 볼 때, 빗살무늬토기 사용인은 원시농경 실시 이전 단계인 어로ㆍ수렵ㆍ채집경제에 의해 생활을 영위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 나라 신석기시대문화의 주류를 이루는 빗살무늬토기의 성격이나 변천과정은 우리 나라 신석기시대의 문화내용이나 편년설정 규명에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반도에 번영했던 빗살무늬토기도 서기전 1세기 전후에는 농경을 배경으로 전개된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문화의 융성으로 대부분은 무문토기에 흡수, 동화되어 버렸다. 일부 도서지방 같은 곳에서는 그 문화의 전통을 보다 오래 근근히 이어가다가 점차 쇠퇴해버린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韓國幾何文土器의 硏究(金廷鶴, 白山學報 4, 1968), 櫛目文土器(韓炳三, 世界陶磁全集 17, 1979), 韓國櫛文土器の展開(任孝宰, 末盧國-佐賀縣唐津市ㆍ東松浦郡の考古學的 調査硏究-, 1981), 櫛目文土器の分布に就いて(藤田亮策, 靑丘學叢 2, 1930), 朝鮮櫛目文土器の硏究(有光敎一, 京都大學考古學叢書 3, 1962).

<임효재(任孝宰)>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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