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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10-23 (목) 10:04
분 류 사전3
ㆍ조회: 655      
[남북국] 통일신라시대의 사학 (민족)
사학(통일신라시대-통일기의 역사의식과 그 성과)

세부항목

사학
사학(삼국시대-역사적 자각과 역사기술)
사학(통일신라시대-통일기의 역사의식과 그 성과)
사학(고려-자치적인 역사와 민족의 역사)
사학(조선 전기-객관적 역사인식과 주관적 역사체계)
사학(조선 후기-전통의 역사와 각성의 역사)
사학(과도기의 역사학)
사학(근대민족주의 사학)
사학(근대사학의 분화)
사학(광복 직후의 역사학)
사학(식민주의사학의 극복)
사학(분단사학과 통일지향 사학의 모색)
사학(참고문헌)

역사의식은 분열된 경쟁시대 못지 않게 통일기에도 고조되는 것이다. 분열기의 역사의식이 배타적이라면 통일기의 역사의식은 포괄적인 것이 특질이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통일 대업을 성취시킨 신라로서는 정치적으로 혼란하였던 하대(下代) 150여년을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통일 후의 100년 남짓 분명히 관찬의 역사서가 편찬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당대(唐代)의 문물 제도를 충분히 받아들여서 문한기구(文翰機構)뿐만 아니라 역사 편찬을 국가 주관으로 추진시켰던 사관제도(史館制度)까지도 설치하였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전해지는 기록이 없어 단정할 수 없을 뿐이다.

그러나 관찬의 역사서가 불명한 대신 사찬(私撰), 즉 개인의 찬술에 의한 역사서가 나오게 되었다. 그것은 8세기 전기의 김대문(金大問)과 9세기 후기의 최치원(崔致遠)에 의해서 이룩되었다.

김대문은 ≪고승전 高僧傳≫·≪화랑세기 花郎世紀≫·≪계림잡전 鷄林雜傳≫과 ≪한산기 漢山記≫를 찬술하였다.

삼국시대의 전승적·기록적인 역사 편찬에서 귀족들의 역사와 전기, 그리고 사상적인 지주였던 불교와 지도자의 역사에까지 관심을 두었다.

이러한 김대문의 찬술서는 신라사, 그것도 왕경(王京)중심의 진골 귀족에 초점을 두면서도 서술은 비교적 객관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역사 찬술의 저의는 신라의 전통을 계승하고자 하는 입장만이 아니라, 진골 귀족의 입장에서 국왕의 전제성에 반대하는 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김대문의 역사 평가가 부수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기도 한데, 이는 역사가로서의 사평(史評)을 놓치지 않았다는 뜻이다.

따라서, 김대문의 경우, 역사를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보면서 역사 평가도 시도할 줄 알았으며, 역사 인식의 수준도 삼국시대의 역사인식보다 진전된 것이었지만 유교사관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에 비해, 신라 말기에 ≪제왕연대력 帝王年代曆≫을 편찬한 최치원은 김대문과 여러 면에서 대조되는 바가 있다. 즉, 최치원은 중국(唐)문화의 우위성과 중국적인 역사 서술의 차원에서 신라 문화를 부감하고자 했고 중국적인 역사 개념에서 신라사를 보고자 했다.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온 최치원으로서는 쇠퇴해가던 신라의 상황을 중국적인 흥망·성쇠의 역사적인 경험에 비교해가면서 연대기적으로 찬술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하면, 신라의 전시대사를 중국의 연대기에 대비하면서 엮어가되 단순한 연표(年表) 정리에 그친 것이 아니라, 여기에 편년적(編年的)인 서술도 포함하는 체재였을 가능성이 많다.

하여튼 통일신라시대는 개인에 의해서 찬술된 사찬의 편찬물이 오늘날까지 알려진 특징적인 것이고 일반 귀족이나 고승의 전기, 그리고 연대기 등이 대표적이었다.

아울러 이러한 사찬물을 다같이 서술하면서도 진골 출신인 김대문은 왕권의 강화에 따라 쇠퇴되어가던 진골 귀족의 입장에서 전제 왕권에 반발하는 의식적인 서술을 시도함과 동시에, 신라에 침투해오던 중국(당나라)의 사상과 문물에 대응해 신라의 전통성을 강하게 부각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신라 말의 육두품(六頭品)출신 최치원은 진골 만능의 정치 풍토에 반발하는 한편, 중국적인 문화 의식과 역사 개념으로 신라사를 보고자 했다.

한편, 신라통일기의 사학사를 이해하는 데 놓칠 수 없는 것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인용되고 있는 고기류(古記類)와 기타의 전기·잡저(雜著)들이다.

7, 8종류에 이르는 이들 고기류는 신라통일기에 이룩된 어떤 기록을 뜻함이 분명하고, 통일기 신라시대에 편찬되었던 다른 성향의 역사적 산물들이었을 것이다.

<황원구>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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