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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10-23 (목) 10:04
분 류 사전3
ㆍ조회: 770      
[고려] 고려시대의 사학 (민족)
사학(고려-자치적인 역사와 민족의 역사)

세부항목

사학
사학(삼국시대-역사적 자각과 역사기술)
사학(통일신라시대-통일기의 역사의식과 그 성과)
사학(고려-자치적인 역사와 민족의 역사)
사학(조선 전기-객관적 역사인식과 주관적 역사체계)
사학(조선 후기-전통의 역사와 각성의 역사)
사학(과도기의 역사학)
사학(근대민족주의 사학)
사학(근대사학의 분화)
사학(광복 직후의 역사학)
사학(식민주의사학의 극복)
사학(분단사학과 통일지향 사학의 모색)
사학(참고문헌)

후삼국을 다시 통일해 새로운 통일 국가를 이룬 고려는 통일신라를 이어서 재통일했으면서도 대외적으로는 고구려의 계통(繼統)을 내세웠다.

고려가 흥기하기는 옛 백제 지역이었고, 계승은 신라이면서도 계통은 고구려로 잡은 것이다. 이러한 삼국의 연결 의식은 후삼국을 통일한 연결 의식 못지않게 역사의식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여기에서 나온 것이 고려초의 ≪구삼국사 舊三國史≫이다. ≪구삼국사≫는 오늘날 전하지 않아 면모를 확실히 알 수 없으나, 그 중 일부인 동명왕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것을 ≪삼국사기≫와 비교해보면 ≪구삼국사≫는 전통적인 것을 강조하는 책으로서, 고려를 고구려의 계승으로 서술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뒤 고려에서는 11세기에 들어오면서 ≪칠조실록 七朝實錄≫이 편찬되었다. 요나라의 침공을 받았던 어수선한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고려 초부터 7대에 걸친 역대 왕의 실록을 편찬한 것이다.

이후 실록은 계속 편찬되었는데, 11세기초인 현종 때 실록을 처음 편찬했다는 것은 중국적인 역사 편찬이 제도적으로 확립된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중국적인 역사 편찬의 제도화는 유교사학의 대표이기도 하였다. 일종의 자치적(資治的) 혹은 감계적(鑑戒的)인 요소가 강하게 부각되는 것이었다.

실록의 편찬은, 전왕조(前王朝)의 역사를 정사(正史)로 편찬한다는 중국의 전통적인 역사 찬술과도 마찬가지로 전왕(前王)의 행적과 업적을 그대로 기록해 후세에 물려준다는 역사의식의 하나로 자치적인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 편찬의 정신은 춘추필법 (春秋筆法)이라는 명분론에서 의식화되고 이것이 유교적 윤리성에서 제도화된 것이다. 따라서, 고려에서는 인종 때 김부식(金富軾)의 ≪삼국사기≫가 나오게 되었다.

≪삼국사기≫는 실록이 편찬되고 있는 제도적인 상황에서 이해한다면 유교사관에 의한 편찬물임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삼국사기≫는 종래의 여러 역사서에 비해서 중국적인 정사의 기전체(紀傳體)를 그대로 모방한 유교적·중국적인 체재를 갖춘 한국에서의 최초의 역사서이었다.

간혹 ≪삼국사기≫를 문화적 사대주의의 결과라고 혹평하기도 하지만, 사실(史實) 위주로 편찬한다는 중국 역사 편찬의 방법에 충실해 고대의 역사서에 흔히 거론되고 있는 비합리성·비현실성 같은 것이 비교적 도외시되고, 대신 유교적 윤리관을 바탕으로 하면서 합리성·객관성을 중시했다.

그러면서 김부식은 사평(史評)을 붙여 자기 나름의 역사 해석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종래의 삼국의 연결 의식이나 고구려 계승 의식에서 신라 계승으로 고려의 계통을 변질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삼국사기≫는 역사 서술 체재에서 종래에 비해 일단의 진보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관에 매혹되고 중국문화 의식의 차원에서 삼국시대의 상황을 다루었기 때문에 한국 고유의 전통성이 비교적 경시된 결함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삼국사기≫가 중국적인 체재를 갖춘 최초의 역사서로서 한국사학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또 사료적 가치도 높다고 볼 때, ≪삼국사기≫의 편찬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리고 고려시대의 실록 편찬이나 ≪삼국사기≫와 같은 기전체의 정사류(正史類)는 이후에도 그대로 계승되어 관례화되었다.

그 뒤 고려 중기에는 실록이나 ≪삼국사기≫와는 다른 성향의 역사서가 출현했다.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 帝王韻紀≫와 일연(一然)의 ≪삼국유사≫가 그것이다.

전자는 원나라의 강압 아래에 있던 고려의 수난과 복잡다단했던 국제 관계 속에서 민족의 고난과 생활을 중국과 우리나라의 흥망사를 대비하면서 서사시로 읊은 것이다.

한편, 단군(檀君)이라는 민족 공동의 시조를 내세워서 우리 나라가 중국과 다른 문화를 누려온 나라임을 강조하면서도 유교적 사관을 내세워 정치와 사회의 안정을 요망했다.

후자는 지난 날의 역사적 전통을 불교사관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한편, 전통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고증을 통해서 시도하였다. 아울러, 일연은 단군의 고조선으로부터 시작하는 한국 고대사의 체계를 자기 나름으로 체계화했다.

그런데 ≪제왕운기≫와 ≪삼국유사≫에서 다같이 민족의 시조로서 단군을 내세우고 있는 일은 주목할만한 일이었다. 여기에서 한국사학사에서 처음으로 민족의 역사의식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들은 처음부터 단군을 신화로서만 본 것이 아니라 사실(史實)로서의 단군을 민족 시조로 승화시킨 것이다. 비록, 유교사관의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제왕운기≫에서도, 이전의 ≪삼국사기≫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단군의 민족시조화는 확실히 당시의 시대적인 사조의 반영이기도 하다.

무신집권으로 인해 문화의 단절이라는 위기 의식이 강렬해졌고, 바로 이어서 몰아닥친 원나라의 예속화로 고려의 지식층은 전통적인 한국의 문화 계승을 자각했다.

나아가 자기 역사의 독자성을 강조하면서 당시 무신의 물리적 탄압과 이민족의 억압을 받는 현실에 항거하고자 했던 저항과 자주의 정신적 기운이 반영되었다. 이밖에도 고려 후기는 무신란 이후 원나라의 억압에 의한 문화적 위기 의식에서 당시의 기록과 역사의 정리를 꾀하게 되었다.

즉, 고종 때의 ≪해동고승전 海東高僧傳≫, 충렬왕 때의 ≪고금록 古今錄≫·≪천추금경록 千秋金鏡錄≫·≪세대편년절요 世代編年節要≫와 충선왕 때의 ≪본조편년강목 本朝編年綱目≫, 그리고 공민왕 때의 ≪사략 史略≫ 등 고려 왕조사의 정리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들 역사서는 원나라의 지배 아래 많은 제약이 있었지만, 왕조가 망하기 전에 당시의 왕조사를 정리하는 특례를 보여주는 것으로 주목되는 일이다.

이밖에 개인의 문집류도 나왔는데, 단순한 시문집이 아니라 당시의 일들을 기록한 서술들이었다. 이규보(李奎報)의 ≪백운소설 白雲小說≫,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 破閑集≫·최자(崔滋)의 ≪보한집 補閑集≫·이제현(李齊賢)의 ≪역옹패설 饑翁稗說≫ 등이 그것들이다.

이렇게 보면 고려 전기는 관찬서인 실록과 ≪삼국사기≫·≪해동고승전≫ 등이 나왔던 시기이고, 각기 편년체·기전체·전기 등의 체재였으며, 중국 역사관의 소산물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고려 후기는 사찬서(私撰書)인 ≪제왕운기≫·≪삼국유사≫를 비롯한 많은 고려 왕조 관련 역사서와 기록이 나왔던 시기이고 모두가 중국 문화에 손색이 없는 한국 문화의 우월성을 강조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고려 후기의 ≪삼국유사≫와 ≪제왕운기≫ 등은 ≪삼국사기≫의 보충 기록으로서도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

<황원구>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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