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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10-23 (목) 10:24
분 류 사전3
ㆍ조회: 1035      
[근대] 근대민족주의 사학 (민족)
사학(근대민족주의 사학)

세부항목

사학
사학(삼국시대-역사적 자각과 역사기술)
사학(통일신라시대-통일기의 역사의식과 그 성과)
사학(고려-자치적인 역사와 민족의 역사)
사학(조선 전기-객관적 역사인식과 주관적 역사체계)
사학(조선 후기-전통의 역사와 각성의 역사)
사학(과도기의 역사학)
사학(근대민족주의 사학)
사학(근대사학의 분화)
사학(광복 직후의 역사학)
사학(식민주의사학의 극복)
사학(분단사학과 통일지향 사학의 모색)
사학(참고문헌)

20세기에 들어와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됨에 따라 반침략적인 항일 민족운동이 강렬하게 일어났다. 또한, 이때는 일제 관학자들의 식민주의사학이 강조되었으므로 강렬한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근대민족주의사학이 성립하게 되었다.

'근대민족주의 사학'이란 의식면의 민족주의만 강조한 것이 아니고, 그 바탕에 근대역사학이 지니고 있는 근대적 학문의 요소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근대민족주의 사학’이라 부른다.

개항 이후 전개된 민족주의 이념의 유형에는 주자학적 가치관과 세계관에 입각한 척사위정계(斥邪衛正系)와 개항에 따라 해외로부터 새로운 문물을 도입해 근대 사회를 이룩하려는 개화계, 혈통·신분 등 봉건적 모순을 극복하면서 사회 개혁을 내재적으로 실천하려 했던 민중계(民衆系)가 있었다.

근대민족주의 사학은 의식면에서 민족주의의 앙양과 식민주의 사학의 극복이 전제되어 있고 방법론적으로는 근대 역사학의 성격을 갖는 것이어야 했다.

이 밖에도 적어도 다음 몇 가지 요인이 그 배경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앞에서 과도기의 역사학이 일본인들의 한국사 연구에 자극된 바 있다고 지적한 바 있지만, 같은 맥락에서 과도기의 계몽주의 역사학을 거친 근대민족주의 사학은 대외적으로는 당시 노골화되어가고 있던 일제 관학자들의 식민주의사학에 대결하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전통적인 유교사학이 가지는 중세적 봉건성을 내재적(內在的)으로 극복해야만 하였다.

식민주의 사학이 정체성론과 타율성론 및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 등을 통해 그들의 한국 진출과 침략·강점 등을 역사적으로 정당화하려 하였을 때, 근대민족주의 사학은 근대 학문의 이름을 빌려 교묘하게 자신들의 만행을 은폐하려는 일제 관학자들과 대결하면서,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자주 독립의 전통을 강조했다.

근대민족주의 사학이 한국고대사 연구에 치중했던 것은 일제 관학자들에 의해 심하게 훼손된 연구 영역이 한국고대사였기 때문이다.

또 근대민족주의 사학은 ≪삼국사기≫ 이래 조선 말기까지 한국의 사학계를 지배해온 유교사학을 극복해야만 했다. 유교사학은 충효적 가치관(忠孝的價値觀)에 입각한 지배자 중심의 역사 이해로서, 역사인식에는 민중의 역할이 배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민중의 밑으로부터의 개혁 의지가 지배층의 이해와 충돌했을 경우 대부분 난(亂)으로 인식했다.

근대민족주의 사학은 중세사학이 외면했던 민중을 민족주의운동의 주체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봉건적 유교사학을 극복하고 있었다.

또 하나 중세적인 유교사학에서는 정통론(正統論)이 강조되었다. 정통론은 정권의 성격을 전후 왕조와의 관계에서 규명하는 것으로 다분히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 이론에 의하면 왕조의 정통성 여부는 영토·국민·문화·주권 등의 실세에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분히 관념론적이고 윤리적인 대의명분(大義名分)에 입각해서 규정되었다.

따라서, 정통론적 사관은 역사적 실체를 인식하기보다는 이데올로기적인 해석과 평가를 앞세웠다. 따라서, 역사는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는 데에 봉사해야 한다는 근대사학의 입장에서 정통론은 내재적으로 극복되어야 하는 과제였다.

근대민족주의 사학의 배경에는 실학시대 역사학의 비판적 계승이라는 또 하나의 과제가 있었다. 앞에서도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박지원과 정약용의 저술들이 복간된 것이나,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고증 정신과 실학의 서민 정신이 발휘된 것은 근대민족주의 사학의 성립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근대민족주의 사학의 태동기는 앞에서 본 과도기의 사학인 계몽사학의 성립 시기이며, 그 성립기는 1910년∼1920년대의 박은식·신채호에 이르러서이다.

백암(白巖)·겸곡(謙谷)·태백광노(太白狂奴)의 호를 가졌던 박은식(1859∼1926)은 조선 말기·일제 강점기에 유학·교육·언론·역사 연구 및 독립 운동에 공헌했다.

그는 계몽 운동에 종사하면서 사상적 바탕으로서 국사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서우 西友≫·≪서북학회월보 西北學會月報≫·≪대한매일신보≫ 등의 언론지에 국사를 소개했고, 국치 후 만주에 망명, ≪동명왕실기 東明王實記≫·≪천개소문전 泉蓋蘇文傳≫·≪명림답부전 明臨答夫傳≫을 썼고, 그 뒤 ≪안의사중근전 安義士重根傳≫·≪이준전 李儁傳≫·≪이충무순신전 李忠武舜臣傳≫을 저술하고 ≪발해사 渤海史≫·≪금사 金史≫ 등을 역술했다.

박은식을 민족주의 사학자로 돋보이게 한 것은 ≪한국통사 韓國痛史≫(1915)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 韓國獨立運動之血史≫(1920) 등이다.

대원군(大院君) 집권에서 국치에 이르는 약 50년간의 한국 근대사를 일제의 침략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한 ≪한국통사≫에는 4300여 년이나 문화 국가로 계속된 한국이 일제의 침략을 받아 노예의 나라로 전락되어간 과정을 기술하면서, 비록 한국의 형(形)이 훼파되었다 하더라도 내면적인 신(神)을 보전하면 언젠가는 외형적인 국가를 부활시킬 수 있다는 신념이 강하게 표출되어 있다.

즉 ≪한국통사≫는 신(神)을 보전하기 위해 저술된 것이다. 그는 ≪한국통사≫에서 민족주의의식은 물론 ‘통사’를 서술한 방법에 대해서도 밝혔다. 당시 신사(新史)들이 취한 체재와 방법을 모방했고, 내용을 서술하고 논평을 가하는 형식을 취했다.

때로는 사실 기술에 앞서 논평을 제시하기도 했으며 부론(附論)과 안설(按說)을 덧붙이기도 하는 등 저술 방식과 체재는 근대 역사학의 경향에 상당히 접근했다.

≪한국통사≫에서 국권 회복의 소망을 역사의식을 통해 강하게 환기시켰던 박은식은 이 소망을 3·1운동을 통해 국권 회복·자주 독립의 자신감으로 구체화하기 위해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펴냈다.

이 책의 서문에서 “나는 한결같이 우리 나라가 반드시 광복의 날을 맞을 것과 일본이 장래 반드시 패할 것이라는 것을 자신하였으므로, 비록 전패·유리·기한·병고 중에서도 일찍이 일종의 낙관을 가지지 않음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우리 나라가 반드시 광복을 맞을 것이라는 확신을, 일제의 침략·식민·수탈 통치에 투쟁하는 이 ‘피의 역사(血史)’에서 논증하려 했던 것이다.

‘통사’와 ‘혈사’에 나타난 박은식의 사학은 민족주의적인 측면이 강렬함에 비해서 근대적인 성격은, 다음의 지적에서처럼, 약하게 나타난다.

첫째, 그의 사학은 혼(魂) 혹은 신(神) 중심의 역사로서 서술의 목적 또한 민족 정신을 잃지 않으려는 데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 발전의 중요한 기반인 물적(物的) 인식을 소홀히 하는 것으로 여기서 관념론적인 편향성을 엿볼 수 있다.

둘째, 박은식의 역사 서술 체재와 시대 구분, 가치 평가 등에서 다소 진보적이며 주체적인 점이 보이지만, 역사 주체 인식면에서는 아직도 영웅 중심 사관을 완전히 극복한 단계는 아니었으며, 따라서 근대사학에서처럼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인식하는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그의 민족주의 사학은 근대사학과 일치되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근대민족주의 사학은 신채호에 와서야 성립됐던 것이다.

신채호(1880∼1936) 역시 한말·일제 강점기의 언론인·교육자·독립운동가로서, 1905년경부터 국사 연구를 시작했고, 계몽 활동에도 나섰다.

그는 ≪대한매일신보≫ 등에 역사 관계 논설을 써서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하는 시기에 역사·민족 의식을 일깨우는 한편, ≪이태리건국삼걸전 伊太利建國三傑傳≫을 역술하고, ≪성웅이순신≫·≪을지문덕≫·≪동국거걸최도통전 東國巨傑崔都統傳≫ 등을 써서 위난에 처한 국가와 민족을 구원할 영웅의 출현을 촉구했다.

그는 1908년 ≪대한매일신보≫에 ≪독사신론 讀史新論≫이라는 한국고대사 관계 사론을 써서 당시 지식인 사회의 주목을 끌었다.

이 글에서 종래의 전통적인 유교사학이 가졌던 사대적·노예적 역사관과 그러한 역사관이 처음 보이는 김부식(金富軾)과 ≪삼국사기≫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종래 한국 역사가들의 인식과는 다른 한국 고대사 인식 체계를 시론적으로 제시했다.

즉, 실학시대 이래 면면히 기술되어오던 마한정통론(馬韓正統論)을 부정하고 부여·고구려 주족론(主族論)을 주장했고, 기자조선(箕子朝鮮)이 단군조선을 계승했다는 것을 부정하고, 계몽주의 사학자 김택영마저도 수용했던 임나일본부설을 부정했고, 발해사를 중요시해 발해·신라의 양국 시대론을 제창했던 것이다.

≪독사신론≫에 나타난 한국고대사의 인식 체계는 뒷날 ≪조선상고사 朝鮮上古史≫ 등에 나타난 방대한 고대사 체계의 기초를 이루게 되었다. 1910년 나라가 망하자 신채호는 중국으로 망명해 국권회복 운동에 나서는 한편, 독립 투쟁의 방편으로 국사 연구에 몰두했다.

1910년대 말 ≪조선상고문화사 朝鮮上古文化史≫를, 1920년대에 들어 주저라 할 ≪조선상고사≫를 남겼고, 거의 같은 무렵 한국고대사 관계 논문을 모은 ≪조선사연구초 朝鮮史硏究草≫를 완성했다.

대종교적 색채가 강하게 풍겨지고 있는 ≪조선상고문화사≫는 중국 민족과의 정치적·군사적 대결 의식을 짙게 깔고 문화적으로는 중국을 능가했다는 강한 자부심을 근거로 하여 한국 상고사가 기술되어 있다.

≪조선상고문화사≫가 이루어진 1910년대 신채호는 우리 상고사의 무대를 만주·한반도와 부여족의 식민지로서의 중국 동북 지역까지 확대시켰고 한국 상고문화의 국수적 성격을 강조했다.

한사군의 반도외존재설(半島外存在說)과 전후삼한설(前後三韓說) 등을 주장하는 한편, 역사연구에서 유증(類證)·호증(互證)·추증(追證)·반증(反證)·변증(辨證) 등의 실증 방법과 문헌 수집·유물 발굴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무렵에는 역사 주체에 대한 인식이 뚜렷이 나타나 있지 않다.

1920년대에 들어서서 신채호 사학은 근대민족주의 사학으로서의 성격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이때 유교적 사관이 가지는 한계를 지적하고 반주자학적 성격(反朱子學的性格)을 뚜렷이 드러내었고,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인식했다.

단군·부여·고구려로 계승되는 고대사 인식 체계를 정립하는 한편, 낭가사상(郎家思想)을 주체적으로 부각시켰으며, 역사관·역사방법론 등을 객관적인 역사 과학의 단계로 끌어올렸다.

신채호에게서 성립되는 근대 민족주의 사학은, 첫째 사료론(史料論)·고증론·서술론 등의 역사연구 방법론이 근대적 역사 방법론에 거의 일치하고 있으며, 둘째 역사의 주체를 민중으로 인식하는 점에서도 근대 역사학의 그것과 일치하며, 셋째 정통론이나 대의명분론과 같은 이데올로기에 종속되어 있던 중세적 역사학을 해방시켜 역사학의 객관성을 확보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신채호의 사학은 일제하라는 시대적 상황과 관련해 사대주의적·타율적인 한국사의 인식을 철저히 거부하고 민족사의 자주적 발전과정을 해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다분히 민족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

또한 “역사란 역사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역사학의 객관성을 담보하는 역사 이론과 연구 방법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근대적인 사학을 띠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신채호에 이르러 한국의 근대 민족주의 역사학이 성립되었던 것이다.

<이만열>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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